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들리 쿠퍼 감독, 영화 <스타이즈본> 을 보고
스포일러를 원치 않는 분께서는 영화를 다 보신 후 읽어주세요 :)
이야기, 내 이야기의 중요성
"당신 속을 까보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어. 진심을 노래하지 않으면 끝이야. 지금은 사람들이 당신 얘기를 듣겠지만 계속 그러진 않을 거야. (중략) 그냥 하고 싶은 얘기를 해."
- 영화 <스타이즈본>, 잭슨 메인의 대사 중에서
대학교 졸업장을 받은 이후 손 놓고 있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된 이유는 내 안에서 꿈틀대는 불편한 이야기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 역시 일상 속 모든 것들을 이야기로 연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전 같으면 기분 나쁜 일이 생겼을 때 친구나 가족에게 험담하며 감정을 배설 했을 테지만 이제는 마음에 들어온 어둡고 나쁜 감정 역시 일단 안으로 품어서 ‘이놈 역시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찬찬히 뜯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앞뒤 맥락 없이 그때그때 험담을 하거나 짜증을 내서 배설했던 것들이 이제는 나만의 서사로 들어와 하나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 후로 제대로 편집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라도 나쁜 감정이라도 한 번 더 곱씹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영화 ‘스타이즈본’의 남자주인공 잭슨 메인은 예술가에겐 무엇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이야기가 없으면 노래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를 꺼내어 보이지 않으면 결국 사람들이 외면할 것으로 생각하는 그의 가치관은 영화 속 여러 대사에서 오롯이 드러난다. 아마도 잭슨은 처음 앨리와 만났을 때 앨리의 노래에서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에 감화되어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정식으로 데뷔하고 유명해질수록 ‘지어낸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부르는 것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고, 마침내 그 자신이 그녀의 ‘진짜 이야기’가 되기를 자청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잭슨의 자살 이후 마지막으로 앨리가 부르는 노래는 영화 속 그 어떤 트랙보다 진실한 감정으로 다가온다. 잭슨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데에는 물론 볼품없는 모습으로 변해버린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자괴감도 큰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잭슨의 자살은 반짝이던 자신의 과거를 연상시키는 아티스트 앨리의 이야기 안에 영원히 살고자 한 동료 예술가의 선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적정선에서만 맴돌며 느낀 자격지심에 대해
창작을 하는 사람한테 내면에 쌓인 서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더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예술가가 주인공인 영화를 볼 때마다 이렇듯 숭고한 서사 앞에서 절감하게 된다. 또 상대적으로 내 이야기는 얼마나 초라한가 비교하며 움츠러든다. 스타이즈본의 남녀주인공같이 금방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반짝이는 재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을 잊고 술과 마약에 찌들 정도로 한 분야에 강박적으로 매달려 살아볼 용기는 없고, 심지어 기회가 있더라도 예술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과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그래서 항상 내 이야기는 너무 평면적이고 밋밋해서 누구 하나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런 매력 없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걱정해왔다. 흔히들 생각하는 적정선을 훌쩍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자기 분야에 매달리는 강박과 용기, 열정이 내 안에 없는 것 같다는 점은 늘 고민이었다. 무엇하나에 미친 듯이 몰입해서 어느 경지에 도달하기에는 나는 너무나도 알아서 적정선을 지키려 애쓰는 사람이라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에는 애초에 글러 먹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은 늘 내 삶을 따라다녔다.
이런 생각에 정점을 찍어주었던 건 뜻밖에 예술이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회사생활을 할 때였다. 똑같이 책상에 앉아 고민해도 금방 잘 정리된 아이디어를 몇 가지 뚝딱뚝딱 만들어 회의 때 갖고 오는 동료, 나보다 야근도 많이 하는데 새벽까지 술자리에, 클럽에 가서 놀기까지 하는 그야말로 잘 노는 모범생이었던 입사 동기들, 그리고 똑같은 24시간을 사는데 나보다 늘 좋은 콘텐츠와 좋은 장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풍부했던 사람들. 항상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차고 넘치던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야말로 소재가 고갈된 채 껍데기만 남아있는 ‘재미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 질투와 불안함에 휩싸이곤 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다지 풍부한 경험을 하지도 못했고, 지금도 부지런하게 이것저것 시도해볼 열정도 없어 ‘영원히 이야깃거리가 없는 사람으로 남아 도태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하며 언제 어디에서나 톡톡 튀는 사람들 사이에서 꽤 오랫동안 내 서사를 찾기 위한 고민을 해왔다.
적정선을 지키는 삶이라 가능한 서사도 있지 않을까?
나를 고민하게 하던 집단에서 벗어나 혼자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사실은 그동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던 게 아니라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단지 소재가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머뭇거리며 이야기를 차마 하지 못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160페이지를 채운 단편소설 여섯 편의 이야기는 비록 소설이지만 내 안에서 출발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섯 편의 이야기를 돌아보니 내가 부러워하던 이들과 내가 갖고 있던 소재의 종류가 조금 달랐을 뿐인 게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나 자리와 같이 동적이면서 관계 지향적인 소재를 많이 갖고 있었다면, 나는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인간관계의 모양과 사람 하나하나의 내면 등 조금 더 긴 설명이 필요한 개인 지향적인 소재를 한껏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말로는 쉽게 이야깃거리로 풀어내기가 어려워 차마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던 것들이지만, 글로 쓸 때만큼은 얼마든지 길게 쓸 수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 소재로 꺼내 보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창작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이야기는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장 주말에 친구를 만나도,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를 할 때라도 각자 입을 열고 하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요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는 지표다. 게다가 대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이야기 소재를 고르고, ‘내가 어떻게 보여야 할 것인가’를 은연중에 고려하면서 이야기를 편집해서 대화한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조금이라도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식으로 대화의 기술을 발휘하는데 이때도 가장 중요한 게 내가 겪은 여러 일 중에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편집하여 보일 것인가’이다. 그래서 내 이야기가 어떤 모양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스스로 직시하면서 사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나는 ‘서사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콤플렉스를 느끼며 내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쓰는 일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에야 사실은 서사를 표현해내는 적절한 방법을 몰랐던 것이었음을 깨닫고 이제는 글을 통해 내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앞으로도 아마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나는 지금처럼 계속 적정선을 유지하는 인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술을 어느 정도 마시면 갑자기 기절을 해버리는 고질병 때문에 애초에 술고래가 될 수도 없고, 감수성을 자극하는 상황은 좋아하지만 맑은 정신으로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선호하는 성향이라 판단을 일부러 흐리는 마약을 찾을 것 같지도 않다. 또 돈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누구한테 빚지는 걸 워낙 싫어해서 수입에 초연한 채 무기한 글만 쓰는 삶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즉 영화, 드라마, 문학작품 등에서 소비되는 가난하고 아슬아슬한 삶을 영위하는 예민한 예술가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건강을 염려하고, 이성적인 삶의 양식을 유지하려 애쓰는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서사의 결말이 영화 속 예술가들의 결말 대비 ‘재미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 같았으면 ‘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목숨을 건 사랑도 해보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해야지 그렇게 무난하게 살아서 되겠어?’라는 목소리에 내가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염려하며 쪼그라들었을 테지만 이제는 스스로 생각하는 적정선을 지키며 사는 삶이라서 가능한 서사도 있다고 믿는다. 또 어차피 내가 보기에는 정말 재미없는 영화도 흥행하는 세상인데 나 하나쯤 재미없는 얘기하나 더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큰 해악이 되지도 않을 것 같다. 비록 영화 스타이즈본의 등장인물들처럼 무대 위의 영광은 누리지 못한다 해도 그들과는 전혀 다른 내 이야기를 쓸 수는 있다며 스스로 다독이며 오늘도 내 안에서 꿈틀대는 이야기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