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치 아무말 28
마음이 힘든 사람은 자꾸만 과거를 들춘다. 지난 시간의 나는 가졌었고 지금은 잃은 것을을 자꾸 생각한다. 그 시절의 나와 주변인들, 연애의 시절들, ‘아파트 수영장 25미터 자유형으로 완주’가 가장 중요한 과제였던 07년 3월의 밤, 강바람에 얼굴을 내밀고 담배를 태우던 우리, 젖은 수영복을 대충 널어놓은 세상 허접한 호주식 빨래 건조대가 바람에 휙 넘어가는 걸 보고 호주는 왜 이딴 빨래 건조대를 쓰는 거냐며 투덜대던 우리,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15분씩이나 되는 거리의 시티를 마치 집 앞 편의점 가듯 몇 번이고 오갔던 우리, 그 밤의 퀸 스트릿의 분위기와 온도. 그 모든 장면에 등장하는 김현. 네가 나를 두고 시드니로 떠나버린 후에 많은 것들이 변했지. 너의 삶도 나의 삶도. 내가 지난 10년의 호주 생활을 견디느라 파먹은 대부분의 추억은 너와 내가 그 아파트에서 자유형을 익히려 발버둥 치던 때에 있다.
자유형 25미터를 위해 우리가 매일 쏟았던 열정이 잊히지 않는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무리 중에 오직 나 하나였다. 나만 빼고 다 물놀이를 하는 상황이 여름휴가 며칠 동안 만이라면 그냥 버틸 수 있었을 텐데 그 시절 우리는 매일매일을 수영장에서 놀았다. 눈 뜨면 수영장엘 갔고 밥 먹은 후엔 다시 수영장엘 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 아파트 수영장은 브리즈번 최고의 뷰를 배경화면으로 두고 있었다. 낮에는 낮이라서 밤에는 밤이라서 아름다운 뷰가 펼쳐진 야외 수영장이 무려 공짜였다. 게다가 그 바로 옆엔 물이 뽀글뽀글 쾅쾅 올라오던 스파가 있었고 그 물놀이가 끝나면 뛰어들 핀란드식 사우나도 있었다. 이런 와중에 혼자 수영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손해였다. 무조건 수영을 배워야만 한다고 모두가 주장했다. 내가 한 달 안에 수영을 할 수 있게 되느냐 없느냐의 문제를 두고 배팅도 시작되었다. 그때의 나는 수영은커녕 1.2미터 수심에 몸을 빠드리는 게 너무 무서워 물에 들어갈라치면 튜브 비슷한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스파게티처럼 생긴 스티로폼 막대를 끼고 있거나, 바람 든 공이라도 들고 있어야만 빠져 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내게 모두가 달라붙어 수영을 가르쳤다. 내가 수영을 끝내 못할 거라 배팅한 쪽도 예외 없이 열정적으로 본인의 수영 비법을 전수하려 들었다. 나는 내 얼굴이 저 수영장 물 안으로 꼴아박힐 생각을 하면 생각만 했는데도 이미 숨을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런 내게 김현은 자꾸만 머리를 물속에 처박은 후 온몸에 힘을 빼고 물 위에 떠보라 했다. 세상에서 젤 무서운 일을 이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것이 신기했다.
모두의, 특히 김현의 엄청난 코칭과 지지를 바탕으로 나의 수영장 물에 얼굴 처박기 시도는 한 달간 지속됐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유형 비슷한 무언가를 흉내 내어 25미터를 전진할 수 있게 되었던 날, 모두가 손뼉을 쳤다. 모두가 함께 즐거워했다. 김현과 나는 내 실패에 배팅했던 이들을 향해 호탕하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내기에서 이겨 따낸 술로 진탕 마시고 밤새 놀았다. 젊었던 우리에게 다음날의 숙취 공포 따윈 수영장 물에 얼굴을 처박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해 3월은 수영장에서 시작해 수영장에서 끝났다.
물속에 얼굴 처박기가 두려웠던 내가 지금은 발 만 닿는 깊이면 어디서든 자유롭게 자유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수영을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로 소개하기도 한다. 그토록 두려웠던 수영이 놀이가 되고 운동이 되기까지 나와 내 친구 김현이 쏟았던 열정과 노력이 새삼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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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브런치를 열었습니다. 복잡하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아주 길고 버거웠는데 이제 하나씩 정리를 해 나가는 중입니다. 마음을 바쁘게 쓰려고 시작한 방구석 프로젝트 ‘하루치 아무말(하무말)’을 개인 블로그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매일 다른 형태로 꾸준히 찾아오는 좌절감과 우울감을 다스리기 위해 매일 아무 말이나 써서 포스팅하는 혼자만의 약속인데 여기서 포인트는 "매일"에 있습니다.
(블로그에 매일 올라가는 제 포스팅이 저를 이웃으로 추가해 두신 분들의 피드에 너무 자주 등장하여 필요 이상의 화면 지분을 차지하게 될까 봐 걱정되어 매일 하나의 아무말을 올리되 다음날의 아무말이 올라오는 순간 전 날의 아무말은 비공개로 전환됩니다)
브런치에 올린 글은 발행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서 과도하게 아무말인 하무말은 애초에 옮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무말이 '말'인 것은 아마도 정말 아무 말이나 해대는 수준이라 '글'이 되기 어려울 것 같아서입니다.
*아무말은 그것이 논픽션 개인사인 날과 거기에 상상력이 더해진 반(half)픽션인 날을 오갈 것 같습니다.
오늘은 28번째 하무말을 옯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