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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Jun 08. 2023

#75. 2년만의 신혼여행7

101번 글쓰기

Santiago de compostela v1


#바보같은일

국제운전면허증을 두고 와버리는 바람에 예약했던 렌트카는 취소 되고, 빌바오에서 산티아고까지 갈 길이 막막해졌다. 빌바오에서 산티아고까지는 약 600km 정도 되는데 바로 가는 이동수간이 항공 밖에 없었다. 다만 비용이 100만원 가까이였고, 우리 여정에 맞는 시간도 없었다. 그래서 헐레벌떡 지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막 찾아봤다. 가장 좋은 건 blablarcar(카풀 서비스)였는데, 스페인 현지 번호가 없으면 계정 인증이 안 되어서 결제를 할 수 없었다. omio로도 찾아보니 바로 가는 버스나 기차는 없었고, 빌바오에서 히혼을 갔다가, 히혼에서 폰페라다를 가서 환승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편도시간만 15시간이었다. 인천에서 뮌헨까지 13시간이었는데, 육상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항공으로 이동하는 시간보다 더 많았다.


600km 이동경로, ALSA 버스 만세


그래도 별 수 없었다. 안 그러면 빌바오에 하루 더 머물면서 다른 이동수단을 찾아봐야 하는데, 그러기엔 뒤에 일정들이 다 예약 되어 있어서 얼른 하루를 버리고 산티아고 일정을 시작하는 수 밖에 없었다. 와이프는 울그락 불그락 거리는 얼굴을 하면서 차분하게 예약을 하라고 했고, 오전 11시에 빌바오를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15시간의 버스 순례길

순례자의 길을 걷던 코스로 버스를 타고 이동한 건 우연이겠지만, 모든 순례길에 겪는 고행은 필연인 것 같았다.

Bilboa ▶ Oviedo

1차 환승지인 오비에도까지는 약 300km 였는데, 경유지가 많아서 4시간 가량 걸렸다. 다음 버스까지도 20분 정도 밖에 없어서 오비에도에 도착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한국 같으면 도착예상시간 보다 빨리 도착하겠지만, 스페인 놈들은 경유지마다 여유가 흘러 넘쳤다. 생각했던 시간들 보다 10~20분씩 지연 되는 것 같아 오비에도에 늦게 도착하는 건 아닐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타지에서 정보도 부족한 상황에서 환승이 한 번이라도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생길 것만 같았다. 그래도 다행히 오비에도에는 10분 정도만 늦었다. 그렇지만 환승할 플랫폼에는 버스가 없었다. 어마어마하게 당황했지만, 재빠르게 다른 버스들의 목적지를 스캔해서 다행히 오비에도에서 히혼 가는 버스를 탔다.


Gijon ▶ Ponferrada

생각지도 못한 코스였다. 오비에도에서 히혼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는데, 히혼에서 다시 오비에도 터미널을 들려서 폰페라다로 갔다. 차라리 오비에도에서 탈 걸 그랬다.. 아무튼 히혼에서도 해안가를 쭉 따라 갈 줄 알았는데, 칸타브리아 산맥을 넘어 폰페라다라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내륙도시로 향했다. 히혼에서 폰페라다까지도 약 250km 였는데 이번에도 약 5시간 정도 걸려서 도착했다. 그래도 빌바오부터 히혼까지는 우중충한 날씨와 중간중간 오는 비 때문에 기분도 꿀꿀했는데, 칸타브리아 산맥을 넘어서는 화창한 날씨였다. 생전 처음 보는 광활한 초지에 비구름이 걸쳐진 산맥, 정오를 넘어가는 햇살은 생각지 못한 광경을 선사해줬다. 그래도 다행히 와이프는 이런 풍경에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이 때가 벌써 빌바오를 출발한지 8시간이 넘은 시간이었다.



Ponferrada ▶ Santiago de Compostela

드디어 마지막 환승이었다. 스페인이 해가 이렇게까지 늦게 지는지 몰랐는데, 폰페라다에 22시가 넘어서 도착한 것 같은데, 그제서야 주변이 캄캄해져갔다. 직전까지 노을이 계속되어서 22시가 되어가는줄도 몰랐다. 그래서 이동시간 동안 볼거리가 많아서 아주 지겹거나 지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무튼 마지막 환승을 하고 산티아고까지는 계속 자면서 이동했다. 마지막 산티아고 터미널에 내리니 나와 와이프, 손님 두명과 버스기사가 가로등만 있는 거리에 서 있었다. 손님 두 명 중 한 명은 가족이 마중을 나왔고, 한 명은 기다리던 택시를 타고 떠났다. 와이프랑 나는 택시를 부를 생각도 못하고 30분을 걸어 숙소로 갔다. 늦은 시간이라 캐리어를 끄는 소리가 커서 서둘렀던 기억이 난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주마등처럼 스쳐가지만 그 때 당시를 회상해보면 아찔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산티아고길을 걸었던 터라 중간중간 큰 도시들을 알고 있었고, 환승해서 가는 코스도 알아봤던 터라 무사히 15시간 만에 다음 신혼여행지인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튼 바보 같은 일이 만든 나비효과는 생각보다 어마무시했다. 다행히 와이프도 내가 당황하고, 시간이 좀 많이 걸렸지만 수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쓰러워해줬다. 그래도 일하면서 당황은 짧게, 수습은 빠르게 하는 습관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변수를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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