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번 글쓰기
결혼을 했어도
혼자 먹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솔직하게, 혼자만의 먹는 시간을 갖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혼자만의 먹는 시간을 갖는다. (진짜 혼자는 아니고, 혼자 있는 기분.. 이 더 정확한 표현)
그럴 때는 거의 강원도 본가를 다녀온다.
이번 겨울에는 도치가 마리당 2만원이 넘었다고 한다. 어획량이 줄면서 시세가 널뛰기를 한 탓인데, 겨울 동해안의 별미 중 하나가 도치이다. 거대한 올챙이 처럼 생긴 이 생선은 비닐이 없다. 쭈굴쭈굴하고 거무죽죽한 겉모습에 구미가 당기지는 않지만, 막상 요리를 해놓고 보면 씹기 편하고, 후루룩 삼키기 편한 별미가 된다. 강원도 해안가의 대부분의 집들 메뉴판에 '도치알탕' 또는 '도치탕'으로 올라있다. 서울에서는 아직까지 파는 집을 못 봤다. 그래서 강원도가 아니면 먹을 길이 없는 음식이다.
강원도에서 첫 아침으로 주문진의 한 식당에서 이 도치탕을 먹었다. 신김치와 매운 고춧가루를 넣고 끓인 도치탕은 도치의 형체가 없다. 한 입 크기로 토막이 난 체로 탕에 들어간다. 그래서 도치의 알들과 어우러진 찌개 같은 탕이 된다. 얼큰한 김치국에 도치가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연상이 수월할 것 같다. 그런 도치탕을 아침에 먹으면 온 몸이 뜨끈해지고, 강원도에 왔음을 느끼게 해준다. 생선이라고 해서 비릿함은 전혀 없다. 더구나 신김치가 다른 냄새를 다 잡아주고, 흐물한 도치의 식감을 상쇄시켜준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 강원도에 이만한 별미가 없구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엄마가 얼마 전 지인분들과 드셨다고 한 코다리찜을 계속 이야기 하셨다. 한 번 이야기 하면 '엄마가 맛있게 드셨구나' 할 텐데, 두번, 세번, 네번 이야기를 하셨다. 그말인 즉슨 먹으러 가자는 거다. 마침 점심에 딱히 먹을게 없었는데, 바로 먹으러 가자고 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이 음식을 먹으려면 강원도 고성에서도 북쪽으로 한참을 가야하는 간성에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 동해안에 시군이 고성, 속초, 양양, 강릉, 동해, 삼척 이렇게 밖에 없긴 하지만 도시간 거리가 상당하다. 양양에서 고성 어디를 가는지에 따라 30분이 될 수도, 1시간이 넘어갈 수도 있다. 간성은 설악산 만큼이나 금강산이 가까운 동네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코다리찜 먹자고 1시간 이상을 가자니 뭔가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혼자 여행을 온 것이니 엄마의 구미를 마구마구 당기는 코다리찜을 먹으러 갔다.
대성공! 이렇게 맛있는 코다리찜이 대한민국에 있었는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쉬는 날이었는데. 다행히도 주인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 주셨다. 마침 우리가 도착하기 직전에 포장손님이 있어서 불을 켜놨는데, 우리가 양양에서 왔다고 하니 문을 열어주셨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 남바원 코다리찜을 먹을 수 있었다.
먹으면서 나도 모르게 "너무 맛있다"고 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전국으로 배송도 된다고 하셨다. 마침 장모님이 코다리찜 같은 요리를 좋아하시는데, 나중에 처가집 가기 전에 꼭 주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해변 바로 앞이라서 코다리찜에 소주 한 잔 먹으면서 바다를 볼 수 있는 특권이 있는 음식점이었다. 다시 생각하니 군침이 싹 돈다.
이 집의 정식명은 '해오름거진항 생선찜'이고, 강원 고성군 거진읍 반암길 38 이 주소다.
코다리 조림 소 - 40,000원 / 중 - 50,000원 / 대 - 60,000원 이다.
매일 아침 5~10시 동안만 열리는 삼척 번개시장은 말 그대로 번개 처럼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시장이다. 유튜브나 네이버에 '삼척번개시장'을 쳐보면 금방 어떤 곳인지 알 수가 있다.
이곳에 수산물들은 저날 저녁부터 해서 당일 새벽까지 삼척항에 들어오는 것들이라서, 당일에 먹으면 갑각류라도 회로 먹어도 되고 이튼날 먹게 되어도 신선함이 어느정도 유지된다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
내가 사려고 했던 건, 단새우와 절지대게(다리가 몇개 없는 대게, 소위 B급)였는데. 내가 갔던 날에는 단새우 밖에 없었다. 대게나 홍게는 겨울이 다 가는 시점이라서 그런지 물량이 없었다. 이 시장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하다는 것이다. 보통 서울에서 단새우를 살 수 있는 곳은 노량진의 새벽도매시장인데 새벽시간에 노량진을 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일단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기 가장 어려운 시간이 3~5시다. 불행히도 노량진 도매시장은 그 때가 pick time 이다. 그리고 자가용이 없는 나에게 새벽에 노량진을 다녀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기 때문에 사먹어야 하는데, 고급 일식집 같은 곳이나 가야 단새우가 메뉴에 있어서 평소에 대하기 어려운 식재료다. 그런 단새우를 이곳 '삼척번개시장'에서는 한 접시에 1만원이면 풍족하게 살 수가 있다. 한 접시라면 보통 30마리 정도 있는 것 같다. 식당에 가서 먹으면 몇 만원이 넘고, 소매점에서 살려고 해도 이렇게 싱싱한 것을 사기는 어려울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절지대게를 사려고 했는데, 내가 간 날은 절지대게는 커녕 홍게도 없어서 다른 살 것들을 둘러보다가 각종 고급새우를 파는 점포를 발견했다. 여기서 고급새우라고 하면, 흔히 하는 독도새우 3인방이다. 도하새우, 닭새우, 꽃새우. 사실 주문진만 가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이곳이 아니면 절대 이 가격에는 사지를 못한다. 손바닥 만한 도하새우가 포함 된 한 접시를 3만원에 살 수 있는데, 보통의 경우 큰 거 한 마리가 3만원일 때도 있다. 주문진에서는 1마리에 1만원 정도 하는 것을 봤으니, 수도권에서는 더 비쌀 거다. 그런 새우들이 한 접시 가득 있는데, 겨우 3만원 이면 살 수 있다. 물론 살아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전날 저녁에 잡아 온 것들이라고 하니, 죽은지 채 몇 시간이 안 된 것이다.
사실 나는 갑각류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특히 단새우처럼 갑각류의 단맛과 느낌함을 특히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소비경험 자체를 즐긴다. 새벽에 세상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나도 그들의 일원이 된 냥 함께 하는 기분이 좋다. 그리고 쉽게 살 수 없는 것들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경험을 좋아한다. 그래서 도매시장을 좋아한다. 양재 꽃시장, 고터 꽃시장, 노량진 도매시장, 가락 시장, 마장 축산물 도매시장 같은 곳들을 즐겨간다. 사람이 북적북적하고, 가장 신선한 것들을 가장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곳들을 좋아한다.
아무튼 좋아하지도 않는 것들이지만, 새벽 같이 가서 양손 한 가득 바리바리 사들고 가족들과 먹을 생각을 하니 어찌나 행복하던지 다른 무엇도 이 보다 행복할까 싶은 경솔한 생각도 했었다. 다만,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서 갔던 곳이지만 문득 와이프도 같이 왔으면, 같이 먹었으면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주호민이 비혼주의는 결혼으로 완성된다고 했는데, 배우자는 혼자 있어야 존재감이 더 커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혼자 있고, 혼자 먹고 싶은 순간은 또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때 마다 혼자 있을 여건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