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속 삶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소행성에서 살아간다.
그의 소행성은 밤이 길었다. 태양이 떠 있어도 온기가 닿지 않는 곳. 바람은 늘 같은 방향으로 불었고, 그 방향을 거스르면 하루치 숨이 빠져나갔다. 그는 오래전부터 배웠다. 이곳에서는 빠르게 달리지 않는 법, 기대하지 않는 법, 누군가의 그림자를 쫓지 않는 법을.
그녀의 소행성은 빛이 많았다. 빛이 너무 많아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곳. 모든 것이 드러나 있었고, 숨길 수 있는 틈은 없었다. 대신 그녀는 항상 웃는 법을 배웠다. 빛에 적응하지 못한 표정은 금세 균열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슬픔도 정돈되어야 했고, 고독조차 투명해야 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너는 왜 그렇게 어두워?”
“너는 왜 그렇게 가벼워?”
그 말은 질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판결에 가까웠다.
다르다는 건 잘못된 것이라는 암묵적인 선언.
그러나 그는 어둠 속에서 별을 셀 수 있었고, 그녀는 눈부심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았다. 서로 다른 환경이 만든 서로 다른 생존법이었다. 다름은 선택이 아니었다. 태어났을 때 이미 주어진 중력이었고, 하루하루를 버티게 하는 물리 법칙이었다.
그들은 우연히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소행성 궤도가 아주 잠시 겹친 순간이었다.
그는 그녀의 빛을 처음 보았을 때 눈을 찡그렸다. 너무 밝아서, 자신의 그림자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어둠 속에 들어섰을 때 발걸음을 멈췄다. 발밑이 보이지 않아 한 발도 내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긴 왜 이렇게 어두워요?”
“여긴 왜 이렇게 밝죠?”
서로를 향한 첫 말은 언제나 서툴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상대를 이해하려 애썼다. 그는 그녀에게 어둠에 익숙해지는 법을 설명했다. 바로 보려고 애쓰지 말고, 소리를 듣고, 숨결을 느끼라고. 그녀는 그에게 빛 속에서 눈을 쉬게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전부 보려고 하지 말고, 중요한 것만 남기라고.
이해는 동의와 달랐고, 공감은 동일함과 달랐다.
그들은 상대의 소행성으로 이주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잠시 머물며 중력을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조용해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여기선 말보다 침묵이 오래 살아남거든요.”
그는 물었다.
“당신은 왜 항상 웃고 있죠?”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여기선 웃지 않으면, 내가 사라진 것처럼 느껴져요.”
그 순간, 둘은 알았다.
상대가 이상한 게 아니라, 각자가 살아온 행성이 달랐다는 것을.
그 이후로 그들은 자주 만나지 않았다. 궤도는 다시 벌어졌고, 각자의 소행성은 원래의 속도로 회전했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 그는 밤하늘에서 유난히 밝은 점을 보았다. 그 빛은 눈부시지 않았다.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 같았다.
그녀도 가끔, 빛이 과도하게 넘치는 날이면,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느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어둠이 빛의 가장자리를 조심스럽게 붙잡아 주는 것처럼.
그들은 여전히 다르다.
다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안다.
다르다는 건 배제와 차별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환경의 결과라는 것을. 그리고 평생 저마다의 다름만 겪고 살아가다가, 단 한 번이라도 서로의 행성을 이해해 주는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삶은 이미 충분히 우주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소행성에서 산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서로의 중력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만으로도, 우주는 생각보다 덜 고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