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난임? 어색한 이름

나의 난임 기록

by Doing

'난임휴직'

다행히 우리 회사에는 이 제도가 있으며 처음 1년 간은 기본급의 70%를 받을 수 있다. 난임 휴직 절차는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 선택지를 고를까 말까. 내 안에서 수없이 고민했던 것 같다.

새로운 지역,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업무 그리고 생각만큼 쉽지 않던 임신.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1차 인공수정이 종료되었다. 다행히 주사가 아닌 먹는 약 만으로 생리가 시작되었다. 다만 한 달 정도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로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다. 인공수정 시작 전에는 1차가 안되면 2차 해보고 시험관으로 해야 되나?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 번에 실패가 아닌 이렇게 피 말리는 임신도 아닌 시기를 보내며 아까운 나의 몇 달을 허비하다 보니 한 번에 시험관으로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시험관 1차를 시작했다. 시험관의 첫 관문은 동결배아 만들기. 이를 위해서는 인공수정보다 더 많은 과배란과 수면마취를 통한 난자채취라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 시기에도 휴직을 계속 고민했고, 회사에 복직 후 1년간 임신이 안될 경우 특단의 조치를 취하자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나는 그 시기가 점점 다가올수록 시기에 대한 고민을 했다.


난자 채취 후 시험관 1차가 실패하면? 그때 해야 하나?

아니면.. 1차 실패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지금 하면 스트레스도 덜 받아서 한 번에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일정한 시간에 내 배에 스스로 주사를 맞고, 배꼽 양쪽에는 시퍼런 멍이 점점 늘어만 갔다. 호르몬 영향으로 배는 빵빵해져 갔고, 많이 먹지도 않는데 살은 점점 쪄갔다. 살이 찌니 외적으로도 자신감도 줄어들고, 우울감이 커져갔다. 회사에서도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낯선 환경에서 일을 하니 속 터놓고 말할 사람, 술 한잔 하자고 할 사람 없는 것이 너무 우울해져만 갔다. 그리고 이 지역의 특성이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갈 때쯤. 결국 나는 폭발해, 남편과의 상의 없이(그전에 계속 휴직하겠다고는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휴직하겠다고 팀에 선언했다.


남편에게 소식을 전하니 적잖이 당황해하는 것을 느꼈다. 그 반응에 더 서러워졌고 불안해졌다. 바로 남편은 지지해 준다고 했으나, 그 당황함이 나에게 불안을 더 가져다주었다. 괜히 말했나? 좀 더 버틸 거 그랬나? 유난인가? 남들 다 잘 낳는 애 낳겠다고 동네방네 소문까지 나며 월급도 줄여가며 휴직하는 게 맞나?


그 혼란한 와중에 난자채취를 했고, 수면마취에서 깬 나는 서러워서 펑펑 울었다.

휴직을 선언하고 다음날이었다.


다행히 26개라는 예상치도 못하게 많은 수의 난자가 채취되었고, 그중 9개를 동결했다.

나는 바로 신선배아 이식을 할 줄 알았는데, 난자가 많이 채취되었기 때문에 2번 생리 후 동결배아 이식을 하자고 했다.


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그럼 무려 두 달을 또 기다려야 하잖아.


너무 슬펐다.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작가의 이전글1. 난임? 어색한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