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팬보다 약하다
펜과 종이는 이제 랩퍼들의 것이다. 기자의 하루는 국민메신저로 시작한다. 펜을 마지막으로 잡은 지가 언제인지는, 까마득하지만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기자 입사시험을 치던 날, 여분의 펜을 바꿔가며 빼곡하게 논술을 적어내던 날이었다. 사각거리는 필기감이 좋던 0.3mm 검정펜은, 나를 대학에 보내줬고, 취업준비를 함께 했고, 기어코 나를 기자로 만들어준 뒤 그 날로 자취를 감췄다. 진정 박수칠 때 떠날 줄 아는 펜이었다. 요새는 랩퍼들의 가사나, 허세 찬 브이로그 속에서 간간히 소식을 전하고 있다. 빼곡하게 들어찬 가사노트 같은 것 옆에서.
펜이 떠나간 자리가 허전하지는 않다. 출근은 9시지만 8시 정도면 이미 그 날의 발제가 끝나있어야 한다. ‘나와의 채팅’에는 가사노트처럼 전날의 고민이 가득하고, 최종의 최종의 최종 버전의 발제를 떨리는 손으로 사수에게 보내는 것이 신입기자의 아침 풍경이다.
‘발제’
이것은 기자의 알파이자 오메가요, 밥줄이자 관짝이요, 천국과 지옥이고, 아무튼 좋고 나쁨의 극단적인 면 2개를 붙이면 뭐든 어울리는 마성의 업무다. 왜 나는 기자 시험을 칠 때까지 기자란 ‘매일매일 신문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란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아마 기자 준비란 마치 시인처럼, 하나의 주제에 대해 자신의 글을 오랫동안 갈고 닦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리라.
간단히 말해 ‘오늘 나는 이것을 쓸 것이다’고 말하는 발제는, 하루 시작의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선배가 좋다, 써봐라 하면 일단 한 숨 돌린 것이고, 발전시켜보자, 하면 위기는 넘긴 것이고, 읽고 말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있는 최대한의 순발력을 발휘해야 한다. 누가 봐도 방금 지어낸 따끈따끈한 이슈를 황급히 덧붙여서 “이런 것도 생각해봤사옵니다”를 보여준다. 역시 내가 전날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민한 주제는 관짝에 들어가고, 다른 언론에서 너무 많이 써서 더 이상 아무도 보지 않을 닳고 닳은 주제가 선택된다.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화제가 됐고, 쓸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였을 테니까. 다만 내가 신입인 탓에 제 때 이 주제를 건져오지 못했을 뿐이다.
나는 발제를 고민하던 첫 날의 분노를 기억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다른 신문을 읽고 새로운 것을 찾아오는 것이 굉장한 모순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다른 신문을 읽고 발제를 찾아오는 것이 선배들이 신입에게 보내는 하해와 같은 아량임을 깨달았다. 취재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것을 짧게 줄여서, 우리는 ‘단독’이나 ‘특종’이라고 부른다. 다른 기자가 이미 다룬 주제더라도, 나에게 그 주제로 기사를 써볼 기회를 주는 것이, 취재라는 혹독한 벌판에 던져지기 전 마지막 연습 같은 것이었다.
이 닳아빠진 주제를 어떻게 다시 지면에 실릴만한 글로 바꿀 것인가. 그것이 오늘 이 가련한 신입기자의 점심이 된다. 너무 길게 고민해서는 안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녁에는 다른 일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