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점의 변화
그는 스스로를 오래전부터 월급으로 연명하는 존재라고 불렀다.
존재라기보다는 기능에 가까운 말이었다.
출근 시간에 맞춰 켜지고, 퇴근과 함께 꺼지는 기계.
스무 해 동안 그는 그 기계가 고장 나지 않도록 성실히 관리해 왔다.
젊었을 때는 그게 삶인 줄 알았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크게.
속도가 곧 의미였고, 성장은 미덕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더 이상 빨라질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기준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매일 조금씩 뒤처지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우연히 줌 수업을 맡게 되었다.
우연이라는 말은 늘 비겁하다.
사실 그는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고,
누군가가 듣고 있다는 확신을 갈망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낯선 얼굴들이 있었다.
나이도, 배경도 알 수 없는 사람들.
그는 준비한 말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누군가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메모를 했고,
한 사람은 질문을 던졌다.
그 순간 그는 느꼈다.
아직 자신이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을.
수업이 끝난 뒤, 노트북 화면이 꺼졌는데도
가슴 한편이 이상하게 환했다.
설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그 단어가 너무 오래된 것 같아
그는 잠시 당황했다.
설렘은 젊은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중년의 설렘은 경솔하거나, 위험하거나,
혹은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가르쳐왔다.
그래서 그는 그 감정을
기쁨으로도, 희망으로도 부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접어 두었다.
마치 금이 간 도자기를 다루듯.
그날 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왜 나는 아직도
젊었을 때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고 있을까.
그 기준은 늘 명확했다.
얼마나 빨리 도달했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가,
얼마나 인정받았는가.
하지만 오늘의 인정은
숫자로 남지 않았다.
성과로 보고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는 처음으로
기준이란 것이 나이에 맞춰 바뀌는 게 아니라
경험을 통해 서서히 이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젊은 기준은
그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다리였다.
이제는 건너온 다리를 부수는 대신,
그 다리 위에 서서
다른 풍경을 볼 차례인지도 몰랐다.
그는 여전히 다음 달 월급을 걱정했고,
내일의 일정도 빼곡했다.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달라졌다.
그는 더 이상 스스로를
무가치하다고 단정하지 않게 되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말이 닿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삶은 아직 질문할 가치가 있다는 걸
그는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는 가끔 이렇게 생각했다.
삶이란,
젊은 날의 기준으로 끝내 재단되지 않는
조금 늦게 도착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