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내가 아니다
그는 어느 날부터 자신의 행성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느꼈다.
큰 충돌은 아니었다.
낮과 밤이 바뀌는 시간도 그대로였고, 중력의 방향도 익숙했다.
다만, 예전엔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더 이상 완전히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 변화는 사람에게서 시작됐다.
그는 늘 혼자 공전해 왔다. 부모의 궤도를 중심으로, 그들이 정해놓은 속도와 거리 안에서. 말의 온도, 감정의 사용법, 기대의 높낮이까지. 그것은 명령이라기보다 물리 법칙 같았다. 거스를 수 없는 것.
그러다 한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그의 행성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하지만 떠난 뒤에도 이상하게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행성은 혼자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의 말 한마디, 기다려주는 침묵, 판단하지 않는 시선이 대기의 성분을 바꿨다.
누군가와의 관계는 소행성 하나를 스쳐 지나가는 일이 아니라, 궤도 자체에 작은 편차를 남기는 일이었다.
“사람이 바뀌면, 행성도 바뀌나요?”
그가 물었을 때,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요. 행성이 바뀌니까, 만나는 사람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 말은 오래 남았다.
그는 다시 부모의 궤도를 떠올렸다.
그곳은 안전했다. 예측 가능했고, 실패해도 이유가 있었다.
“부모가 그렇게 키웠으니까.”
그 문장은 방패이자 족쇄였다.
그렇다면, 그 궤도에서 벗어나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어느 날 그는 실험을 했다.
부모의 반응을 예상하면서도, 그 예상과 다른 선택을 해보는 것.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침묵을 유지하는 대신, 굳이 말을 꺼내는 것.
죄책감을 느낄 걸 알면서도, 그 감정을 이유로 물러서지 않는 것.
궤도는 바로 벗어나지 않았다.
부모의 중력은 생각보다 강했다.
한 번 벗어났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몸은 다시 안쪽으로 끌려갔다.
그는 알게 되었다.
부모의 궤도에서 벗어난다는 건, 단번의 탈출이 아니라
계속해서 미세한 추력을 켜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에게서 벗어나면, 모든 것이 가벼워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자유에는 보호막이 없었다.
결정의 무게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왔다.
부모의 목소리가 사라진 자리에는
“그럼 넌 어떻게 살 거야?”라는 질문이 남았다.
자유는 해방이 아니라, 책임에 가까웠다.
그는 이제 안다.
부모에게서 벗어난다고 해서 부모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그들은 여전히 그의 중력장 어딘가에 존재한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중력을 전부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는 조금씩 새로운 중력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그를 끌어당기고,
누군가는 밀어냈으며,
누군가는 그의 행성에 잠시 머물다 떠났다.
그 모든 흔적이 겹쳐
그의 행성은 더 이상 부모의 복사본이 아니게 되었다.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완전히 종속되지도 않는다.
그는 지금도 공전 중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이 궤도를 조정할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우주는
조금은 숨 쉴 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