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방식
일러두기
1. 앞의 글들을 우선 읽기를 추천합니다.
2. 본문 안에서 타이포그래피 용어는 띄어 쓰지 않았습니다.
3. 윤문이 되지 않은 글입니다. 여유를 두고 수정할 예정입니다.
구두점은 글을 끊어 읽거나 쉬어 읽어야 할 때 사용하고, 문장부호는 정보를 구분하거나 표시해야 할 때 사용한다. 문자 이외에 왜 이러한 방식의 표기들이 글자와 함께 사용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낱말사이에서 문자를 대하는 문명과 문화의 변화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문자는 기록의 측면에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발명되거나 발견되었으나 자연스럽게 문자는 다시 인간을 만드는 과정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인간은 문자를 만들고 문자는 인간을 만드는 순환 과정을 통해 인간의 생각은 진보하게 된다. 글이 기록된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넓고 깊게 읽히기 시작할 때 글은 다시 고쳐 쓰게 되고, 고쳐 쓰는 행위는 다양한 생각의 확장으로 진화한다. 낱말사이는 문자가 기록에서 읽히고 고쳐 쓰고 다시 읽히는 과정에서 읽기 편한 방법으로써 사용된다. 인간의 말하는 호흡에 따라 낱말과 낱말 사이에 빈 공간을 두어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정리하였다. 띄어쓰기가 사용되지 않던 시기는 고도로 숙련된 사람들만이 글의 정확한 의미를 이해했을 것이다.
구두점과 문장부호도 이러한 읽기의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문자를 접하면 청각적 경험으로 전환한 뒤 ‘종합적 감각으로의 이미지’(이하 이미지)를 구성한다. 이미지는 단편적으로 보이지만 종합적 구성으로서의 합으로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는 '수박'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단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 같지만 거기에는 '녹색', '검은 수박 줄', '수박의 위치' 등 다양한 시각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문자를 접한다는 건 이러한 종합적 경험이다. '구두점'은 이러한 종합적 경험에 대한 분위기와 뉘앙스를 갖고 있다. 낱말을 쉬어 읽을지 끊어 읽을지에 따라서 이미지의 뉘앙스는 달라진다. 예를 들어 동일한 영화를 흑백으로 볼 때와 컬러로 볼 때의 차이를 상상해 보자. 동일한 구성이라고 하더라도 우린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문장부호'는 어떨까? 문장부호는 이미지 안에서의 구성의 세세한 위치 조절과 같다. 우리는 서로 동떨어져 있는 사물도 가까이 위치하면 서로 연관된 것으로 이해한다. 미장센처럼 문장부호는 세세한 낱말들을 연출한다. 이러한 연출에 따라 우린 문자를 읽으며 더욱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구두점의 형식은 고대로부터 점차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는 문자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한데 문자를 기록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각 형식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지워지기도 한다. 특히 문자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권력이 집중 될 수록 읽기 자체를 어렵게 하길 원한다. 서구 중세사회의 종교가 그랬고, 조선의 사대부가 그랬다. 지금도 엘리트 의식을 갖고 있는 지식인들의 일부는 의도적으로 어려운 뜻의 문자를 쓰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 인쇄 기술을 상용화하고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큰 수익을 얻게 되면서 출판은 활성화되고 소비되기 시작한다. 금속활자에 의해 문자의 권력이 읽고 쓰는 것에서 생산력으로 변환된 것인데, 이때 더 많은 생산력 촉진을 위해서는 읽는 사람들의 편의를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현대적 의미의 구두점과 문장부호는 15~16세기에 시작되어 18세기에 이르러서 정리되기 시작한다. 구텐베르크 이후 서구사회가 먼저 현대적 의미의 구두점과 문장부호를 정리하여 사용하였는데, 각 유럽의 지역 및 도시, 국가에 따라서 조금씩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예를 들면 ?(물음표)만 쓰는 곳이 있는 반면 ¿(역물음표)과 ?를 함께 쓰는 지역도 있다. ‘’(작은 따옴표)와 “”(큰 따옴표) 쓰는 곳과 따옴표 대신 ‹›(기예매) «»(겹기예매)를 쓰는 곳이 있다. 동아시아는 이러한 기예매를 내려쓰기에 사용하기 위해 「 」(낫표)와 『 』(겹낫표)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구두점과 문장부호들은 각 지역의 분위기와 관습에 따라 고착화되어 사용되고 관례화 되었다.
한글은 구한말 유럽의 선교사들에 의해 현대적 구두점과 문장부호가 전달되기 시작했다. 다만 혼란스러운 시기에 받아들인 탓에 다양한 서구식 방식과 일본방식을 모두 받아들여 정리되지 못한 채 복잡하게 사용되었고, 이러한 구두점과 문장부호는 지금까지 한글에 맞게 정리되지 않고 모두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대체로 한글 디지털 글꼴 안에서도 문장부호가 명확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디자인되어 사용하지 않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글에 적합하고 적절한 구두점과 문장부호를 고민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구두점과 문장부호가 다채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쓰일 수는 있다. 하지만 중복된 의미와 조화롭지 못한 형태를 가진 부호에 대해서 다양한 해법을 제시해야 함에도 이러한 기회를 제대로 고민하고 토론할 기회를 만들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한번은 진지하게 구두점과 문장부호에 대한 의미와 요소들을 서로 소통하는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