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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Dec 27. 2020

#21. 루고 렛고

101번 글쓰기

루고. 스페인에서 로마를 볼 수 있는 도시


프리미티보 길의 중간에 있는 루고는 산들로 둘러쌓여 있던 도시였다. 루고 전에는 카다보라는 도시가 있었고, 루고에 도착하기 위해 새벽 같이 카다보를 떠나 루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반나절 정도 걸었을 때 루고에 도착했다. 때는 7월 중순의 한 여름이어서 낮에는 너무 뜨거워 아침 일찍이 걸을 수 밖에 없었던 사정도 새벽 같이 걸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루고는 천년전 로마군이 건설한 거대한 성벽의 도시였다. 거짓말 조금 더 보내면,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거대한 성벽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성벽 차체가 워낙 높고 두꺼워서, 성벽의 위는 러닝하는 사람들, 산보하는 사람들, 중간 중간에는 벤치와 운동기구들이 있었고, 성벽 아래 건물들의 옥상, 중간층의 정원들이 한눈에 보였다.


사실 루고는 순례자들에게도 그리 유명한 도시는 아니었다. 허나 로마 성벽 하나만으로 스페인 내에서는 꽤나 유명한 도시라고 했다. 별다른 사전조사 없이 마주했던 도시였던 만큼 특산품이나 더 깊고 재밌는 도시의 스토리는 잘 모른다. 하지만 루고에 도착해 반나절 있으면서 오비에도에서 만큼이나 산책을 많이 했다. 성벽 위로도 한참을 걷고, 그림자가 깊고 크게 진 성벽 아래로도 한참을 걸었다.



스페인을 한달 정도 걸으면서 느꼈지만 '시에스타'를 정말 철저하게 지키는 그들의 모습에 경악과 감탄을 매번 했던 것 같다.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이 유명 관광지를 제외하고, 중소 도시에서는 1시부터 3시까지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배가 고파도 식료품점이나 식당이 문을 닫으니 먹지도 못했고, 커피 한 잔을 하고 싶어도 문을 연 곳을 찾기는 쉽지 않았었다. 이런 비유가 옳을진 모르겠지만 코로나 시국의 요즘과 매우 흡사한 시내였다. 차 한 대 차기 어려웠고, 행인 한 명 찾기 어려웠다. 그치만 잠소리가 소근소근 들리는 것과 같이 부드러운 적막이 실질적 불편함 보다 감정적 편안함을 더해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방인인 나는 스페인 사람들이 하나도 없는 시내에 혼자 거닐면서 침략자 아닌 침략자 행세를 상상했던 것도 꽤나 재밌었던 경험이었다. 조용한 시내를 혼자 채우고 있는 듯한 느낌은 참 생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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