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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타이퍼 May 12. 2020

내 손이 차가운 건 말이야

하루치 아무말29





  최중현, 그의 이름은 최중현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면 괜히 기분이 이상했다. 키도 나보다 작고 특별히 잘생긴 것도 아니었다. 노래를 잘하지도 않았다. 공부를 잘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나보다 훨씬 잘한다거나 뭐 그런 건 또 아니었다. 나는 자주 그런 최중현의 뒤에 앉았다. 그 까만 뒤통수를 보고 있다가 그 애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눈을 재빨리 돌렸다. 그 애가 내 쪽을 보고 있으면 나는 등을 돌려 다른 애와 장난을 쳤다. 그 애는 남자 애들하고만 장난을 쳤는데 주로 시끄럽고 번잡스러운 놀이를 즐겨했다. 얌전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한다거나 책을 본다거나 하는 일은 그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그앨 보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했지만 보는 걸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보고 있는 걸 그 애가 알아차리기 전에 눈을 재빨리 움직일 수 있으니까 들킬 염려도 없었다.
  
  운동회 날이었다. 내가 운동회를 싫어하는 건 아마 3살 적부터 시작된 불호의 감정일지도 모른다. 나는 운동이라고는 숨 쉴 때를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하는 법이 없었다. 같은 반 아이들이 맹목적으로 달리거나 어딘가엘 오르거나 오른 후에 뛰어내리는 것을 볼 때마다 그들이 나와 같은 반인 것이,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이 끔찍스러울 정도였다. 되도록이면 그런 애들 옆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으로 경멸을 표현했다. 그런 내게 운동회란 나의 부모와 그런 애들의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이유 없이 달리거나 던지거나 당기기를 요구받는 연중 최악의 행사였다. 특히나 달리는 것을 가장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모두가 나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모두가 나보다 빠르다는 사실을 안 이후로 나는 달리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그 애 최중현이 운동회에 있었다. 나와 똑같은 체육복을 입고서. 그의 바지엔 이미 누런 흙물이 여기저기 베여 있었다. 이런 날 그 애가 얌전히 제 순서를 기다렸을 리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조금 더 더럽긴 했지만 같은 옷을 입고 그 애와 같은 장소에 있으니 또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사람이 아주 많은 틈을 타 그 애의 뒤통수뿐만 아니라 옆모습까지 더 자주 오래 쳐다볼 수 있었다. 운동회처럼 쓸데없는 일이 어쩐지 조금 좋아지려고 했다. 그 애는 공부는 나랑 비슷하게 했지만 달리기는 나보다 훨씬 잘했다. 내가 그 누구와 달려도 가장 느렸던 데 비해 그 애는 그 누구와 달려도 가장 빨랐다. 아주 빠른 그 애를 보고 있으니 어쩌면 내가 그 애 뒤통수를 쳐다보다가 들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로 끔찍했던 달리기가 끝나고 포크댄스의 시간이 왔다. 동그랗게 두 줄로 서서 남자 애들과 여자 애들이 손을 잡고 율동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각자의 부모가 펼쳐놓은 돗자리에서 김밥과 통닭을 먹다가 호루라기 소리와 마이크 소리에 마구잡이로 모인 애들이 동그랗게 섰는데 하필 내 앞에서 오른쪽 두 번째에 그 애 최중현이 서 있었다. 포크 댄스는 한 세트가 끝날 때마다 옆으로 돌면서 파트너가 바뀌는 춤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내 눈앞에 서 있는 이 지저분하고 얼빠진 애랑 한 세트를 추고 나면 내가 최중현의 손을 잡고 춤을 춰야 한다는 말이었다. 한 번도 잡아 본 적 없는 그 애의 손을 잡고 춤을 췄다. 그 애는 율동하는 내내 목에 힘을 줘 반대편으로 쭈욱 빼고는 얼굴을 최대한 멀리 두고서 한 번도 내 눈을 보지 않았다. 그러다가도 손을 잡을 때는 망설임 없이 덥석 내 손을 끌어다 잡고 춤을 췄다. 그 애의 손이 생각보다 작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뜨거웠다. 나는 내 손이 너무 차가워서 그 애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얼음이 든 음료수를 마시다가 뛰어와서 그렇다고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어서 속상했다. 속상했지만 그 애의 뜨거운 손을 잡고 있어서 속상하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운동회가 또 언제 열리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내 나이, 누군가를 애정 하기에 적당한, 6 살이었다.





Ref.of photo,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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