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궤도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소행성을 원망해 왔다.
밤이 유난히 길고, 바람이 거칠고, 말보다 침묵이 더 안전한 이곳을.
사람들은 말했다.
“넌 원래 그런 애였어.”
그 말속에는 늘 보이지 않는 주어가 있었다.
부모.
그의 아버지는 한 번도 울지 않는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집 안에는 규칙이 많았지만 설명은 적었다. 잘 자라는 나무처럼, 조용히, 얌전히, 튀지 않게. 그곳의 중력은 단단했다. 감정은 낮게 깔려야 했고, 욕망은 소리 없이 접혀야 했다.
그는 자주 생각했다.
이 행성의 공기는 내가 고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저 이곳에서 태어났을 뿐이라고.
하지만 어느 날, 그녀를 다시 만났다.
빛이 많던 그 소행성의 여자.
그녀는 말했다.
“내 행성도 부모에게서 시작됐어요. 늘 웃으라고, 밝으라고, 감사하라고. 힘들다는 말은 예의가 아니라고 배웠죠.”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빛이 많은 행성도, 어둠이 긴 행성도, 시작점은 비슷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럼 우린 결국 부모의 궤도를 도는 위성일뿐일까요?”
그가 물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처음엔 위성이지만, 어느 순간 추진기를 달 수 있어요.”
그는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추진기.
돌이켜보면 그는 몇 번의 선택을 했다.
말하지 않는 법을 배운 건 부모였지만, 끝까지 침묵하기로 한 건 자신이었다.
상처를 피하는 법을 배운 건 환경이었지만, 사람을 멀리 두기로 한 건 자신이었다.
어둠은 주어졌을지 몰라도, 그 어둠 속에 집을 지은 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항상 웃으라는 말은 들었지만, 슬픔을 혼자 삼키기로 한 건 그녀였다.
빛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태우기로 한 것도 결국 그녀였다.
그들은 동시에 깨달았다.
행성의 토양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을지 모른다.
기후도, 초기의 중력도, 심지어 낮과 밤의 길이도.
하지만 그 위에 어떤 도시를 세울지,
숲을 가꿀지, 벽을 쌓을지는
결국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그는 어느 날, 처음으로 어둠 속에서 작은 등을 켰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 문장 더 보태는 것.
싫다는 말을 한 번은 해보는 것.
도망치지 않고 남아 보는 것.
그녀도 어느 날, 빛을 조금 낮추었다.
괜찮지 않다고 말해보는 것.
웃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해 보는 것.
행성은 조금씩 변했다.
중력은 여전했지만, 궤도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이제 묻지 않는다.
이 환경이 부모로부터 종속된 것인지, 내가 만들어낸 것인지.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처음의 기후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날씨는 내가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고.
우리는 완전히 자유롭지도, 완전히 종속되지도 않았다.
처음은 유산이지만,
그 이후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건
부모의 중력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만의 궤도를 그려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는 오늘도 자신의 소행성을 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 행성은
물려받은 것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