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이란?
그는 오래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멈추고 있지는 않다고 믿었다. 아침이면 출근을 했고, 저녁이면 돌아왔고, 주말이면 밀린 일을 정리했다. 계절은 몇 번 바뀌었고, 그 사이에 그는 조금씩 나이를 먹었다.
어느 날 문득 그는 생각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처음이 아니었다. 스무 살 무렵에도 했고, 서른 즈음에도 했고,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그는 방향을 정하려고 애썼다. 더 잘할 수 있는 일, 더 의미 있는 일, 더 멀리 갈 수 있는 길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방향은 늘 멀리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계속 걸었다.
걷다 보면 언젠가 보일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래 연락하지 않던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말했다.
“나는 이제 그냥 여기서 살기로 했어.”
그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여기서?”
“응. 멀리 가려고 했는데… 그냥 여기서 괜찮을 것 같더라.”
그는 친구의 얼굴을 한참 바라봤다. 예전보다 조용해진 얼굴이었다. 대신 조금 단단해 보였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나는 아직도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걸까.
집에 도착했을 때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불을 켜지 않은 거실에 앉아 그는 가만히 창밖을 바라봤다. 멀리 아파트 창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그 안에도 누군가가 살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방향을 찾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방향을 바꾸고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방향을 잃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미 머물 곳을 정했을 것이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사람은 방향을 잃어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오래 걸어서 멈추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다시 생각했다.
나는 지금 멈춰 있는 걸까.
아니면 머물고 있는 걸까.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멈추는 것은 포기였고
머무는 것은 선택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밤공기가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멀리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방향이라는 건
끝까지 가야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여기까지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곳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그는 불을 켰다.
그리고 그날 밤, 처음으로
자신이 아직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이미 어떤 곳에 도착해 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그건 실패도 아니었고
안주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머물 곳을 하나 선택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