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난임 기록
10.29.(수) 오전 9:58
일기 형식으로 나의 다짐을 기록하고 싶어서 날짜와 시간을 명기했다.
입원과 누워있는 생활을 겨우 5일 했을 뿐인데 너무나 답답하고 인간답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5일 내내 피는 멎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혈에 좋다는 연근가루도 주문해서 먹고, 집안일은 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모두 남편이 도맡아서 해주었다. 움직이지 않으니 배도 고프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는 게 고통스러웠다. 또 붉은 선혈의 피를 봐야 하는 게.. 이번엔 얼마나 나왔지?
자칫 덩어리가 나올까, 아기집이 쓸려 나올까,
희망을 가지지 않으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자그마한 희망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화요일) 아침 눈을 뜨는데 꿀렁하는 느낌이 들었다.
많은 양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피가 점차 멎었다.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혼자 자가 주사를 놓고는
9시에 문을 여는 가장 가까운 집 근처 산부인과를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밖에 나와 마시는 바깥공기는 제법 차가웠다.
여름을 지나, 가을을 금세 건너뛰고 겨울에 들어서는 차디찬 공기.
문 열기 전 도착해서 접수부터 하고, 내 앞에 한 명 대기만 있었고
초진이라 진료 전 간단하게 상담을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누워서 초음파를 봤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말씀을 바로 잇지 못하셨다. 나도 초음파를 같이 봤는데 아기집이 안보였다.
'지난주 목요일에 아기집 확인하셨다고 하셨죠?'
'네.. 토요일까지도 봤는데... 없는 거죠?'
그래도 선생님은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목요일까지 지켜보자고 했으니
그때 가서 다시 한번 진료를 받아보라고 권하셨다.
처음 본 나에게 굉장히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말하시는데,
내가 오히려 덤덤하게 소파술이나 약물 배출에 대해 물어봤다.
진료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다니던 난임병원에 전화를 해 바로 예약을 잡았다.
하필 오늘은 오전 진료가 없고 오후 진료만 있다길래 가장 빠른 시간으로.
남편에게 아기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렸다. 적잖이 놀란 것 같았다.
내가 계속 아닌 거 같다고 할 때에도 끝까지 지켜보자라고 희망을 놓지 않았던 남편이었다.
나중에 다시 물어보니, 이번에는 왠지 될 것 같았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물론 힘들었지만 남편도 참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난임병원 예약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2~3시간 남짓.
나는 집에 돌아와 집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누워만 있어서 건들지 못했는데..
내 마음도 정리하고 싶어서 그랬나 보다.
오후 진료에 남편도 동행했다. 괜찮다고 했는데 그래도 같이 가겠다며 함께 온 남편..
진료실에 들어가 다시 초음파를 봤고, 평소 그렇게 무뚝뚝하던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레 아주 작은 모양을 보고 일단 안 보이지만, 작은 모양이 하나 있다며 이게 아기집인지
아니면 아기집이 빠져나가고 공기구멍인지, 그러나 아기집이어도 너무 작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라고 하셨다.
이미 한차례 확인을 해서 그런지 충격은 덜했고,
일단 피검사를 통해 수치를 확인해 보자고 하셨다.
초음파를 보는 굴욕의자에서 내려와, 의사 선생님께 내가 적어간 질문 리스트를 쏟아냈다.
'왜 자꾸 착상은 되는데 임신이 안될까요?.. 이번엔 할 수 있는 검사 다 해보고 싶어요.. 습관성 유산 검사 라던지 염색체 검사라든지 혈전 이런 거 있다던데....'
의사 선생님은 다음 생리 때 피검사를 통해 한번 해보자라고 하셨고,
다음 차수는 두 번째 생리 때부터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일단 내일 피검사 결과를 보고 소파술을 해야 할지, 아니면 지켜볼지는 그때 정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진료실을 나와 피를 다시 한번 뽑았다.
지난 주말 링거로 너덜너덜 해진 나의 왼쪽 팔 대신 오른쪽 팔을 내밀었다.
남은 주사는 환불하고, 지난 입원비와 오늘 진료비를 임신바우처로 결제했다.
졸지에 임신 바우처만 2번 받은 사람이 됐다. 200만 원이나.. 그러나 출산은 못하고..
남편이 옆에서 오늘 술 한잔 할래?라고 해서 바로 좋다고 했다.
당장 커피 마시고 싶다고..
그래 우리 몸에 안 좋은 거 다 먹자!라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