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번 글쓰기
돌이켜 보면,
#경품당첨
지난주 금요일 코타 키나발루로 떠나던 길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사내에서 진행 된 경품추첨에서 무려 2등 '스타일러' 당첨을 알려주는 팀원분의 전화였다.
당장 집에 스타일러를 둘 공간도 없고, 스타일러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서 그다지 기쁘지는 않았다.
결국 3등 당첨선물인 여행상품권으로 바꿨다. (소위 줘도 지랄이라는 말이 나에게 적당할 것 같다..)
#대기업이직
직장이 바뀐 것일 뿐 직업이 바뀐 것은 아니다. 연봉이 바뀐 것일 뿐, 재벌이 된 것도 아니다. 광고주가 바뀐 것일 뿐, 특성이 바뀐 것은 아니다. 노력의 결과 이지 행운 같은 것은 아니다. 기쁠 수도 있지만 꼭 기쁠 일은 아니다. 행복하다고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진짜 행복한 기억들은,
#두명의 조카
2살이 된 첫째 조카는 나를 낯설어 하지 않는다. 뽀뽀도 해주고 안아주기까지 한다. 말을 잘 듣고 가끔 작은아빠라고 말을 뱉어주기까지 한다. 그러면 서울에서의 피곤함이 사라진다. 나도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직 돌이 안 된 둘째 조카는 내가 안아주면 품에 폭 안겨 잠에 든다. 잠에서 깨면 나를 뚫어져라 보다가 꺄르르 웃는다. 세상 둘 밖에 없는 사랑스런 조카들이 우리 쿠크(반려견)와도 친하게 잘 지낸다. 이 셋을 보고 있노라면 세상 행복한 기분이 든다. 정말 밀도 높은 행복감이 든다.
#와이프와 저녁데이트
가장 행복한 기억은 와이프와 퇴근시간을 맞춰 맛있는 저녁과 함께 어울리는 술을 페어링 하는 것이다. 적당히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서울 시내를 걷다가 집으로 들어온다. 30대 초반 남자로서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집이 없어도, 비싼 차가 없어도, 수중에 몇억이 없어도 남부럽지 않을만큼 행복하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결혼하길 잘했다는, 앞으로 행복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계속 행복해진다.
#퇴근길 엄마와 통화
거의 매일 엄마와 퇴근길에 통화를 한다. 늦으면 늦는다고, 이르면 이르다고 엄마는 한 소리씩을 한다. 결국엔 '요즘 같을 때 꼭 붙어 있어라. 어디 갈 생각하지 말고!' 이직이 잦은 나를 항상 염려하신다.
거의 매일하는 통화의 주제는 아빠는 어디있는지, 엄마는 오늘 무엇을 했는지, 와이프는 퇴근을 했는지, 오늘 저녁을 무엇을 먹을 것인지. 10분 정도 통화를 하면 내가 전화를 끊는다고 한다. 그러면 엄마는 고생했다고, 얼른 집에가서 좀 쉬라고 한다. 1초도 안 걸리는 말이지만 그 1초 안에 하루의 위로가 가득해진다. 그럴 때 행복하다.
#쿠크와의 산책
퇴근하고 집에 오면, 주말 아침에 일어나면 쿠크에게 "산책갈까?" 묻는다. 그러면 꼬리에 모터가 달릴 듯, 청순만화 작가가 눈을 그려준 듯 반짝인다. 그렇게 1시간 내외로 산책을 다녀오면 간식을 달라고 보챈다. 간식을 주면 쪼르르 달려가 자기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앞발로 간식을 쥐고 물고 뜯는다. 그리고 다시 나한테 와서 쓰다듬어 달라고 한다. 내가 가라고 하기 전까지 스다듬을을 당한 후에야 자기 자리에 가서 노곤한 눈으로 나와 와이프를 게슴츠레 보다가 잠에 든다. 숙면에 빠지면 사람처럼 발라당 누워서 잔다. 그 모습을, 그 과정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매일 하고 있는 것, 그것이 내일도 할 수 있는 것일 때 행복을 느끼는 것 아닐까
순간의 기분좋음은 길지 않은 것 같다.
방금 어떤 책을 보는데, 글쓰기의 과제로 '행복한 순간에 대해 쓰시오'라는 것을 보고 생각했던 것을 올해 마지막으로 기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