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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형준 Oct 29. 2018

집 안 꼴이...

10월 29일의 일

7월에 일을 그만두고 나서 일을 쉬게 된 지 3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그동안 사진 촬영, 독서, 영화 감상, 이력서 작성 등 백수로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했다. 논리적으로 생각해봤을 때, 그렇게 효율적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다. 돈을 벌지 않는 삶이었다. 실업급여라는 명목으로 일정 금액의 돈이 나라로부터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 그리 급할 것도 없다. 생각해보자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왠지 아주 길고 긴 시간이 흐른 것만 같은 기분이다.


집 안에서의 책임


집 안 꼴에 대한 이야기를 최근 들어 많이 접하고 있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게 되면서 어느새 집 밖의 일에서 집안의 일로 책임이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그러한 탓인지 집안이 제대로 청소가 되어있지 않거나 조금 어지럽거나 하면 자연스럽게 구박을 하신다.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했다고 일하지 않은 사람이 먹고 잘 사는 게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괜스레 죄인이 되는 기분이다.


일자리가 도통 없다. 마음에 들라 치면 요구조건이 까다롭고, 요구조건을 충족하는 일자리는 내가 요구하는 조건에 미치지 못한다. 적정한 수준인 줄 알았던 내 수준이 일반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걸 받아들이는 지금 과정이 힘들다.


하루 시간이 여유롭여서 시간이 남는 대로 글도 쓰고 영상도 만들고 사진도 찍고 있으나, 어디까지나 돈벌이가 안 되는 일뿐이다.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나, 돈이 되지 않는 일을 주야장천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과연 올바른 삶인가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혼란스럽게 공존하고, 다른 것보다 앞서서 우선하는 것이 돈이면서도 정작 돈을 벌기 힘들어진 나 자신을 본다.


새로운 출발


나의 내일에 이름도 거창하게 새로운 출발을 가져다 썼다. 매일 썼다가 지웠다 한다. 매직으로 썼다가 아세톤으로 지우고 아예 송곳으로 새겼다가 포비돈과 후시딘으로 덕지덕지. 생각보다 마음을 먹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쉽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도.


하늘은 저 높이 떠있었다. 구름만큼 두둥실 떠오른 마음은 역시 손으로 잡으려해야 잡을 수 없었다. 정처없이 떠도는 마음은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머무르지 않았다. 매일매일 나의 내일은 새롭다. '새로움'이라는 이전과는 '다른' 형용사를 가져다 붙여도 역시 새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래서야. 멀리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마음을 두고 온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있어야 할 곳


나 이외에 꽤 많은 사람들이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면서도 나와 같이 안도하는 사람들이 꽤 많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식은 땀이 조금 났다. 곧 있으면 겨울이고, 시간을 흐르니까 역시 한 살을 더 먹게 될거라고 압박을 받으면서도 그것에 관해서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 이유는 이미 여러차례 겪었기 때문이다. 무덤덤한 시간과는 달리 공간에 대해서는 조금 예민해졌다. 나를 둘러싼 '집'이라는 공간에 관해.


일을 다니고 있을 때는 집이라는 공간이 그리 평온하고 포근할 수가 없으며, 아침마다 떠나기 아쉬운 그런 공간이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당연하게도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집은 역시 포근하고 편안하지만, 너무 익숙해질까봐 두렵기도 하다. 포근함에 취해 편안함에 취해 내일도 내일 모레도 같은 곳에서 머물러 있을 것이 걱정되는 것이다.


최근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꽤 오랜시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생각했다. 완벽한 결론은 아니지만 방향이 생겼다. 어쩌면 그동안 너무 길게 내다본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마치 RPG 게임의 테크트리처럼 완벽한 순서로 인생을 살아나가려한 것은 아닌지. 생각과는 다르게 답은 굉장히 간단했다. 그냥 일단 해보는 것.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는 한 번 뿐이지만, 그 한 번의 인생에서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기회는 꽤 여러번 있다는 걸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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