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한다는 것
그날도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얼굴로 회사 문을 밀고 들어갔다.
스무 해를 같은 건물 안에서 보낸 사람의 얼굴은 대체로 비슷하다.
놀라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크게 흔들리지 않는 얼굴.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 들어 자꾸 숨이 찼다.
일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사람이 힘들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갈수록 조금씩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주름이 늘었고, 눈빛은 전보다 차분해졌다.
겉으로 보면 분명 나는 나이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은 아니었다.
여전히 어떤 말 한마디에
괜히 하루가 흔들리고,
사소한 친절 하나에도
쓸데없이 오래 마음이 남았다.
나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 나이가 되면 좀 무뎌져야 하는 것 아닌가.
이쯤 되면 웬만한 감정에는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마음은
끝내 내 뜻대로 늙어주지 않았다.
—
퇴근길,
지하철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다시 본다.
사람들은 각자의 하루에 지쳐
고개를 떨군 채 서 있다.
그 틈에서 나는 문득 이상한 생각을 했다.
왜 살아갈수록 더 힘들어지는 걸까.
젊었을 때는 몰랐다.
세상이 어려워서 힘든 줄 알았다.
지금은 안다.
세상이 어려운 게 아니라,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점점 조심스럽게 살아가게 된다는 걸.
함부로 말하지 못하고,
함부로 기대지 못하고,
함부로 설레지도 못한다.
그 모든 ‘함부로’를 접어 넣으며
사람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그리고—
조금씩 지쳐간다.
—
집에 도착해 불을 켰다.
익숙한 거실, 익숙한 공기, 익숙한 고요.
나는 소파에 앉아
한참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지금까지
마음을 죽이며 살아온 게 아니었다.
그저
마음이 숨 쉴 자리를
너무 오래 만들어 주지 않았을 뿐이었다.
내 마음은 늙지 않았다.
아직도 무언가에 반응하고,
아직도 의미를 찾으려고 움직이고,
아직도—
살아 있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살아갈수록 힘들어지는 건
어쩌면 내가 약해져서가 아니라,
아직도 내 안에
쉽게 꺼지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도—
조금 덜 초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