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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Dec 14. 2020

#14. '라 이슬라' 라는 곳

101번 글쓰기

우리나라로 치면 고성쯤 되려나

오비에도가 있는 프리메티보길을 목전에 두었던 시기
라 이슬라 라는 스페인 북부의 소도시에 도착한 적이 있다.


스페인 북부를 그들은 GREEN SPAIN이라고 부른다. 대서양을 앞에 둔 높은 산맥이 목가적인 풍광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한창 걸었던 7월임에도 높은 산지와 바다의 영향 때문에 저녁에는 긴팔이 필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떤 순례자는 나사에선 쓸 법한 바스락 소리가 비명처럼 계속나는 얇은 아크릴천을 덥고 자기도 했다.


라 이슬라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나는 하루에도 봉우리를 2개씩 넘었던 것 같다. 관악산 정도되는 코스를 하루에 두개씩 넘는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힘겨운 코스인지 가늠이 될 것 같다. 한 번은 산이 높아서 아래가 보이지도 않는 안개와 구름에 뒤덮여 등산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런 고행 끝에 만나 해변의 소도시는 달콤하고 시원한 콜라 같았다. 펼쳐진 해변과 나른한 사람들 몇몇과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산을 헤메던 이전의 순례길에서는 쉽게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적시는 곳 없이 축축했던 몸이 해변에 다다르니 태양을 만나 바싹 말랐던 것도 색다른 느낌이었다. 눅눅한 노가리가 바싹마른 북어포가 되는 느낌을 온몸으로 체험한 듯한 느낌이었다.


발길이 다다른 라 이슬라에서 여정을 풀고 만났던 독일 법학자가 기억에 남는다.


50대 중후반 정도의 외모였는데, 키가 큰 게르만족의 전형적인 체형이었다. 알베르게에서 잠깐 쉬고 있다가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에게 호기심을 표현하면서 말을 걸어왔다. 영어가 능숙치 못한 탓에 몇마디 겨우 알아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분은 쾰른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교수님이었는데, 여름휴가를 맞아 작년에 걷던 길을 이어서 걷고 있다고 했다. 들어보니 유럽사람들은 휴가 때마다 걸을만큼의 코스를 정해놓게 매년 순례길을 걷는다고 했다. 우리로 치면 서울둘레길을 주말마다 걷는 것 같은.. 그런 일상적인 취미활동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대단한 도전이었지만 유럽사람들에게는 여름휴가 계획쯤으로 여겨진다고 하니 뭔가 내 목표(?), 꿈(?)이 사소한 것이었나 싶은 자괴감도 살짝 들었다.


모두가 각자의 삶을 살면서 남과 비교를 하게 된다. 비교의 원인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확인하고자 성취욕이라고 생각한다. 비교를 통해 나의 꿈과 꿈을 이루고자 하는 행동이 대단하다고 확인되면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허상에 잠기고, 비교 했을 때 변변치 않다고 생각이 들면 스스로를 한 없이 작게 만들어 버리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것은 없는데..


모두 자기만의 우주 속에 살고 있다. 내가 꿈꾸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대단한 행동인데. 가끔 그것을 잊고 비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다이어트였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어떤 경험보다 확실하게 정립해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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