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1] 난임? 어색한 이름

나의 난임 기록

by Doing

'난임'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 선배 언니들이 임신이 안돼서 시험관 시술을 종종 하곤 했다.

그들은 나에게도 얼른 산전검사, 임신 준비 등을 권유했고 그때마다 나는 '저도 얼른 준비해야겠네요.'라는 의례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현대사회에서 많은 부부들이 겪는다는 '난임'에 대해 나는 막연히 내 일은 아니겠거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했다. 아니 사실이다.


남편과는 2020년도 코로나가 한창 창궐을 하던 시기 5월에 결혼을 했다.

남들이 코로나라고 결혼식을 미뤄야 하는 게 아니냐, 매일매일 확진자 수가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 흘러나올 때에도 나와 남편은 의연했다. 물론 걱정을 안 했던 것은 아니나 우리의 선택지에 '미룬다'는 없었고, 둘 다 그런 논의를 하지 않았다. 해도 괜찮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다행히 우리의 확신은 맞아떨어졌고, 우리가 식을 올린 5월은 그나마 하객 수 제한도 없고, 하객 사진 찍을 때에도 마스크를 벗고 찍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의 결혼사진은 '마스크 없는' 결혼식 사진이 되었고, 같은 시기에 결혼을 하기로 했던 동료 중 7,8월에 미뤘던 몇몇 커플들은 인원제한과 마스크 끼고 참석하게 되는 결혼식을 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가 결혼식을 미루지 않았던 게 얼마나 다행인가?

종종 그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우리의 첫출발부터 순탄한 결혼생활을 예고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맞아떨어지듯 나는 '결혼'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 하나라고 말할 만큼 남편과 행복하고 안정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늘 이름 모를 불안함이 항상 자리 잡고 있던 내 인생에서, 남편과의 결혼은 왠지 모를 안정감과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직장에서도 바쁘고 책임감이 무거운 업무를 맡기도 했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합이 잘 맞았고 업무에 있어서 보람과 희열감을 느끼며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다. 그 시기 남편도 대학원 졸업과 해외 포닥 준비로 매일 늦은 귀가를 했지만, 나도 일이 바빴고 일찍 퇴근하는 날엔 '골프'라는 새로운 취미를 가지면서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나만의 살림살이를 꾸민다는 재미도 있어서 우리의 새 보금자리인 신혼집이 매우 마음에 들어 혼자 있는 시간도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이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났고, 2022년 가을.

남편은 드디어 원하던 해외 포닥에 가게 되었다. 나도 남은 짐을 정리하고 남편을 뒤따라 미국으로 향하기로 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첫 직장에서 쉼 없이 달려오던 나에게도 드디어 합법적인 휴직 기회가 생긴 것이다. 계획은 남편이 떠나는 9월보다 두 달 정도 뒤에 나도 회사일을 정리하고 떠나려고 했는데, 갑자기 난데없는 승진 기회가 생겨버렸다. 승진시험 대상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부랴부랴 시험공부를 하고 결국 나는 연말을 넘겨 2023년 1월에 휴직을 하게 되었다. 남편이 떠나고 신혼집을 다 정리한 후 친정으로 들어가 퇴근하고 독서실로 직행. 주말마다 늘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덕분에 나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승진까지 하고 휴직하게 되었다.


그땐 얼른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못 가게 된 것이 원망스러웠지만, 승진하고 난 뒤 그리고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그때 일은 참 잘했다.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 내 인생은 순탄하구나!


2023년 행복한 미국 라이프를 즐겼다. 그야말로 백수가 된 나는 행복했고,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에 조금씩 도전하고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문화 새로운 언어에 도전하며 알차면서도 그 누구에게도 압박받지 않는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았다. 그 시기 남편과 2세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첫 1년 차 때는 남편도 적응해야 하니 그다음 해부터 우리는 준비를 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아이를 가지려고 준비하기 위해서는 가장 처음 '보험'이 있어야 한다. 다행히 이 부분이 해결되었고(남편 지도 교수의 배려로 보험료가 포함된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2024년 초부터 준비를 해 나아갔다. 우리가 머물고 있던 시카고의 교외인 '에반스턴'이라는 도시는 비교적 안전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종종 아침에 미시간 레이크와 형형색색으로 꾸며진 미국의 다양한 집들을 구경하며 러닝을 했고, 필드로 골프를 하러 나가곤 했다. 딱 그 운동을 많이 하던 시기에 나는 첫 임신을 하게 되었다. 2024년 6월이었다.


그리고 순서가 뭐가 먼저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그 시기에 공교롭게 한국에 지원서를 냈던 남편은 서류에 합격해 면접을 보러 한국으로 가야 했다. 합격하면 바로 2학기(9월)부터 한국에 귀국하게 되는 것이었다.


난 그럼 복직해서 바로 임산부 단축근로로 일하다가 한국에서 출산하고 육아 휴직을 하면 되는 그런 탄탄대로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 시기가 얼마나 딱 들어맞는 임신인가!


미국에서는 임신이 확인되고도 한 달 뒤에나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한 달 뒤 예약을 미리 해놓았고, 남편이 면접 보러 한국을 가게 된 김에 나도 같이 한국으로 가기로 했다. 양가 부모님께도 말씀드리고 한국의 산부인과 가서 얼른 초음파도 보고 진료도 보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