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검은 머리 사이에 튀어나온 흰머리는 거슬리고, 벌써부터 흰머리를 기르긴 싫고, 염색을 하자니 비용이 걱정된다. 그래서 내가 볼 수 있는 부분은 어떻게든 뽑고, 가끔씩 남편에게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부탁한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란 남편에게는 첫 경험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편한 자세를 잡을 줄 몰라 금방 힘들어하고, 머리를 한 움큼씩 쥐어뜯을 때도 있었다. 자꾸만 머리카락의 끝부분을 잡아당겨 뽑는 대신 끊어먹기도 했다. 그런 남편이 요즘은 가르마를 딱 갈라서 하나씩 잘도 뽑는다. 실수로 검은 머리를 뽑으면 바닥에 슬쩍 버려 나한테 안 들키려는 요령까지 생겼다.
곧 머리를 잘라야 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흰머리를 보이는 게 부끄러워 남편에게 흰머리를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오늘은 유난히 앞쪽에 있는 흰머리만 공략했다. 내가 자주 뽑아서 짧은 탓에 족집게로 잘 잡히지도 않는 것들을.
"그쪽에 있는 건 나도 볼 수 있어서 안 해도 돼. 내가 알아서 뽑으면 돼."
"여보가 흰머리만 안 보면 행복할 거라는 게 내 가설이야"라고 남편이 대꾸했다.
맞는 말이지 하면서 끄덕끄덕하니까 남편이 한마디 덧붙였다.
"나 효율보다 네 감정 우선시하는 거 봤지?"
어디서 들어본 말이다. 며칠 전 크리스마스 때가 생각났다. 남편이 선물로 텔레토비 키링을 줬다. 갖고 싶었지만 내 돈 쓰기는 뭐 한, 내가 생각하는 선물의 정의에 딱 맞았다. 신나 하는 내게 남편이 말했었다. "봐, 나 쓸모없는 선물도 잘해~"
내가 얼마나 내 감정을 돌봐달라고 했는지. 쓸데없는 것도 중요하다고 징징댔는지 알 것 같았다 흰머리도 뽑아주고 오늘 글감도 줘서 고맙다,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