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핸드폰을 새로 샀습니다.

101번 글쓰기

by Typho

2024년 12월 3일

저녁 7시쯤이었다. 이제 갓 7개월이 된 아들을 목욕시키고, 아내와 함께 맥주 한 캔씩을 나눴다. 평소처럼 유튜브 쇼츠와 인스타 릴스를 하염없이 넘기다 보니 어느새 밤 10시를 훌쩍 넘겼다. 그때였다. 네이버 메인에 “비상계엄”이라는 속보가 떠올랐다.


처음엔 장난인가 싶어 날짜부터 확인했다. 12월 3일, 만우절은 아니었다. 비상계엄이란 단어가 너무 생소해 검색을 해봤다.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봤던 그 단어가 맞았다. 곧이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TV에 나타나 비상계엄 선포를 발표했고, 단톡방마다 포고령이라는 것이 돌았다.


“국회가 봉쇄됐다”는 뉴스가 뜨자 심장이 요동쳤다. 유튜브 라이브로 현장을 확인하려고 각 정당이나 유명 정치인의 채널을 뒤졌지만, 결국 한 언론사의 라이브 방송에서 국회에 헬기가 착륙하고 군인들이 진입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 내일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긴장감이 온몸을 지배했다. 차를 몰고 국회로 달려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음주운전이 걸림돌이었다. 맥주 한 캔 때문이었다. 결국 손발만 동동 구르며 밤을 지새웠다.

새벽 1시경, 국회의원들이 계엄 해제를 의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대통령의 해제 선포는 들을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떨며 새벽 4시 무렵 간신히 잠이 들었다. 그나마도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완료했으니 2차 계엄 같은 일은 없으리라는 희망 덕이었다.


아침 6시, 눈을 뜨자마자 뉴스를 확인했다. 대통령이 잠든 사이 해제를 선포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평소처럼 다시 누워 8시까지 잠을 잤다.



2024년 12월 4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대통령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하루를 보내고 있는 듯 했다. 체포 됐거나 하야 한다거나 하는 신변에 대한 뉴스가 하나도 없었다. 오직 관저에 칩거했다는 뉴스 뿐이었다. 군을 동원해 국회를 봉쇄한 사람이었는데, 나처럼 평범한 하루를 보냈을 거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그의 하루는 나와 달랐겠 지만, 겉으로 보이는 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저녁이 되도록 대통령은 체포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 언론은 대통령을 두둔하는 목소리를 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루였다.


그 끝은 핸드폰이었다. 갑자기 핸드폰이 먹통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연락수단이 끊긴다는 건 답답함 그 자체였다.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잠이나 청할 수밖에 없었다.



2024년 12월 5일

아침부터 삼성 서비스센터를 찾아갔다. 핸드폰의 메인보드에 이상이 있다고 했다. 수리가 아닌 교체가 필요하다는 답변에 비용이 50만 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라리 새 핸드폰을 사는 게 나았다. 하지만 데이터만큼은 지켜야 했다. 사설업체에서 메인보드 데이터를 백업하는 데 40만 원이 들었다. 하루가 걸린다고 했다. 새로운 핸드폰을 준비해 오라는 말도 함께였다.


새 핸드폰을 고르는 데 큰 수고로움은 없었다. 핸드폰은 늘 친구의 아내를 통해 바꿔왔으니 이번에도 믿고 맡겼다. 다만 그녀가 강원도에서 근무 중이라 택배로 받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도 문제없었다. 그녀는 기기값과 통신비까지 알아서 정리해줬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기존 핸드폰이 망가진 탓에 본인 인증이 불가능했다. 새 핸드폰을 만들려면 기존 핸드폰으로 인증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몇 시간이나 해결책을 찾다가 결국 착신전환이라는 우회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다. 아내의 번호로 착신전환을 설정한 덕에 개통이 가능했다.



2024년 12월 29일

계엄이 해제된 지 25일째. 그사이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었지만,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6명뿐이라 탄핵의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6명으로도 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대통령 측은 이를 구실로 끝내 불복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을 비롯한 내란범들은 피의자의 방어권 등을 구실삼아 온전한 수사를 거부하기도 한다. 절차 자체를 문제 삼아 본인들의 혐의를 회피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비루하다고 감정적으로 비난할 뿐 실질적인 제재와 처벌은 법원의 판단 전까지 어렵다.


법과 제도는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하지만 그 절차와 요건이 사회 구성원의 뜻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법과 제도의 무력함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가 없다면, 사회는 공존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5세 입학, 홍수퇴근, 이태원 참사와 의대 정원 문제 등을 상기해 보면 이 모든 것들이 정부의 온전함과 무관한 혼란이었다. 지금이 오히려 질서에 수렴하는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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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이 없으면 핸드폰을 만들 수 없는 아이러니. 생중계된 내란조차 수사와 입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법적 현실. 이런 답답함 속에서 이 글을 적는다.


2025년이 머지않았다. 반드시 법과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가 정당하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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