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문학을 하나씩 읽는 게 오랜 목표였다. 왜 고전이 고전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새해가 시작되었으니 새로운 걸 시작하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짬짬이 책 읽는 습관이 들지 않은, 그렇다고 따로 시간을 내지도 않는 내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잠들기 전 오디오북으로 몇 분씩이라도 듣기로 했다. 나중에 책을 읽더라도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렇게 처음으로 선택한 책이 <프랑켄슈타인(메리 셸리 지음, 오수원 옮김, 현대지성 펴냄, 2021)>이었다. 많은 매체에서 프랑켄슈타인을 왜 초록색으로 표현하는지 궁금했다. 이 문장에서 드러나듯, 나는 프랑켄슈타인이 창조자인지 피조물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다 끝내고 검색까지 하고 나서야 알았다.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첫 영화가 흑백이었고, 시신의 느낌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초록색을 썼던 게 그대로 이어진 것이라는 걸. 초록색은 소설 속 묘사가 아니었다. 어쩐지 끝까지 안 나오더라….
<프랑켄슈타인>은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더 전에 출간된 소설이다. 이 오래된 이야기가 아직까지도 현대의 삶과 맞닿는 지점이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과학 기술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성과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나는 추가적인 질문을 계속 마주했다. 창조했다고 해서 피조물을 사랑해야만 하는가? 설계되어 탄생한 생명은 어떤 존재인가?
미국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면 다양한 삶의 형태를 접하게 된다. 결혼부터 이혼 과정까지 함께하고 있는 게이 친구가 있고, 출산을 고려 중인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들었다.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면서 창조자와 피조물, 사랑과 책임, 기원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들이 현대에는 어떻게 나타날지 생각했다.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에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부제를 붙였던 것처럼, 지금의 프랑켄슈타인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나만의 독후감인 셈이다. 아래는 떠오르는 이야기를 정리한 줄거리다.
지원은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 임신과 출산을 통해 아이와 특별한 유대를 맺고, 그 경험 자체가 사랑의 증거가 될 거라 믿는다. 반면 Claire는 공평함을 중요하게 여긴다. 지원이 자신의 몸으로 아이를 낳는 대신 아이의 생물학적 기반은 자신이 제공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Claire의 난자를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지원은 그 선택에 동의하면서도, 아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정자 제공자로 친한 지인을 떠올린다. Claire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녀는 이 기회에 아이가 두 사람과 자연스럽게 닮아 보이길 바란다. 외모, 지적 능력, 건강 상태 등 원하는 조건을 하나씩 좁혀 가며 정자 기증자를 선택한다. 정자 제공은 관계가 아니라 판단이어야 하고, 이 아이는 감정이 아니라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아이는 설계된다.
임신 기간 동안 지원은 아이와의 완전한 연결을 상상한다. 아이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출산 이후 자연스럽게 형성될 유대를 기대한다. Claire는 아이의 기원이 자신의 난자에 있다는 점에 안도하면서도, 태아의 성장에 자신이 직접 닿아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태동도, 입덧도, 출산의 순간도 그녀의 것이 아니다. 그 불안을 Claire는 정자 선택의 이유와 결정 과정을 반복해서 설명하고, 병원 일정과 출산 이후의 계획까지 세세하게 정리하는 방식으로 다룬다.
출산 후, 두 사람의 기대는 어긋난다. 아이는 Claire를 닮았다. 얼굴의 윤곽과 눈매, 사고방식까지. Claire는 아이에게서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안도하며, 이 아이가 분명 자신의 아이라는 확신을 얻는다. 지원은 당황한다. 자신의 몸을 통해 나온 아이에게서 자신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 출산 이후 변한 자신의 몸과 감정 앞에서 지원은 아이와의 유대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이의 성격 역시 자신과 다르다. 지원은 아이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이 기대했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흔들린다.
딸은 자라면서 자신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질문을 받는다는 걸 알게 된다. 가족 관계도를 그릴 때, 가족 이야기가 나올 때, 학부모가 학교에 오는 날에도 딸의 가족은 늘 한 번 더 확인된다. 누가 낳았는지, 왜 엄마가 둘인지, 아빠는 누구인지. 질문은 호기심처럼 시작되지만 대답을 해도 끝나지 않는다. 딸은 자신이 우연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두 사람이 자신이 그들과 닮아 보이길 바라며 정자 기증자를 고르고, 자신을 설계했다는 사실도.
딸에게는 두 명의 양육자가 있지만 자신의 생물학적 반쪽은 끝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이름도, 얼굴도, 이야기를 건넬 대상도 없는 공백. 딸은 그 공백 속에서 자신이 온전히 완성되지 않았다는 생각을 키워 간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질문이 멈추는 순간이다. 그래야 자신이 설명이 아니라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