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성 가꾸기

나를 돌보자

by Bird

그는 가족이라는 행성을 떠올릴 때마다

폭발 직전의 별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겉보기엔 멀쩡했다.

중력도 유지되고, 궤도도 안정적인 척했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에너지가 새어 나가고 있었다.


이기적인 동생은 중심핵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관심, 시간, 책임까지.

부모는 그 옆에서 궤도를 맞추지 못한 채

의존이라는 이름의 중력을 계속 키웠다.

그 중력은 보호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에게만 더 강하게 작용했다.


“가족이잖아.”

그 말은 늘 마지막에 등장했다.

설명 대신, 선택 대신, 변화 대신.


그는 그 말에 맞춰 숨을 줄이고

자신의 행성을 접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고,

균열은 참으면 된다고 여겼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의 행성이 황폐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숲은 말라 있었고,

바람은 모래만 옮겼다.

아무도 일부러 파괴한 건 아니었다.

그저 모두가 당연하게 가져갔을 뿐이다.


그는 처음으로 상상했다.

이 행성을 폭발시키는 장면을.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중력을 끊기 위해서.

자신을 붙잡고 있던 궤도를

영원히 벗어나기 위해서.


하지만 폭발은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었다.

가족이라는 행성은

그의 기억, 습관, 죄책감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에 부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폭발 대신, 추력을 켰다.


연락을 줄이는 것.

설명하지 않는 연습.

도와주지 않는 날을 견뎌보는 것.

미움이 아니라, 거리로.


부모는 불안해했고,

동생은 불평했다.

그는 그 반응을 보며 알았다.

이 행성은 원래부터 그의 희생 위에서 유지되고 있었다는 걸.


새로운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았다.

가끔은 죄책감이 잔해처럼 따라왔다.


하지만 멀어질수록

그의 행성에는 물이 고였다.

작은 풀들이 자랐고,

밤하늘이 조용해졌다.


그는 이제 말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행성을 폭발시키고 싶었던 건

그들을 파괴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이 먼저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림은 잔혹한 단어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기 자신을 살리는 기술이 된다.


그는 여전히 가족을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더 이상

그들의 중력 안에서 살지 않을 뿐이다.


새로운 행성은 아직 작다.

불안정하고, 혼자다.


하지만 이번에는

황폐해지지 않는다.


이 행성의 주인은

처음으로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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