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둔다는 건
그녀와 나는 서로를 피해 다니지 않았다.
다만, 동시에 다가가지 않았을 뿐이다.
강의가 끝난 뒤 나는 늘 교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을 썼고,
그녀는 노트를 덮는 데 필요 이상으로 오래 걸렸다.
누가 먼저 문을 나설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강의실에는 늘 애매한 공기가 남았다.
나는 안다.
이 침묵이 무관심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그래서 더 조심하고 있다는 것을.
어느 날 나는 강의 중에 계획에 없던 말을 했다.
“이 수업이 끝나면,
저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제가 하던 일을 할 겁니다.
아마 아무도 관심 없는 일일 거예요.”
학생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 말은 설명이 아니라 안심이었음을.
강의가 끝난 뒤 우리는 커피를 마셨다.
이제는 ‘습관처럼’이라는 말을 써도 될 만큼 자연스러웠다.
“선생님은 강의 말고 다른 생각도 하세요?”
그녀가 물었다.
“요즘은 집에 가는 길을 좀 자주 생각해요.”
나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용기는, 질문만큼이나 어렵다.
며칠 뒤 그녀가 말했다.
“가끔 선생님이 저를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나는 웃었다.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아마요.
애정이 생기면 소중해지고,
소중해지면 더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그녀는 그 말에 안도한 얼굴을 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두려워한 건 서로가 아니라,
이 감정이 요구할 책임의 크기였다는 것을.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씩 덜 무서워졌다.
나는 메시지를 빨리 보내지 않았고,
그녀는 답장을 늦게 보내는 자신을 변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설명하지 않았고,
그래서 오해도 생기지 않았다.
어느 저녁, 강의가 없는 날이었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지금 이 관계, 저는 괜찮아요.”
그 말은 고백이 아니었다.
확약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이 문장이야말로 우리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가장 오래 기다려온 말이라는 것을.
“나도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그녀는 웃었고,
그 웃음에는 더 이상 경계가 없었다.
기대도, 요구도 없었다.
다만 함께 있어도 괜찮다는 허락만이 있었다.
나는 이제 회사에서 여전히 지워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누군가의 세계에서
나는 아직 삭제되지 않았으니까.
사랑은
서로를 더 이상 무섭게 보지 않아도 되는 순간에
조용히 시작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