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의 무게
그는 결혼을 하면 새로운 행성이 생길 줄 알았다.
부모의 중력에서 벗어나,
자기 이름으로 된 대기와 기후를 가질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그는 행성을 세웠다.
작지만 단단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만 그 행성은
생각보다 빨리 폭풍을 맞았다.
그녀의 병명은 차갑게 떨어졌고,
수술실 문은 두 번이나 닫혔다가 열렸다.
회복이라는 단어는 기적처럼 느리게 움직였고,
그 사이에서 그는 버티는 사람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
그녀의 부모님은 가난이라는 오래된 겨울을 지나고 있었다.
그는 계산기를 두드리며
자신의 미래를 잘라 현재에 붙였다.
그는 속으로 묻는다.
왜 하필 나인가.
왜 나는 또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가.
왜 내 행성은 늘 평탄하지 않은가.
그 질문은 비겁하지 않다.
지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정직한 질문이다.
그는 어느 밤, 혼자 생각한다.
혹시 내가 문제인가.
내가 선택을 잘못한 건가.
아니면 세상이 나를 시험하는 건가.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이건 시험이 아니다.
세상은 누구를 골라 시련을 주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행성에
각자의 기후가 닥칠 뿐이다.
다만 그는
도망치지 않는 선택을 해왔을 뿐이다.
아픈 사람 곁에 남는 선택.
가난을 외면하지 않는 선택.
책임을 미루지 않는 선택.
그 선택이
그를 황폐하게 만든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는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렇다면 인식의 방향을 긍정으로 바꿔야 할까?
억지로 “의미가 있다”라고 말하는 건
또 다른 자기 학대일지 모른다.
고통을 성장 서사로 포장하는 건
지금의 피로를 부정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가 바꿔야 할 건
의미가 아니라 위치일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까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중심핵이 되려 했다.
행성의 온도, 자원, 공기까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중심핵이 과열되면
행성은 유지되지 않는다.
그는 처음으로 생각한다.
내가 지치는 건 약해서가 아니라,
혼자서 모든 중력을 끌어안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의 병은 그의 탓이 아니다.
그녀 부모의 가난도 그의 책임으로 태어난 게 아니다.
그는 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했고,
그 선택의 조건을 함께 떠안았을 뿐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건
비관도, 낙관도 아니다.
현실이다.
긍정적으로 바뀌어야 할까?
아니면 냉정해져야 할까?
어쩌면 필요한 건
“왜 나인가”라는 질문을
“지금 나는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가”로 바꾸는 일일지도 모른다.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끌어안지 않는 용기.
도와주되, 무너지지 않는 거리.
사랑하되, 자기 자신을 말려 죽이지 않는 방식.
그는 여전히 지쳐 있다.
여전히 억울하다.
그 감정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시련은
그가 벌을 받아서 온 것이 아니다.
그가 선택했고, 사랑했고, 책임졌기 때문에
함께 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황폐해졌다고 느끼는 건
사막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비가 너무 오래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는 외부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스스로를 돌보는 선택에서
조금씩 생겨난다.
그는 오늘 처음으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는 하루를 상상한다.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돌보는 하루를.
시련의 이유를 찾는 대신
자신을 소모하지 않는 방법을 찾는 것.
아마 그게,
지금 그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