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하면 거르고 보자
그는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어 생각했다.
자신의 행성에 들여야 할 인간과,
끝내 들이지 말아야 할 인간.
그 구분은 차별이 아니었다.
생존에 가까운 판단이었다.
그의 행성은 폐쇄적이었다.
아무나 착륙할 수 없었고,
아무나 중력을 바꿀 수 없었다.
행성에 발을 들인다는 건,
그의 삶에 영향을 줄 권한을 얻는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궤도 밖에 머물렀다.
그들은 스쳐 지나가는 위성이었고,
인사와 대화는 있었지만
기후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들의 말은 소음에 가까웠고,
평가는 우주 먼지처럼 흩어졌다.
그는 그것을 냉정 함이라 부르지 않았다.
선별이라고 불렀다.
행성에 들이는 인간은 극히 드물었다.
시간을 통과해야 했고,
일관성을 증명해야 했으며,
어긋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야 했다.
잘해줄 때보다
잘못했을 때의 태도가 중요했다.
변명 대신 책임을 택하는지,
침묵 대신 설명을 선택하는지,
관계가 불리해질 때도 떠나지 않는지.
그 모든 것이 검증이었다.
행성에 들인 인간은
말 한마디로 대기의 농도를 바꿀 수 있었고,
부재만으로도 계절을 흔들 수 있었다.
그만큼 위험했고,
그만큼 소중했다.
그래서 그는 더 조심스러웠다.
아무나 착륙 허가를 내주지 않기 위해.
어느 날 한 사람이 물었다.
“그럼 나는 어느 쪽인가요?”
그는 즉답하지 않았다.
대답이 늦다는 건, 이미 심사가 시작됐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재촉하지 않았다.
확인받으려 들지도 않았다.
그저 같은 태도로, 같은 속도로,
같은 거리에서 머물렀다.
그는 그제야 알았다.
행성에 들여야 할 인간은
들어오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것을.
“당신을 들이면,
당신은 내 삶에 영향을 줄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심히 다룰게요.”
그 말은 약속이 아니라
태도의 선언처럼 들렸다.
그날 이후
그의 행성에는 변화가 생겼다.
면적이 넓어진 건 아니었다.
다만 기후가 안정되었다.
여전히 대부분의 인간은
들일 필요가 없다.
그들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이 행성의 환경에 맞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이제 분명히 안다.
행성에 들이지 말아야 할 인간은
신뢰를 요구하는 사람이고,
행성에 들여야 할 인간은
신뢰를 다루는 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오늘도
착륙 허가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 들인 인간에게는
행성 전체를 숨기지 않는다.
그곳은
그가 살아가는 전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