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번 글쓰기
세 번째 동남아 여행을 하면 느낀 점.
#ESG
거리 곳곳, 바다 위 둥둥
어딜 가나 플라스틱 쓰레기 천지였다.
정글지역이 인근해서 인지 디젤 픽업트럭이 상당히 많았으며, 도심용 디젤 경차도 상당히 많았다. 베트남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 흔히 보이던 수 많은 오토바이 행렬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코를 찌르는 경유냄새 여기 저기서 풍겼다.
말레이시아는 1인당 GNP는 1만불이 넘는다고 한다. 연간 성장률은 3% 이상.
거리에는 외제차가 흔히 보이고, 특히 도요타(예전 부터 일본은 동남아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가 굉장히 많았다. 현기차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도요타, 미쯔비시, 혼다 등 일본차들이 넘쳐났다.
1만불이 넘으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개념이 생긴다고 들었다. 쇼핑이 늘고, mall(복합쇼핑공간)이 생겨나고 이전에 없던 소비가 생겨서 라이프스타일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고 한다. 그러면 늘어나는 것이 생활 쓰레기다. 이전 보다 많은 플라스틱이 쓰이고, 이전 보다 많은 플라스틱이 버려진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스타벅스 한 군데에서만 종이 빨대를 제공해줬다. 이외에는 전부 플라스틱이었다. 야시장에서 서빙해주는 식기를 제외하고 전부 플라스틱이었다. 호핑투어를 가는 배 위에서 본 수면은 온통 플라스틱 쓰레기였고, 물 속에서 물고기들과 같이 뒹구는 플라스틱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거리의 수 많은 디젤 차량들까지.
지금의 풍족함을 경험하고 있는 이 국가에서 ESG라는 개념은 아직은 명확하지도, 목표에도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얼마전 동남아 국가들은 선진국들의 ESG를 강요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선진국이 누려온 성장의 맛을 이제서야 조금 맛본 국가들에게 ESG는 일종의 성장탄압 같은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지구를 위해 모두가 잘 살아야 한다는, 모두 함께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 얼마나 무섭고 무거운 말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ESG라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1만불 시대
일본에서는 픽업트럭이 거의 멸종했다고 한다. 짧은 이동거리, 좁은 생활공간 등을 고려할 때 픽업트럭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인근에 산악과 정글지역이 많고, 대가족으로 살다 보니 픽업트럭에 대한 소비가 대단한 것 같았다. 한국에서 본적도 없는 디자인의 픽업트럭들이 즐비했고, 사이즈도 다양했다. 소형부터 대형까지 생전 처음보는 픽업트럭들에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리고 코타 키나발루 시내에 벌써 큰 쇼핑몰이 3군데 이상이 되었다. 우리가 아는 글로벌 브랜드가 생각보다 많았고, rent가 쓰여진 곳이 많기는 했지만 대형 주차장을 구비한 초대형 빌딩들이 시내에 빈틈 없이 새워져 있었다. 거기에 한창 공사중인 건물들도 많았는데, 마치 중국자본이 잠식해 들어가던 제주시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실제로 공사장 입구에는 중국어로 쓰여진 것들이 많았는데, 아마 거의 중국자본이 아닌가 싶었다.
그런 와중에 거리 곳곳에는 고급 식당, 한국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디자인의 카페들, 고급 외제차 등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대형 라이프스타일 매장들도 있었는데, 거기에 플랜테리어 섹션이 생각보다 큰 것이 눈에 띄었다. 플랜테리어를 하려면 어느정도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고, 부피와 무게가 큰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운송수단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이런 공급에 대한 소비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들이 구비 된 소비 생태계라는 점이 동남아의 성장잠재성을 엿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놀랐던 것. 안마의자와 코웨이
2000년대 초중반 웰빙 트렌드에 맞춰 한국에서 렌탈가전이 집집 마다 보급이 되었다. 그러면서 생활수준이 한층 높아졌고, 그런 흐름이 2010년대 후반 헬스테크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런 대표 제품이 안마의자인데, 그 안마의자가 쇼핑몰 마다 2~3개 브랜드씩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마사지를 즐길 수 있는 나라에서 고가의 안마의자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안마의자가 가지는 상징성은 주거공간의 확장과 개인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국민총생산 1만불인 이곳에서 안마의자가 가지는 경제규모와 라이프스타일 수준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우월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ESG
수준 높은 소비가 자리잡고 있는 이곳에서 다시 한 번 ESG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건강, 나의 만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록 공동체에 대한 의무감도 높아질 텐데, 아직 이들에게 ESG라는 공동의 목표는 삶의 경계 밖인 것 처럼 보였다. 선진국의 사치인 것 처럼 보였다.
내가 담당하는 광고주들 대부분은 상업적 캠페인과 함께 ESG 캠페인을 병행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진짜로 삶에서 ESG를 실천하고 경험하고 있기도 해서이다.
나도 사무실에서는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고, 가능하면 연료소비도 자제한다. 그럼에도 지구는 날이 갈수록 더 나빠진다.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한 국가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UN도 해결할 수 없고, 미국도 해결할 수 없다. 결국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지구를 걱정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한 마음으로 지구를 걱정하려면 모두가 비슷한 수준으로 살아야 한다. 당장 내일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근미래의 지구환경을 생각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동남아여행
사실 쉬러 간 동남아여행이었지만 다녀온 후에 마음이 더 찜찜해졌다.
이 찜찜함의 시작이 나의 행동들인 것 같아 더 답답하다. 혼자 울고 털어낼 수 있는 감정적인 문제라면 나을 테지만, 나를 비롯한 모두가 동참해야 하는 일을 어떻게 진행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커뮤니케이션 캠페인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직업인으로서 나 외에 타인을 동참시켜 행동을 이끈다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그러나 고민하면 방법이 있었다. 이번에도 고민하면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처러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