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와 미꾸라지
그는 스스로를 메기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그 별명을 비웃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메기의 역할은 원래 그런 법이었다. 고요하게 썩어가는 연못에 긴장을 주고, 느슨해진 미꾸라지들을 흔들어 깨우는 존재.
그가 조직에 들어왔을 때, 그곳은 이미 오래된 진흙탕이었다.
회의는 길었고 결정은 느렸으며, 누구도 먼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실수하지 않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고, 새로운 제안은 “검토해 보자”는 말속에서 조용히 질식했다.
그는 일부러 물살을 일으켰다.
“이 방식으로는 경쟁력이 없습니다.”
“데이터 흐름부터 다시 설계해야 합니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나중엔 바꿀 기회도 없습니다.”
처음엔 모두가 불편해했다.
그러나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연못에 움직임이 생겼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늪처럼 가라앉아 있던 프로젝트 하나가 다시 숨을 쉬었다.
누군가는 뒤에서 말했다.
“저 사람… 메기 맞네.”
그는 그 말이 싫지 않았다.
변화는 시작되는 듯했다.
하지만 연못 위쪽의 하늘이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새로운 윗사람이 왔다.
그는 첫 회의에서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안정이 중요합니다.”
“리스크는 최소화해야죠.”
“지금은 흔들 때가 아닙니다.”
그 말은 조용했지만, 물 위에 떨어진 기름막처럼 빠르게 퍼졌다.
며칠 뒤, 그의 제안서는 ‘추가 검토’로 넘어갔고,
몇 주 뒤에는 ‘우선순위 조정’이 되었으며,
몇 달 뒤에는 아무도 그 문서를 찾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새로운 업무가 배정됐다.
유지.
관리.
현상 보전.
연못은 다시 고요해졌다.
어느 날, 복도 끝 탕비실에서 누군가가 농담처럼 말했다.
“메기라더니… 결국 메기 매운탕 됐네.”
사람들이 웃었다.
그도 같이 웃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물살을 세게 흔들지 않았다.
회의에서 그는 말을 줄였고,
보고서에서는 문장을 다듬었으며,
위험한 표현 대신 무난한 단어를 골랐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그는 조금씩 아래로 내려갔다.
더 깊은 진흙 속으로.
그곳은 조용했다.
위에서는 여전히 느린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고,
미꾸라지들은 다시 편안해 보였다.
물은 탁했지만, 모두가 익숙해진 탁함이었다.
그는 진흙 속에 몸을 묻은 채 생각했다.
‘지금이 아닌 건가.’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물살을 일으키는 시점을 미루었을 뿐이었다.
진짜 메기는
잡혀 끓는 냄비 속에서 몸부림치는 존재가 아니라,
필요할 때
단 한 번의 움직임으로
연못 전체를 뒤흔드는 존재라는 걸,
그는 이제 알고 있었다.
진흙 아래에서
그의 눈은 아직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