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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형준 Jul 04. 2018

책을 권하지 않는 우리나라에
이토록 많은 독자라니

1. 서점의 시대가 열리면

지난주 코엑스에서는 서울 국제도서전이 열렸다. 올해는 역대 도서전 가운데 가장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다. 목요일과 토요일 두 차례 방문했었는데, 어디서 들 찾아오셨나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전시장이 꽉 들어찼다. 관람객 가운데 한 분은 "책을 안 읽기로 유명한 나라인데 도서전에는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냐"라고 말하며,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서울 국제도서전 2018, 출판과 서점과 독자를 이야기하다


미리 예매를 했음에도 한참 줄을 서서 표를 받아야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자주 가는 서점에서는 숨소리가 들릴 만큼 한적하고 조용했는데, 도서전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아니, 생각조차 안 했다. 그만큼 책과 서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반증이 아닐까?



올해 서울 국제도서전의 주제는 '확장, New Definition'. 확장에 관한 새로운 정의쯤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워낙 요약을 해놓은 지라 숨겨진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2018 서울 국제도서전의 주제는 ‘확장-new definition’입니다.
우리가 넘고 싶은 것은 엄숙 주의와 선입관이 쌓은 벽입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새로운 미디어가 열어 준 가능성의 공간입니다.
책이 담고 있는 즐거움과 슬픔, 그리고 지혜와 비밀들을 더 많은 독자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책과 그것을 만들고 읽는 사람들, 그들의 행위를 완전히 다시 정의하는 과정을 통해서 출판과 독서의 범위를 다시 긋습니다.
이제 책은 책을 넘어서 독자들과 소통하고 독자들은 종이 바깥에서 책을 만납니다.
독자, 콘텐츠, 매체가 자유롭게 흐르고 섞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서점의 시대에서 변화하는 서점으로


도서전은 언제나 그렇듯 읽는 사람과 읽는 것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2017년 도서전의 주제였던 서점의 시대와 연장선 상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2017년도와 올해, 서점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작년 말에 잠시 리딩테인먼트(Reading + Entertainment)라는 단어가 유행할 때 서점은 중추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서점을 대표하는 교보문고나 대형서점인 영풍문고를 제외하면 인터넷 서점이 전체 책 매출의 과반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는 인터넷 서점도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과거에는 없었던 분류인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뉘게 됐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서점은 이제 오프라인 서점이라는 다소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드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날 '변신하는 서점, 진화하는 서점 새로운 문화거점 서점의 역할과 기능'을 주제로 토크가 진행됐다. 이번 토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책이 놓인 곳"이 되어야 한다는 건축가 조경민 대표의 말이었다.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인 동시에 책을 소개하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도서관에도 책은 많이 있지만, 서점 주인이 친절하게 책의 내용에 관해 설명해주는 느낌은 조용한 도서관과 다르다. 또한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다른 물건들과 다르게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작가의 생각, 지적인 가치, 나 자신이 달라지는 느낌 등등 단순히 물건을 사서 기분이 좋은 것과는 다른 기분이다.


온라인 마켓이 일상화된 오늘날에는 서점 또한 인터넷에서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설명만 잘 읽으면 그 성격을 알 수 있는 생필품이나 가전과는 달리, 책은 펼쳐서 읽어보지 않으면 그 내용을 잘 알 수 없다. 마치 누워봐야 알 수 있는 침대나 입어봐야 알 수 있는 청바지처럼 말이다. 


2017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는 서점의 시대였다.


음식도 입 맛에 맞아야 먹을 수 있듯이 책도 문장의 흐름이나 단어 등이 자신의 리듬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 읽기 편하다. 취향은 이러하지만 서점에 가보면, 여러 가지 책을 꽂아 놓은 대형서점을 제외하고는 다수의 지역 서점에서는 잘 팔리는 책이 매대 우선권을 가진다. 때문에 종류의 다양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은 조금 아쉽다. 


서점의 이상적인 형태를 이야기할 때, 일본의 츠타야 서점을 자주 언급한다. 츠타야는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하는 서점이라고 말한다. 카테고리별로 시 소설 등을 분류해 진열하는 일반 서점과 달리 츠타야는 특정 주제를 가진 책과 소품을 함께 모아 진열한다. 예를 들면 음악에 관한 시, 음악에 관한 소설, 음반, LP 플레이어 등과 같이 말이다. 


어쩌면 츠타야가 보여주고 있는 질적 서비스가 양적인 성장에 한계가 있는 오늘날의 출판 산업의 대안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독립서점들이 이와 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소규모인 만큼 보유하고 있는 장서는 많지 않지만, 단순히 책뿐만 아니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배울 수 있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독립서점이 해내고 있다.


아주 이상적인 형태는 아닐지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쉼터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동네 서점, 독립 서점이라는 이름으로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우리나라. 어쩌면 전국 체인망을 갖춘 어쩌면 츠타야 버금가는 서점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출판이라는 힘겨운 길을 걷는 사람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출판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시공사, 위즈덤하우스, 김영사, 문학동네, 창작과 비평사 등 얼핏 들은 바 있는 유명 출판사의 이름은 나열할 수 있지만, 도서전에서 처음 본 출판사도 꽤 많았다는 점이 놀라웠다.


출판사에 다니는 주변 지인의 말을 들어보면 출판업계의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말을 한다. 사실 관계자의 말을 듣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출판 환경이 그전부터 그리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베스트셀러가 아니라면 무관심에 가까운 미디어의 모습에서도 지레짐작할 수 있다.



서점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는 우리나라의 최근 현상에서 걱정스러운 점은 바로 이런 것이다. 출판하는 책이 서점의 개수만큼 늘어나야 다양성이 보장되는데, 현재로서는 다양성이 보장될 만큼의 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1인 출판사는 출판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독립서점은 1인 출판사의 원동력이다.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 환경에서 다양성과 수익성을 보장하는 이상적인 모델인 셈이다. 작년 한해 많은 주목을 받은 이기주의 '언어의 온도'나 윤홍균의 '자존감 수업' 등이 그러하다. 


모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듯,  1인 출판사의 성공사례는 매우 드물다. 살아남기 힘든 상황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위와 같은 성공 사례가 점점 늘어난다면, 출판 시스템이 안정되고 다양한 종류의 책을 만나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서점의 확장, 출판사의 존립, 그리고 독자가 해야 할 일


출판사와 서점의 성장을 위해 우리 독자가 해야 할 일은 책을 읽는 것이다. 출판사가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 서점이 더 좋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독자는 책을 소비해야 한다. 강요에 의해서도 좋고, 유행 때문이어도 좋다. 책을 고르고 장을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마음에 드는 글귀를 발견하고 책을 집으로 가져와 잘 보이는 곳에 꽂아 두는 것만으로도 노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도서전을 둘러보고 나와 코엑스 옆 별마당 도서관에 들렀다. 전시장 내부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잠시 주머니에 넣어두고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자유롭게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보니 이러한 공간이 더 늘어났으면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더 많은 사람이 책을 읽도록 독려하고픈 마음은 있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들을 독자로 만드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백마디 말보다는, 퇴근길 전철에서, 버스 안에서 책을 펼치고 읽다 보면 언젠가는 주위를 둘러봤을 때 손에 책 한 권이 들려있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면서 오늘도 책 한 권의 노력을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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