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논리
일러두기
1. 앞의 글들을 우선 읽기를 추천합니다.
2. 본문 안에서 타이포그래피 용어는 띄어 쓰지 않았습니다.
3. 윤문이 되지 않은 글입니다. 여유를 두고 수정할 예정입니다.
일반적으로 그리드와 안내선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안내선은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특정한 형태를 정렬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지만, 그리드는 형태소를 공유하며, 가로세로 ‘일정한’ 간격으로 짜여진 구조를 말한다.
시각 결과물은 과거로부터 끊임없이 사회의 핵심 관념을 형태로 투영하는 역할을 해왔다. 문명이 시작될 즈음에 시작된 샤머니즘에서 발견된 시각 결과물은 대체로 희망과 욕망이 뒤엉켜 만들어진다. 그리고 철학의 시대로 넘어오면서 인간과 형태의 근본적 아름다움을 고민하던 시기에는 주체에 인식된 사물을 더 완성도 높고 이상적인 것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근본적 아름다움에 대한 고민은 다시 종교의 시대로 넘어오며 ‘유일신’의 강력한 구조를 형성했다. 유일신의 종교 구조 틈바구니에서 다시 철학과 인문학이 꽃을 피기 시작했으며, 이때는 유일한 것에 대한 ‘의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것이 ‘답’을 찾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의문’의 행위를 독려하던 철학에서 우리는 지금의 ‘과학’을 만난다.
현재의 삶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대체로 생각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은 대략 3가지가 혼재해 있다. 첫 번째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유일하다고 믿는 ‘유일신’의 맹목적 관점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정해진 ‘답’으로 모든 이유와 과정이 귀결된다. 두 번째는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다. 유일한 것에 의문을 품고 계속 질문을 던지고 문제제기를 한다. 그렇게 끊임없는 의문을 통해 답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이렇게 얻어진 답은 ‘경험’이 중요한 현실에서 탁상공론으로 끝나기도 한다. 세 번째는 과학의 ‘실험과정‘을 통해 원인과 결과를 얻는 사람들이다. 답을 얻는 과정을 다소 느리지만 원인과 결과에 대한 ‘논리적’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이렇게 얻어진 ‘결과’들이 가장 정확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과학적 사고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개도 하려는 태도를 가진다.
이러한 3가지 방식 중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세 번째 "과학적 ‘실험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가 논리적 체계를 갖는다는 생각"은 지금 현재도 사회의 지식인 계층이 되는 가장 중요한 토대임은 분명하다. 이것은 지식인이 되기 위해 요구되는 사유 방식이다.
이러한 생각이 시작된 18~19세기에 다양한 분야의 엘리트들은 철학에서 과학으로 나아가고자 했으며, 이는 자신이 속한 분야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분위기는 디자인 분야에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특히나 형태에 대한 논리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각 디자인 분야는 '느낌'이 아닌 '논리'를 갖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는 인간 중심적이어야 하는 논리를 왼쪽맞추기 문자정렬 방식에서 찾았으며, 그리드를 통해 완성하고자 하였다.
그리드는 '공간'에 논리적 체계를 구성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그리드를 사용하지 않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현대적이지 않은', '논리적이지 않은', '비효율적인', '경제적이지 못한' 수식어를 붙이며 맹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한 노력(?)들 덕분에 현재는 그리드를 사용하는 것이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드는 공간을 체계화하고 규격화한다. 이는 받아들이는 독자로 하여금 시각 정보를 쉽고 빠르게 구분하게 하는 건 분명하다. 또한 다양한 구조로 확장된 내용이 지속적으로 쏟아지는 타이포그래피 분야에 효율적이고 빠르며 (당시 관점으로)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돕는다. 이러한 태도는 발달된 디스플레이로 시각 디자인과 산업 디자인이 복합적으로 고민되어야 하는 현대에 이르러 더 중요한 태도로 요구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대의 디자이너들에게 그리드는 꼭 습득해야 하는 기술이다.
그래서 20세기 중반 그리드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을 '모더니스트(현대주의자)'로 규정했다. 그래서 그리드를 사용하지 않는 디자이너들을 "현대적이지 않은 디자이너"로 규정했다. 지금의 언어로 바꾸어 말한다면 "힙하지 않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20세기 중반에 '현대'라는 말이 최신 유행으로 소비된 탓에 오히려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현대적'이라는 말이 다소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양식을 구분하는 일에 '시점'을 붙이는 것은 다소 적철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현대주의는 '기능주의'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현대주의자들은 '그리드'를 '체계'화 하고자 했다. 격자구조가 이미 사용되어 왔으나 이를 '체계'로 묶어 방법론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드를 타이포그래피에 활용하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이를 '그리드 체계'라고 한다. 그리드의 형태를 디자인하는 방법에서부터 이를 모든 페이지에 일관되게 정리하는 방법까지 제안했으며, 이를 교본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일에 아낌없이 에너지를 쏟았다. 그래서 '그리드 체계'는 단순히 '그리드'와 동의어가 될 수는 없다. '그리드 체계'는 하나의 작업 안에서 일관된 태도로 공간의 논리를 구성하는 일이며, 각 작업의 내용에 따라서 그리드를 설계하는 방법은 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