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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C Jul 07. 2019

여름의 낙수_01

단편소설집

장마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엷어진 먹구름 사이로 희미한 태양빛이 비치고 있다. 물기를 담뿍 머금은 산은 더없이 짙푸르고 깊은 색으로 아파트 단지를 감싸고 있고, 그 능선으로 안개구름이 기어오르고 있는 게 선명하게 보인다. 바람이 건너편 아파트 옥상의 환풍기를 가볍게 건드리고 전깃줄에 걸려 있는 빗물에 젖은 까만 비닐봉지에서 물방울을 털어냈다.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간 뒤 우-하고 긴 꼬리를 끌며 사라지는 바람의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베란다에 서 있다. 물방울이 알알이 맺힌 방충망 너머로 건너편 708동의 맨 왼쪽 5층, 그러니까 501호가 보인다. 희미한 태양빛을 등졌기 때문인가. 그 집의 주방과 보일러실 창문은 열려 있으나 컴컴해서 안의 동정은 조금도 엿볼 수 없다. 그 창문들은 마치 묘혈이거나, 사산한 여인의 일그러진 자궁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헤아려 보니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오늘로부터 꼭 열흘 전이었다⋯⋯. 그렇게 원고지에 쓰듯이 방충망의 칸칸에 문장을 채워 넣고 나서 나는 흠칫 진저리를 친다. 그날 순식간에 일어났던 그 엄청난 사건이 너무도 생생하게 고스란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501호의 주방 창문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돌아선다. 그러자 소(沼)처럼 소용돌이치는 어떤 힘이 완강하게 어깨를 잡아챈다. 나는 그 힘을 거스르며 얕게 신음하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어둑신한 방안에는 습기와 담배냄새가 기묘하게 뒤섞인 꿉꿉한 공기가 거대한 막을 형성하고 있다. 나는 그대로 방을 통과해 주방으로 나아간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옥수수차를 꺼내 마시고 식탁에 앉자 창밖으로 905동이 보인다. 베란다에서 40대 여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그녀는 이쪽에서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방심한 표정으로 헐렁하게 입은 웃옷을 끌어당겨 얼굴을 훔친다. 그녀의 배가 잠깐 허옇게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그래, 저쪽에서는 이쪽을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해를 등지고 있으니 암전된 무대처럼 꺼멓게 보이기 뿐이 더하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그날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볼 수 있었을까. 지금 저 빨래를 너는 여자와 같은 위치에서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를 나는 무슨 수로 낱낱이 볼 수 있었단 말인가. 어쩌면 그날의 그 시간과 장소, 그리고 시야의 각도, 광선의 양, 내 의식의 상태 따위가 만들어낸 착각이 아니었을까⋯⋯.



머릿속은 허물어진 폐광의 입구⋯⋯

헹구고 싶다, 헹궈내고 싶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의 이상스러운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오후의 한 때였다. 나는 두꺼운 겨울 커튼을 치고 웃옷을 벚어젖힌 채 벌써 세 시간이 넘도록 컴퓨터 앞에서 끙끙대고 있었다. 얼마 전 두 번째 장편을 출판사에 넘긴 뒤로 나는 무력감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주위에서는 바람도 쐬고 머리도 식힐 겸 여행을 권유했지만 아내가 학원강사로 벌어들이는 수입에 의존하는 형편이니 다 하기 좋은 소리에 불과했다. 그날 아침, 아내가 십만 원을 내밀며 며칠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했을 때도 나는 벌컥 짜증을 냈었다. 출근하는 아내에게 나는 술기운 떨어진 중독자의 폐허 같은 표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했었다. 그 소설의 출판은 요원했으며, 나는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설을 쓰느라 아무런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일 년을 소모하였고, ‘전업’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내걸고 무위도식하는 실업자 노릇에 지쳐 버렸던 것이다.


열흘 전 그날, 정확히 무엇에 대해서 짜증을 느꼈었는지 기억할 수 없다. 벗은 윗몸에 땀이 물고를 트듯이 흘러내렸고, 칙칙한 색조의 겨울 커튼이 나를 압박하는 모든 상황의 상징처럼 숨 막히게 내리 덮치는 환상에 나는 진저리를 쳤다.


모니터에는 마침표를 찍지 않은 두 줄의 문장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는 발작하듯이 튕겨 일어나 커튼을 열어젖혔다. 고압이 관통한 백열전구가 이제라도 막 파열하려고 하얗게 발광하는 듯했다. 빛이 베란다의 창에 한가득, 내 머릿속에 한가득 출렁거렸다. 어째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 짧은 사건의 마지막 순간에 들려온 둔탁한 소리 외에 다른 어떤 소음도 나는 듣지 못했었다.


빛에 눈이 익은 나는 습관대로 슬쩍 708동의 501호로 시선을 옮긴다. 보일러실의 창문은 굳게 닫혀 있고, 주방 창문은 열려 있으되 컴컴한 공동(空洞)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갖고 있는 그 집에 대한 정보는 극히 미미하다.

두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하나 있고, 그리고 철저한 ‘하우스 키퍼’로서의 아이 엄마가 있다. 그네들이 사는 708동 뒤편으로는 논과 밭, 그리고 산이 펼쳐져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모자는 하루에 몇 번씩이나, 내가 베란다에 나설 때는 거의 언제나, 그 시커먼 창문에 낮달 같은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아이들과 행상 트럭의 소음으로 시끌벅적이는 아파트 거리를 내어다 보곤 한다. 어느새 그들의 모습이 눈에 익어 버려서 창을 내어다볼 때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커다란 베란다 유리문에 이마를 대고 멀거니 서서 501호를 건너다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708동의 옥상에 설치된 환풍기들은 움직임을 멈추고 있고 전깃줄의 가느다란 떨림도 없다. 708동 뒤편으로 멀리 가물가물하게 읍내로 이어진 도로가 보이고 차 한 대가 꿈틀거리듯 기어 오고 있다. 반쯤 잘려 보이는 논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마치 땅속에 묻혀 있던 영혼들이 천천히 증발하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현깃증을 느끼면서 스킨다브스를 지지하는 낙엽송 등걸에 손을 짚는다.


여자는 초록색 티셔츠를 입었고, 아이는 연노란색 윗도리를 입고 있다. 그 색깔은 그들의 돌연한 출현 때문이기도 했고 태양을 등졌기 때문이기도 해서 매우 독특하게 느껴진다. 그들 모자의 안색은 언제나처럼 핼쑥했고 창백했다. 나는 벌거벗은 윗몸을 그대로 노출한 채 그들을 건너다본다. 여자는 아이를 안고 몸을 창밖으로 반쯤 내민다. 해서 그녀와 아이의 모습은 다른 어느 때보다 더욱 선명하게 포착된다. 여자가 아이를 안고 있던 한 손을 풀어 아래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리고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무슨 말인가를 하며 웃는다. 하지만 아이는 투정을 부리는 듯하다. 여자는 아이의 고개를 돌려세워 아래쪽을 보게 한다. 아이가 칭얼거린다. 아마 그 여자는 바깥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아이의 관심을 돌리려고 하는 모양이다. 아이는 어지럼증을 느끼거나 높은 곳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나는 그들이 너무 음지에만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저들처럼 창백하지 않을까. 어딘가로 우리들은 나서야 할 사람들이라는 공통의 문제를 찾아낸 것 같다.

여자가 다시, 이번에는 좀 더 강경한 의지의 표현으로 아이를 곧추세워 안고 창밖으로 몸을 기울인다. 나는 본능적으로 위태롭다고 느낀다. 건너편 아파트까지는 얼추 15미터 정도의 거리다. 소리를 지른다면 얼마든지 도달할 거리다. 나는 아이의 엄마에게 어떤 식으로든 경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망설이고 있다. 모든 사건들이 그러하듯이, 그 일도 순식간에,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고 만다. 마치 나뭇잎이 떨구어지듯이, 빗물을 지탱하기가 겨워서 꽃잎이 고개를 떨구듯이, 거짓말처럼 아이가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시야에서 사라진다. 아이는 너풀거리는 듯했지만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아이의 커다랗게 뜬 어리둥절한 눈을 나는 본 듯하다. 여자는 자신의 비어버린 가슴을 공허하게 바라보고 아이를 안았던 자세 그대로 팔을 든 채, 고개를 수그렸다가 든다. 그녀의 입이 놀라움으로 벌어져 있다. 그때 그녀의 시선이 나와 마주친다. 그녀의 표정은 너무도 놀라서 차라리 멍청해 보인다. 아마 그녀 역시 나의 얼굴에서 같은 표정을 읽었으리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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