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708동의 어둑신한 현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봉고차가 서 있던 자리에는 칠이 벗겨지고 바랜 세발자전거 한 대가 버려진 듯이 세워져 있었다. 나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생각은 절대로 정리될 것 같지 않다. 펑-, 하고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언뜻 스틸 사진 한 장이 스치고 지나간다. 사진의 끝이 꼬리를 흐리면서 영상이 한 데로 뭉뚱그려진다. 나는 사라지려는 그 영상의 끄트머리를 강하게 끌어당긴다. 광장이었고, 대형 앰프와 거대한 걸개그림이 바람 때문에 팽팽하게 배를 드러내고 있다. 유인물이 흩어지고 있으며, 시선이 80도쯤으로 치켜 올라간 젊은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하고 있다.
나는 계단의 난간에 몸을 의지하며, 열흘 전 그 아이의 추락이 내 기억의 어느 부분을 헤집어 놓았다는 것을 희미하게 깨닫는다. 그러나 그 기억은 논리성을 결여하고 있고 시간의 개념도 뒤죽박죽이 된 악몽처럼 얼른 하나의 상황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괴물적인 상황이었다, 고 나는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기억의 혼란이 내가 그 집을 찾아가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아마 나는 심심한 조의를 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슨 자격으로 조의를 표하는 것인가? 이웃으로서, 혹은 목격자로서? 내게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목적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나는 501호의 문 앞에 다다라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올라오는 일은 그래도 내려가는 것보다 나은 데가 있다. 적어도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은 줄어드니까 말이다. 그 집 현관문에는 아크릴 십자가가 붙어 있다. 장로교회를 다니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내 집의 문에도 양은으로 된 십자가가 붙어 있다. 그것은 전 집주인이 붙여둔 것인데, 내 게으른 천성 탓도 있고 웬만한 연장으로는 쉽사리 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십자가가 붙어 있다는 것과 교회에 다니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이 적어도 무신론자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501호 앞에 이르도록 어째서 조금도 정리되는 생각이 없는 것인가? 나는 초인종을 노려보면서 자신에 대해서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그리고는 계시를 실천하려는 사도와 같은 심정으로, 그렇게 함으로써 이 오후의 낯선 방문과 백일몽이 어떤 완결을 맺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초인종을 누른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려는 사람처럼 서너 차례 초인종을 눌러대다가 돌아선다.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서기 위해 발걸음을 뗀다. 몸이 앞으로 쏠리는가 싶더니, 정확히 내 영혼의 내장 같은 것들이 온통 계단의 경사면을 향해 쏟아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것은 마치 내 안의 무엇인가가 계단을 내려가려는 나의 의지를 제어하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구역질을 느끼며 난간에 의지한다.
어째서 전혀 실체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 내 안의 은밀한 존재는 시시때때로 나를 제어하려 드는 것인가? 마치 자신을 상대로 실험을 하는 것만 같다. 지금의 이 구토감과 오후 내내 계속되는 현기증, 그리고 언뜻언뜻 스틸 사진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영상들, 이것들은 내 안의 존재가 나에게 보내오는 일종의 신호인데, 나는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지금, 나는 단순히 계단을 내려가기가 싫어진다. 집에서 밖으로 나올 때의 기분 나쁜 육체적 느낌 때문에 나는 계단을 내려가기가 싫어진 것이다. 그렇다고 작동하지 않는 초인종을 눌러대며 마냥 서 있을 수도 없다. 도대체 어째서 나는 이 집 앞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게 누구요?”
등 뒤로부터 아득하게 인기척을 묻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문이 삐금히 열린다. 나는 돌아서서 안전고리가 이마를 가로질러 이상한 인상으로 보이는 노파의 얼굴을 마주 본다. 아주 짧은 순간, 노파와 나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가 있다면 그것은 문이나 벽이 아니라 저 안전고리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든다.
“전,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사람입니다만⋯⋯.”
“우리 딸아가 낯선 사람은 들이지 말라고 했구먼.”
아마 노파는 그 여자의 친정어머니인 모양이다. 근심과 두려움이 적절하게 배합된 듯한 빛으로 반질거리는 노파의 눈이 안전고리 밑에서 나를 치켜보고 있다. 언뜻 문의 반대편에서 지금 밖을 내다보고 있는 구부정한 자세의 노파의 뒷모습이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지금, 계십니까?”
나는 티셔츠에 반바지, 그리고 슬리퍼 차림인 모습을, 해서 친절하고 거리낄 것 없는 이웃이라는 분위기를 한껏 전달하기 위해, 몸을 과장되게 벌려 보인다. 그 몸짓은 적당한 효과를 본다. 문이 안으로 끌어당겨졌다가 안전고리 벗겨내는 소리가 났고, 이윽고 열린다.
“뉘신대 그러시우?”
등이 굽은 노파이다. 회색으로 센 머리를 곱게 가르마 타서 쪽을 짓고 있다. 노파가 서 있는 현관에는 슬리퍼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방금 청소를 했는지 물기가 반질거린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저 안부가 궁금하고 위로도 할 겸 찾아왔노라고 말한다. 사실, 자신이 무슨 위로가 될지 알 수 없다는 말도 덧붙인다.
“에미는 지금 없어요. 사위가 바람이라도 쐬어야겠다고 데리고 여행을 갔다우. 잠깐 들어오시겠수?”
노파는 굽은 몸과 왜소한 몸피와는 어울리지 않게 정정한 목소리다. 그리고 사람 좋은 표정으로 나를 맞아들인다.
나는 이 느닷없는 만남 -아이의 어머니, 그녀의 친정어머니와 만나게 되리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에 적응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노파가 내온 미숫가루를 천천히 마시면서 노파의 한숨을 듣는다. 집안 분위기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말끔히 청소되고 정돈되어 있다.
“우리 박서방하고 안면이 있으신가?”
노파는 한참 만에야 그렇게 묻는다. 그러면서 벌써 몇 번째인가 쪽 지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긴다.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실은⋯⋯.”
상대가 아이의 엄마라면 이렇게 더듬거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노파는 세월의 풍상이 옹골차게 들어 있는 그윽하고 깊은 눈길로 참을성 있게 나를 건너다보고 있다. 외손자를 열흘 전에 앞세운 할머니 같지 않은 모습이다.
“실은 따님과도 안면이 있지 않습니다. 제가 찾아온 것은⋯⋯뭐라고 말씀드리기가 힘이 드네요.” 라고 말하면서 나는 가루가 가라앉기 시작한 미숫가루 그릇을 집어 든다.
“저 집에 사시우?”
노파는 문득 주방 창을 가리키며 묻는다. 노파가 가리키는 주방 창으로 내 집의 베란다가 분명하게 보인다. 걸려 있는 빨래 몇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빨래들은 탈색된 연체동물처럼 늘어진 채 강렬한 태양빛에 노출되어 있다. 갑자기 가슴이 철렁한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딸아가 댁 얘기를 합디다만⋯⋯.”
노파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깊은 한숨을 쉰다. 나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갑자기 종잡을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내가 이 집에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이 낯선 노파의 방문을 받은 것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그 여자가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니, 짐작도 할 수 없고 믿을 수도 없다. 그녀는 나와 일면식도 없는 막연한 이웃에 지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서 그녀와 나는 이웃의 범주에도 들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녀가 나에 대해서 말할 그 무엇이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 끔찍한 사고 뒤에 말이다. 어쩐지 기분이 께름하다.
“손주 새끼 말이우⋯⋯.”
노파가 다시 말끝을 흐린다.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대체 노파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조마조마하다. 지나치게 안정되어 있는 노파의 표정이 그런 내 불안심리를 극대화시킨다.
“⋯⋯그걸 보셨수?”
“따님이 그러던가요?”
나는 침착해지려고 애쓰면서 되묻는다.
노파의 말에 따르면 아이 어머니는 충격 때문에 사고 직후 병원에 입원했었고,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경찰의 조사는 요식적이었으나 우연한 사고라는 결론 외에도 미필적 고의나 의도적인 추락사에 대한 질문도 몇 차례 있었다. 그런 질문이 있었던 것은 그녀 스스로가 자초한 셈인데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 줄곧 그녀는 ‘앞집 남자가 모든 걸 다 봤다, 내가 떼미는 걸 봐버렸다’라고 넋 빠진 듯이 중얼댔다는 거였다. 의사는 정신적인 충격이 커서 없는 사실을 꾸며대는 거라고 설명을 했고, 경찰도 이미 내 진술을 들은 터여서 더 이상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휴가를 내서 아내와 함께 조용한 곳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랬군요.”라고 노파가 말을 마친 한참 뒤에야 나는 천천히 말한다. 더 이상 뭐라고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갑자기 머릿속이 휑뎅그렁하게 비어 버린 느낌이 든다. 나는 어렵사리 자리에서 일어선다. 더 이상의 대화가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고 대화할 내용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었던 것은 노파가 내게서 어떤 구체적인 말을 기다리는 듯한 눈치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다. 내가 그 사고, 사건을 목격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그녀가 주장하듯이 그런 엽기적인 장면을 목격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간단한 사실을 노파에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혼란스럽고 당황하고 있다. 이상한 기분이다.
“전 단지 위로의 말씀을 전하려고 찾아왔던 겁니다. 여행에서 돌아오시면 좋아지겠지요. 아무래도 쉽게 잊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까? 할머님께서도 상심이 크시겠지만⋯⋯.”
나는 쭈뼛쭈뼛 현관으로 걸어 나가면서 ‘딸아 말처럼 그걸 당신이 본 거유?’라고 묻는 얼굴로 배웅을 하는 노파에게 주절거린다. 노파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 저편으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