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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C Jul 09. 2019

여름의 낙수_02

단편소설집

꽝-, 하고 굉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기까지 시간의 경과는 상당히 비현실적이었다. 그것은 대체로 고통스러운 느낌이었으며, 더웠고, 어지럼증과 같았다. 길거나 짧았다는 식의 시간 개념이 아닌 어떤 느낌으로서의 시간이었다. 나는 베란다의 문을 열고 아래쪽을 바라봐야 할지 그대로 물러서서 방으로 들어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건너편의 여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자의 얼굴이 아주 천천히 창의 어둠 속으로, 마치 녹아들 듯이 사라졌다. 나는 그녀의 얼굴이 완전히 녹아들어 흔적조차 없어질 때까지 오랫동안 그 창의 어둠을 응시하였다.


아이들과 여자들의 비명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한참 뒤였다.


아이는 마침 주차해 있던 미니 봉고 위에 추락해서 즉사했다. 나는 그 사실을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다. 방문자가 찾아와 내 의식을 환기시켜줄 때까지 거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컴퓨터의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니터는 화면 보호 모드로 들어가서 별들이 다가와 사라지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계속되고 있었다.


초인종 소리와 함께 나는 반사적으로 무엇인가 대단히 중요한 것을 은폐하려는 사람처럼 컴퓨터의 전원을 차단하고 책상 위에 흐트러져 있던 소설의 원고며 메모 따위들을 서랍에 쓸어 넣었다. 나의 호흡이나 안색은 아마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었다. 나는 줄곧 어떤 찰나의 영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내가 모니터를 통해 보고 있던 어떤 장면, 과거의 기억 저편에 묻어 두었던 어떤 사건이 모든 장애를 뚫고 내 의식의 중추를 건드렸던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 아이의 추락이 빚어낸 연상작용이었다.


“조사할 것이 있어서 탐문 중입니다. 협조 바랍니다.”


정복 경찰관이 현관에 서서 경례를 붙이며 말했다. 그는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가 수첩을 펼쳐 드는 것을 바라보며 엉거주춤 서 있었다.


“한 시간 반 전에 요 앞 동에서 어린아이가 떨어져서 죽었습니다. 그 집 창이 선생 집 베란다하고 아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더군요. 그래서 혹시 아이가 떨어지는 걸 보셨나 하구요. 우리들은 사건 정황을 정확히 조사해야 하거든요.”


“나갈까요?”


나는 지극히 건조한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현관을 나섰다.


계단 창으로 내다보이는 바깥은 강렬한 태양빛으로 눈이 부셨다. 상대적으로 어둑신한 계단을 내려가면서 경찰관은 질문했고 나는 대답했다.


-사건을 목격하셨나요?


-⋯⋯네.


-시간은?


-오후 두 시가 넘어서였죠. 시간은 알고 있잖소?


-확인하는 거죠. 처음부터 끝까지 보셨나요?


-처음부터 끝까지라⋯⋯.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요. 아무튼 보았소.


-여자가, 그러니까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밀었습니까?


우리들은 1층의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이웃의 여자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다가 우리들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녀들의 시선을 따갑게 느꼈다.


경찰관은 대답을 듣기 위해 아파트 건물을 끼고돌다가 걸음을 멈추고 볼펜으로 수첩을 톡톡 두드렸다. 나는 등 뒤로 여자들의 시선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한 시간 반 전의 그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고스란히 영사되고 있었다.


-그럴 리가 있소? 난 아이의 엄마는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어떻게 된 겁니까?


-아이가 밖을 내려다보면서 놀고 있습디다.


-위험하다고 느끼진 않았습니까?


-처음엔 전혀. 이따금 그 아이는 그렇게 놀곤 했으니까⋯⋯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그렇게 된 겁니다. 조금 지나치게 몸을 내민다 싶더니 그만⋯⋯그렇게 된 거죠.


경찰관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수첩을 덮었다.


여자들의 수런거림이 한층 고조되었다. 떼밀었다고 하드만⋯⋯하는 소리가 수런거림 사이에서 돌출되어 들려왔다. 그럼, 제 새끼 눈 멀쩡히 뜨고 그렇게 됐는데 정신이 온전하겠어? 눈을 봤는데 완전히 헤까닥했더구만 뭐⋯⋯.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뜨거운 태양, 그러나 그보다도 아스팔트 광장이 뿜어 올리는 열기가, 사람들의 어떤 폭력적인 기대가 발산하는 끈적끈적함이 견디기 힘들었었지. 사람들은 마치 희생양을 마련하고 종교의식을 치르는 집단 밀교신자들 같은 표정이었어. 사람들은 살기를 잔뜩 머금은 표정으로 건물 꼭대기를 올려다보고 있었지. 오랜 기다림 끝에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났어. 나는 토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를 떠나지는 않고 있었어. 우리 모두는 집단으로 어딘가로 떠나고 있다, 고 나는 똑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지.

내가 비틀거리자 경찰관이 얼른 부축했다.


“숨을 깊이 들이쉬어봐요. 충격이 컸던 모양이군요.”


나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의 부축을 사양했다. 그리고 우리들 - 경찰관과 나,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경계심과 호기심, 적절한 방관의 쾌감으로 뒤범벅이 된 여자들의 집단 -은 708동 앞에 이르렀다.


마침, 견인차가 와서 지붕이 폭삭 내려앉은 봉고차를 끌어가고 있었다. 구겨진 차의 지붕에는 거무죽죽한 피의 흔적이 역력하였다.


“내 차는 어떻게 되는 거요?”


“나참, 이 양반아, 지금 그게 문제야. 나중에 경찰서로 오면 될 거 아냐!”


뚱뚱한 체격의 남자와 경찰관이 딱딱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20여 명 둘러서 있었고, 아이들은 스케이트보드와 자전거를 타고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것은 일종의 충격 -집으로부터 강렬한 태양빛이 내리 꽂히고 있는 외계로 나온 충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오후의 이 소요(騷擾)는 마치 양파껍질을 까는 기계가 거꾸로 작동해서 사건의 껍질들이 차례대로 덧씌워지는 것처럼 차츰차츰 그 정체가 모호하고 애매해져 가는 듯했다. 나는 그런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멍청히 서 있었다. 지방 주재 사건기자라는 사내가 수첩을 뒤적이면서 내게 뭐라고 계속 물어왔으나 나는 한참 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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