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사대부
문경새재는 산이 아니라 문이었다.
열리면 바다의 냄새가 넘어왔고, 닫히면 유교의 말들이 걸려 잠겼다.
안동의 사대부들은 그 문을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겉으로는 청빈했고, 입으로는 성리학을 씹었으나, 밤이 되면 상 위에는 문어숙회가 놓였다. 잘 삶아진 문어의 다리는 실처럼 찢어져 초장에 잠겼고, 간고등어는 소금에 절여 산의 공기를 속이고 바다의 시간을 속였다. 내륙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것들이, 그들 집안의 제상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가능했다.
“제사라 하지 마라.”
어른은 늘 그렇게 말했다.
“헛제사다. 마음은 조상에게 있고, 입은 우리에게 있으니.”
헛제삿밥이라는 말은 그렇게 태어났다. 제사가 아니라 말해야 했고, 말이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아야 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들켜도 변명할 수 있도록. 유교의 형식은 방패였고, 음식은 칼이었다.
문경새재를 넘는 장사꾼들은 알았다. 이 고개를 넘으면 소금이 글이 되고, 생선이 도덕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안동의 집들은 늘 배부른 얼굴로 가난을 말했고, 산속에서 바다를 논했다. 그들의 위선은 치밀했고, 그래서 오래갔다.
젊은 서생 하나가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검소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제사 날, 그는 문어의 다리를 집었다. 그 순간 알았다. 이곳에서는 배부름이 권력이고, 절제는 선택이 아니라 연기라는 것을.
문경새재는 오늘도 서 있다.
산은 아무 말이 없고, 사람만 변명을 남긴다.
헛제삿밥은 사라졌으나, 그 정신은 아직 따뜻한 밥처럼 김을 올리고 있다.
안동은 여전히 내륙이고, 여전히 바다를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