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하고 싶은 관계
그녀에게 할 말은 늘 준비되어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언제나 다른 것이었다.
괜히 날씨를 물었고,
이미 끝난 강의 이야기를 다시 꺼냈고,
중요하지 않은 안부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말하지 않은 문장들이 가방 속에서 종이처럼 구겨졌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늘 정확했고,
강의실에서는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그녀 앞에만 서면
말은 자꾸 무거워졌다.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왜 선생님은 중요한 얘기는 안 하세요?”
나는 잠시 웃었다.
웃음은 시간을 벌어준다.
그리고 말했다.
“말하는 순간,
상대가 선택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녀는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말을 이었다.
“솔직해지면,
당신의 하루가 조금 달라질지도 모르잖아요.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녀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말하지 않는 건,
저를 배려하는 거예요?”
“아마요.”
나는 대답했다.
“지켜주고 싶은 사람한테는
침묵도 예의가 되니까요.”
그녀는 그 말에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오래 바라봤다.
나는 그 시간이
그녀의 세계를 흔들지 않기를 바랐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조심해졌다.
메시지를 보내기 전에는
한 번 더 읽었고,
보내지 않아도 되는 말은 남겨두었다.
솔직해질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솔직해지는 용기는
언제나 다음 날로 미뤄졌다.
어느 저녁,
강의도 회사도 없는 날,
그녀가 먼저 말했다.
“저는요,
흔들려도 괜찮은 하루도 있어요.”
그 말은 고백이 아니었다.
부탁도 아니었다.
다만 선택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였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솔직함이 두려운 이유는
상대를 잃을까 봐서가 아니라,
상대가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달라질까 봐였다는 것을.
나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그럼,
오늘만큼은 조금 솔직해도 될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작게.
그날 우리는
모든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진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진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