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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형준 Jan 29. 2019

돈으로 이야기하는 사회

자본주의의 약속

8-90년대에 황지우, 함민복, 최하림 등 몇몇 시인들이 쓴 시는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하는 순수한 느낌의 최근 시와는 다르게 치열한 현실을 깊이 있고 냉정하게 이야기하며, 당시의 시대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 느낌은 마치 계몽에 가까웠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본주의 사회를 강하게 비판한 함민복 시인의 시집 '자본주의의 약속'은 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다. 강하게 나의 젊음을 사로잡았고, 대학생일 때도 지금도 종종 읽는다.


이 시집을 처음 본 것은 내 신분이 군인이었을 때다. 마르크스나 레닌 같은 저자가 쓴 책은 불온서적이라는 딱지가 붙어 반입될 수 없었는데,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떡하니 적혀있는데도 걸리지 않고 통과됐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떻게 통과된 건지 지금도 궁금하다.


군생활을 한 당시가 80년대 5공 시절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군대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시집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꽤 흥미로웠다. 실제 사례로 군 복무 당시였던 2008년에 국방부는 23권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한 바 있었다. 그중에는 김남주 시인의 '꽃 속에 피가 흐른다'라는 시선집이 포함돼 있었다.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 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

함민복, 자본주의 사연 중 일부


이 시집이 큰 충격이었던 것은 단순히 군대라는 환경에서 접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자본주의 논리를 경제학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인문학적으로 가슴 깊이 후벼 파는 시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문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시는 사실 어떤 사상을 향한 읊조림에 가까웠다. 당연하게도 내가 아는 시의 모습은 아니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코카콜라 광고와 한 신문기사가 한 면에 들어오는 2쪽 분량의 시였다. 광고 속 텍스트와 신문기사의 텍스트가 묘하게 연결되면서, 시 구절 하나 없이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람이 사라진 현대의 역설


몇 년 전, 서울대 경제학부 김수행 교수의 정년 퇴임 기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던 그는 자본주의의 대안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었다. 빈부격차, 양극화, 빈곤문제 등의 문제는 모두 돈과 사람 사이의 불평등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이다.


시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경제 그리고 시장의 논리 안에서 춤추듯 흔들리는 삶. 함민복은 부로 인해 더 편리해지는 오늘날의 사회를 바라보며 ‘자본주의의 약속’은 돈이 남고 사람이 사라진 현대의 역설을 현실적으로 이야기한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지만 우리는 돈과 함께 살고 있고, 어쩔 수 없이 같이 살 수밖에 없다. 어차피 돈과 함께할 삶이라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건 나쁜 방향이건 생각은 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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