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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Mar 17. 2023

#64. 포만감을 주는 소비

101번 글쓰기

토스 머니스토리 응모글


 돈을 버는 루트는 오직 월급 밖에 없지만 돈을 쓰는 루트는 무한정인 직장인의 이야기다. 
 버는 방법은 하나 이니, 무한히 많은 ‘돈 쓰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 포만감을 주는 소비
 토스에서 보여지는 내 잔고의 숫자가 준다. 돈이 쓰이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머리와 마음, 배 속의 포만감이 올라온다. 명시적 소비금액 보다 값어치가 넘치는 것이다.
 
 코스트코에 가서 몇 가지만 짚은 것 같은데, 30만원이 금방 채워진다. 집에 도착해 냉장고를 채우고 나면, 과연 30만원이 냉장고에 꽉꽉 채워졌는가 생각해 보면 의아 해진다. 그러나 영수증을 살펴보면 허투루 쓴 품목은 없다. 다 필요해서 산 것들인데, 뭔가 ‘30만원 어치를 넘게 만족하는가’ 에는 의문이 든다.
 
 나에게는 포만감을 주는 소비들이 있다. 도매시장에서 구매한 신선한 농수산물. 눈 여겨 보았던 테이블웨어들. 와이프를 행복하게 하는 꽃과 식물들. 재입고 된 나이키 운동화. 돈이 나가는 순간에, 몸과 마음에 포만감이 꽉 채워진다. 아니 넘친다.
 
 2. 포만감을 주는 소비 – 도매시장 디깅
 물건이 모이는 곳이 가장 싸고, 품질이 좋다는 게 내 지론이다. 그래서 도매시장을 찾아다닌다. 와이프와 나는 꽃과 식물을 좋아하는데, 리프레쉬가 필요할 때 양재 꽃시장을 간다. 싱싱한 식물이 유지될 수 밖에 없는 습도, 온도, 볕이 있다. 가동, 나동, 꽃도매동, 화분동을 둘러보는 동안 내 몸도 광합성이 되는 기분이다. 그러다가 예쁜 꽃, 예쁜 화분을 보면 산다. 보통 2~3만원 정도 하고, 간혹 10만원이 넘는 식물도 있지만 산다. 그러면 10만원 어치보다 더 포만감을 주는 감정이 든다.
 
 삼척에 ‘번개시장’이라는 곳이 있다. 전날 잡은 신선한 수산물들 중 일부가 여기로 온다. 여기의 장점은 단새우, 독도새우, 황우럭 등 다소 희귀한 수산물을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 한 접시를 단상에 놓고 파는데, 거의 대부분이 만원이다. 독도새우처럼 비싼 해산물은 3만원 정도이다. 운이 좋으면 손바닥 만한 도화새우, 닭새우가 얹혀진 접시를 고를 수도 있는데 서울의 한 전문점 기준으로 보통 10만원이 넘는 가격이니, 독도새우 한 접시 3만원은 거의 거저라고 봐도 무방하다. 3만원을 썼지만 인지상으론 몇 십 만원 어치를 쓴 기분이 든다. 이럴 때 소비의 포만감이 극에 달해 세로토닌이 대량으로 분비되는 것 같다.
 
 올해 초에 딸기가 참 비쌌었다. 1팩에 2만원이 넘었으니, 이전 시세 대비 100% 더 비싼 것 같았다. 이럴 때는 가락동 농산물 도매시장을 간다. 경매를 마친 직후에 주변 상인들이 box 단위로 소매를 하는데, 도매가격에 조금의 마진을 붙여 팔기 때문에 소매점에서 사는 것 보다 50% 이상 싸게 살 수 있다. 조카가 알이 큰 딸기를 좋아해서 살려고 했는데, 마트나 일반 소매점에서 2.5만원을 받길래 새벽에 일찍 일어나 농산물 도매시장을 찾아 1box 4만원에 구매했다. 4팩이 1box라서 가능하면 1box 단위로 구매해야 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가격만 놓고 보면 합리적인 결정이다. 이럴 경우에도 돈을 쓰면서 포만감을 얻게 된다.
 
 포만감을 주는 소비를 위해서 도매시장의 품목들을 디깅한다. 도매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해당 시장에서 파는 품목에 초고관여자들이다. 그래서 대중적인 품목이 아니라 소위 ‘아는 사람만 아는’ 것들을 디깅한다. 그러면 남들은 돈 주고도 못 사는 것들, 제값을 줘야 하는 것들을 더 저렴하게 사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그러면 돈을 쓰면서도, 포만감을 잔뜩 느낄 수가 있다.
 
 3.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
 나의 경우, 월급 외에는 수입이 없다. 코로나 시기 투자광풍 속 미국주식, 가상화폐를 다 손 대봤지만 잃는 경험이 허다했다. 그래서 지금은 예적금 위주로 현금자산을 배분했다. 다행히 고금리 상황이라 5% 이상 되는 예적금 상품에 가입해서 다른 투자보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본다. 특히 새마을금고, 신협 같이 신용협동조합의 로컬지점들을 잘 검색하면 최대 7% 금리도 있다.
 
 월급 외에 수입이 없다 보니, 한 푼을 쓰더라도 한 푼 이상의 가치가 있는 소비를 디깅하게 된다. 그 일환으로 도매시장 디깅을 통해 남들이 쉽게 사지 못하는 것들을 저렴하게 사는 방법을 찾게 됐다. 단돈 만원을 쓰더라도, 남들이 5만원, 10만원을 줘야 하는 것들을 찾아 소비하게 되었다. 이로써 나름의 ‘포만감을 주는 소비’ 노하우를 쌓게 된 것 같다.
 
 세상에서 돈 쓰는 일이 제일 재밌는 것 같다. 여담이지만, 주변에 돈이 엄청 많은 분들도 있지만 쓰는 법을 모르신다. 써 본적이 없기 때문에 생활반경을 넘어서는 소비를 하지 않으시는 것 같다. 비록 나는 월급 외에 수입은 없지만, 다양하게 돈 쓰는 재미를 알게 되어서, 어쩌면 그 분들보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을 더 많이 갖춘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아무튼 나는 돈으로 몸과 마음에 포만감을 주는 소비를 하고 있다. 이것이 내 머니 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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