자유의 역설
어느 조직에 아주 훌륭한 임금이 있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열린 사람이다.”
“쓴소리를 좋아한다.”
“우리는 투명해야 한다.”
신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임금은 실제로 화를 잘 내지 않았고,
회의에서는 언제나 “자유롭게 말하라”라고 했다.
그래서 모두가 안심했다.
말해도 되는 조직이라고.
그러던 어느 날,
외부에서 재능 있는 재단사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말했다.
“이 옷은 특별합니다.”
“유능한 사람에게만 보이고,
무능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습니다.”
임금은 그 말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이 무능하다는 고백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옷이 보이지 않아도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아니, 말하지 않는 쪽이 더 안전했다.
조직도 그렇게 굴러간다.
위에서는 늘 말한다.
“문제 있으면 말하세요.”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죠?”
하지만 그 질문에는
보이지 않는 조건이 붙어 있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범위 안에서만.
질서를 흔들지 않는 선에서만.
어느 날,
한 경력자가 들어온다.
그는 우물 밖을 본 사람이고,
바다의 냄새를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회의 자리에서 조용히 말한다.
“이건 안 보입니다.”
“이 프로세스는 실제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옷을 입고 있지 않습니다.”
회의실은 잠시 조용해진다.
누군가는 기침을 하고,
누군가는 물을 마신다.
그리고 곧 이런 말들이 나온다.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네요.”
“맥락을 좀 고려했어야죠.”
“우리 조직 문화와는 안 맞는 것 같습니다.”
그는 진실을 말했을 뿐인데,
그 순간부터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된다.
옷이 없다는 사실보다
옷이 없다고 말한 사람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
기록이 남는다.
“협업에 어려움.”
“조직 적응 실패.”
“커뮤니케이션 이슈.”
그리고 그는 조용히 사라진다.
임금은 계속 옷을 입고 행진한다.
신하들은 박수를 친다.
아무도 옷을 보지 못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안다.
진실을 말하는 순간,
자기가 다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우화의 원래 결말에서는
아이 하나가 외친다.
“임금님은 벌거벗었어요!”
하지만 조직에서
그 아이는 영웅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 이렇게 정리된다.
“저 아이는 철이 없다.”
“사회성을 배워야 한다.”
“실력은 있지만 아직 어리다.”
그리고 행진은 계속된다.
조직의 아이러니는 여기 있다.
모두가 진실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상태가
가장 안정적일 때,
그 조직은 이미
진실보다 안정을 선택한 것이다.
임금이 벌거벗은 게 문제는 아니다.
진짜 문제는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는 궁정이다.
그 궁정에서는
정직한 사람이 먼저 사라지고,
옷은 끝까지 완벽하다고 기록된다.
그리고 훗날,
행진이 끝난 뒤에야
사람들은 속삭인다.
“그땐 다들 알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