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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ypho Dec 26. 2020

#20. 뉴욕 구겐하임

101번 글쓰기

크리스마스 아이디어 회의 중


광고일을 하다 보니 연휴에도 출근이 그렇게 짜증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아니다.

피할 수 없다면 좋은 아이디어를 잘 정리해서 수긍이 가게 하면 일하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그럴려면 평소에도 아이디어를 해야하고, 평소에도 아이디어를 잘 정리하려면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수준의 경험과 생각을 줍줍 해야 한다. 그런 것에 도움이 되는 것이 여행이고, 더 좋은 것은 여행가서 미술관에 찾아가는 거라고 생각한다.


25살에 처음 해외여행을 미국으로 갔을 때, 뉴욕의 구겐하임을 들렀던 기억이 났다. 연휴에 출근했던 상황이 나를 과거의 뉴욕여행까지 생각을 미치게 했다. (써놓고 보니 다소 중의적인 표현 '생각이 미쳤다.')


이곳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생전 본적 없는 형태의 조형물과 생전 본적 없는 컬러의 회화와 시대별 표현방법. 그리고 생전 본 적 없는 사람들의 생김새와 옷차림새, 말투와 뜨문뜨문 이해하는 말소리였다.


기본적으로 구겐하임의 외관은 팽이를 닮았다. 건물의 위로 갈수록 폭이 넓어지는 팽이가 연상 됐다. 어찌보면 가분수이지만 서있는 모습을 보면 꽤나 안정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안에 들어가면 나선형의 실내 골목이 꼭대기로 이어진다. 실내 골목의 벽과 중간중간의 공간에 전시물들이 걸려있고, 어떤 사람은 난간에 기대어 있고, 어떤 사람은 하염없이 한 전시물만 골똘히 지켜본다. 어떤 사람은 전시물은 보지도 않고 일행과 끊임없이 떠든다. 이 공간의 백미는 통창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치 건물이 머리라면, 통창은 환하게 하늘을 보여주고 있어 생각이 막힘 없는 어떤 인간의 머리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했었다.


이 건물이 생각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생각의 꼬리를 무는데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어디 하나 막힌 곳 없이 모든 전시물들에 대한 시선의 연결이 자연스러워서 쉽게 읽히는 만화책과도 같았던 기억이 있다.


오늘도 꽉막힌 머리를 싸메고 출근해 아이디어를 정리해 나갔다. 책상에 앉아 20분 동안은 어떤 생각을 해야할지만을 생각했다. 그러다가 다시 한 번 광고주의 RFP를 읽었고, 눈에 걸리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기획방향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그리고 생산적인 잡생각일 것 같은 것을 두고, 문서를 정리했다. 정리한 문서를 다시 한 번 읽고 말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지우고, 그나마 말이 될 법한 것은 워딩만 남기고 살을 다시 붙였다. 그렇게 2가지 방향에 대한 아이디어를 하나씩 정리했다. 그리고 강박과 같이 방향 별 3개씩 굳이 정리를 해냈다.


좋은 생각, 나쁜 생각은 없다. 물꼬를 터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언제나 필요하다. 운이 좋으면 제안에 써먹히는 것이고, 또 운이 좋으면 다른 생각이 봇물 터지는 마중물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또 운이 좋으면 '저런 생각은 하지말아야지.'에 대한 기준이 되어 준다.


참, 크리스마스 끝나자마자 일을 하고 나니 뭔가 여행은 가고 싶은데 가지는 못해서 아쉬운 마음과 좋은 아이디어 발상법을 배웠던 한 공간에 대한 여행기억, 여행경험을 당분간 다시 까져 먹기 전에 적어둬야지 싶은 토요일이다. 


뉴욕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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