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훈 Feb 23. 2016

한국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하지 않는 이유

한국 사람들이 무관심하고 무정해서가 아닙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에도 족히 수백 명의 새로운 얼굴들을 만납니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한 번 타거나 레스토랑, 카페에 들러도 한 번에 수십 명의 새로운 사람들을 보게 되죠. 하지만 혹시 이런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사나 이야기를 건네 본 적이 많으신가요? 아마 아닐 겁니다. 길을 잃어버렸다거나 하는 등 내가 정 필요할 때가 아니면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은 꽤나 흔치 않은 일이죠. 당연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되실 수 있으나 사실 문화마다 다소 차이가 있답니다. 영국에 사는 한국 여성의 이야기 네이버 웹툰 '펭귄 loves 메브' 에는 이러한 경험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 나옵니다. 먼저 한 컷 감상하시죠. (원작이 궁금하시면 여기를 클릭)


<네이버 웹툰 '펭귄 loves 메브' 296화>



I  말을 쉽게 건네는 외국 문화

외국, 특히 서구 문화권에 가 보셨던 분들, 위와 같은 경험이 있으신지요. 물론 피부색이 다르면 약간 거리감을 두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처럼 같은 공간에서 완전히 무관심하게 있지 않는 경우도 많답니다. 저 같은 경우, 연발하는 비행기를 타러 이동하던  공항버스에서 옆에 앉은 처음 보는 이탈리아 여자분이 저에게 '어떻게 국제선이 이렇게 늦을 수 있으며 이 항공사가 전에는 이 보다 더 심한 것도 있었고 본인은 이탈리아 출신이지만 10년 넘게 세계 여행 중이고 옆에 있는 이 친구는 인터넷으로 만나서 이 나라를 같이 여행하는 캐나다 친구다' 등등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이야기를 건넸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럽던지 이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대화가 시작되는구나 싶었죠. 또 외국에 리조트에 갔을 때도 사람들을 만나면 살짝 웃으면서 hi 하고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I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피하는 사람들

우리나라로 돌아와 볼까요. 제가 지금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고 수도 없이 많은 카페를 갔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위의 경우처럼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 공간 안에서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리조트나 심지어 아파트 단지에서 누군가를 만나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하죠.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는 경우는 꽤나 드뭅니다. 이럴 때 스마트폰이 있어서 얼마나 편해졌는지요. 눈을 마주치지 않을 공식적인 구실이 생겼으니 말입니다. (공감하는 분들 많으실 듯??)


<폰 보는 척 하면서 시선을 피한 적, 있으신가요>



I  여러 사회 문제들은 말을 건네지 않아 발생

문제는 이를 불편해하거나 좋지 않게 보는 견해가 많지만 그렇다고 먼저 말을 거는 것도 또 어려워서 이래도 저래도 불편한 상황이 지속된다는 겁니다. 또 이렇게 서로 대화를 시작하지 않는 문화가 계속되면서 발을 밟거나 어깨를 부딪혀도 바로 말을 거는 타이밍을 놓치고 나중에 속으로 욕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더 나아가서는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이 발생해도 윗집 아랫집과 대화를 트지 않는 문화 때문에 대화로 해결하지 못하고 폭력이나 공권력을 이용하여 화를 해소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며 한국 사람들 스스로 '한국인들은 성격이 무관심하고 배려가 없다' 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어 무관심한 행동을 당연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쉽게 말을 걸지 않고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울까요? 정말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안 좋고 배려심이 없어서 그럴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 이유의 근저에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 차이' 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이를 간단하게 풀어보죠. (우리가 성격이 나쁜 게 아니에요)



I  인간관계의 개념 차이

겉으로 보기에 서양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인간관계를 맺는 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관계'라는 것의 개념은 꽤나 다르다고 생각됩니다. 먼저 한국 사람들의 인간관계 개념에 대해 알아보죠. 약간 유식하게 사회학자 한 분을 모셔오겠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인데요 인간관계와 공동체에 대한 명료한 구분과 정의를 한 분이라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퇴니에스>



I  한국의 인간관계 개념

퇴니에스가 정의한 공동체의 구분 중 한국 사람의 인간관계는 다분히 '게마인샤프트' 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이야기는 빼고 이 게마인샤프트적 인간관계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게마인샤프트는  인간관계를 혈연과 집안, 지연 등 본인의 선택보다는 '필연적으로 맺어지는 것'이라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인간관계는 내가 선택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집단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랄까요. 그러다 보니 학교, 회사, 종교모임 등 필연적인 상황에서는 인간관계가 쉽게 발생하지만 카페나 바, 대중 공간 등에서 내가 선택적으로 인간관계를 만드는 일은 쉽게 발생하지 않겠죠. 이러한 게마인샤프트적 인간관계에서는 개인보다 집단의 가치가 우선시 되기 때문에 그 집단의 전통이나 관습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집니다. 효도사상,  형제간의 우애, 차례나 제사 등의 가치관을 우리나라 대다수가 옳은 것으로 생각하는 현상도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죠. 또, 누구나 의례 격하게 한국을 응원했던 2002 월드컵 응원전도 이러한 집단적 가치 우선 현상을 보여주고요.


<한국의 인간관계 개념의 많은 것을 말해주는 우리가 남이가!>


이렇게 하나의 집단 가치관을 공유하는 인간관계가 기본이 되다 보니 자신의 모든 것과 상대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동질화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나  언행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끈끈한' 유대감도 동반됩니다. 그렇게 하나의 정서적 일체감을 가진 인간관계는 '우리가 남이가!' '옆 집 숟가락 개수도 안다'  '이웃사촌' 등 뗄 수 없는 관계를 나타내는 말들에서 발견되고, 집합을 의미하는 '우리'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인식을 보여주죠. 화룡점정으로 한국에 이러한 인간관계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정(情)' 입니다. '정'은 상당히 긍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인간관계를 맺은 사이에서 언제나 가지고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어려움에 처하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 언제나 정서적으로 친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고 표현하는 현상을 보여주죠. 자신의 사소한 것과 비밀 등 모든 것을 공유하면  할수록 친하고 '정'이 깊어간다고 생각하여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렇게 정이 없냐' 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입니다.


<먼나라 이웃나라 한국편의 '정'에 대한 설명>


설명이 길었는데요 게마인샤프트적 인간관계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필연적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정서적 유대감과 가치관의 공유' 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인간관계과 다분히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이 여기저기서 드러남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혈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했던 전통적인 한국의 인간관계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역사적인 이야기는 너무 길어지니 현재의 현상만 보기로 하죠.


이는 많은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 남을 남이 아니라 우리라는 일체(一體)로 생각하기 때문에 누구든 어려움에 처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면 자신의 일인 양 성심을 다해 도와주고 모두 힘을 모아 발 벗고 나서 줍니다. 매년 반복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수해 난민을 돕는 모금 행사에서 항상 전국적으로 한 푼 한 푼 많은 모금이 되는 현상도 이러한 인식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문제점도 있는데요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선택적 인간관계 발생의 어려움' 입니다. 즉, 본인이 자의적이고 선택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어나가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I  한국의 인간관계 개념은 인사를 건네기 어렵게 한다

제가 위에서 한국 사람들이 인식하는 인간관계가 게마인샤프트적인, 즉, '필연적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정서적 유대감과 가치관의  공유'의 경향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는 다시 말해, 누군가와 인간관계를 맺으면 '정서적으로 친밀해야 하고' 또 '가치관을 공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나의 정서 소비와 가치관 변화를 야기하기 때문에 함부로 발생시키기가 어렵습니다. 지나가다가 눈 마주친 사람과 정서적 유대감과 가치관의 공유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요. 필연적 상황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러한 공유가 일어나거나 기꺼이 노력을 하겠지만 필연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그 노력을 하지 않고 피하려고 할 겁니다. 어떤 사람과 인사를 하고 말을 나누었다는 것은 곧 인간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한국 사람들의 머리 속에 인간관계는 '정서적 유대감'과 '가치관의 공유'를 내포하기 때문에 약간의 비약을 더해,


"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인사

= 이 사람과 정서적 유대감을 가지고 가치관을 공유하는 노력을 시작하겠다 "


라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꼴입니다. 정서적 유대감(정)은 본인의 더 많은 것을 노출하고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하기 어려운 너와 나 사이의 비밀이나 사소한 것 (숟가락 개수가 몇 개인지 까지도) 들을 공유하며 쌓여간다고 생각하는데 처음 보는 사람과 이러한 관계를 맺을 것을 생각하고 인사나 대화를 건네겠다?? 가능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하겠죠. 그러다 보니 처음 보는 사람과 가능하면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하고 아예 눈을 마주치지 않아서 처음 '보는' 사람이 되지 않게 하려 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겁니다. 많은 경우 스마트폰의 힘을 빌어서요. 즉, 놀랍게도 한국 사람들이 처음 보는 사람을 애써 외면하고 무관심하게 대하는 행동은 매정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정'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관계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또, 한 번 인간관계를 맺으면 10, 20이 아니라 100까지 깊고 끈끈하게 가야 한다는 (우리가 남이가! 를 떠올려 보세요) 무의식적 어려움이 아예 이를 0으로 만들어 버리는 현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정이 많고 이 정 때문에 인간관계를 시작하지 않게 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하는 거죠. 다시 말해, 정서적으로 깊은 인간관계에 대한 무의식적 어려움과 두려움 때문에 인간관계를 시작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I  도시화와 서구 인간관계 개념의 수입

사실 전에는 이러한 인간관계 인식이 문제가 되지 않았었는데요 제가 어렸을 90년대만 해도 아파트 아랫집 윗집 옆집 서로 다 알고 복도식 아파트 중앙 엘리베이터 홀에서 돗자리를 깔아놓고 같은 줄 아이들끼리 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응답하라 1988 에서 이웃들은 모든 것을 공유했죠>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되고  2년마다 이사하는 전세 제도 등 때문에 도시는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아파트 옆집 윗집에 가까이 살게 되고 점점 이러한 인간관계에 대한 부담이 커졌죠. 저는 이사를 자주 다니지 않은 편이고 지금 아파트 단지에 산지가 8년인데 인사하는 사람이 둘셋 밖에 안됩니다. 이러한 도시화와 더불어 서구적 가치관이 수입되면서 우리나라의 인간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도시화가 한참 일어나던 20세기 서구적 가치관을 간단히 설명드리면, 다시 사회학자 퇴니에스를 모셔와서 그가 말한 '게젤샤프트'적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익 사회'로도 번역되는 '게젤샤프트'는 각자의 이익을 위해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선택에 의해 타산적이고 의식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전인적이고 정서적이 아니라 일면(一面)적이고 등가교환적으로 인간관계를 맺습니다. 협약, 정치 등의 형태가 나타나며 남이 일정 범위를 넘어 자기 영역에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전체 가치관이 아닌 개인 이성적 자유를 보유하면서 생활하기를 원합니다. 다분히 개인주의적인 사고며 자칫 이기주의로 흐를 수 있죠.


<동양과 서양의 인식 차이를 일러스트로 표현한 책 'Ost trifft West' 왼쪽이 서양 오른쪽이 동양>



I  인사를 먼저 건네지 못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하지만 이러한 인간관계 개념이 우리나라에 수입되고 개인주의적 사고가 옳다는 의견이 등장하면서 현재 우리나라는 인간관계에 대한 개념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보입니다. 즉, 어떠한 인간관계가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사회 공통적 인식이 흐려졌다는 거죠. 그래서 정서적 공유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적 인간관계에 대한 무의식적 어려움으로 새로운 인간관계 생성을 두려워하는 상황을 '서구적인 개인주의 가치관을 가지기  때문이다'라고  합리화시켜버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아파트 단지에서 두어 번 본 사람이랑 마주쳤는데 왠지 인사하고 말을 걸면 이 사람이랑 볼 때마다 친하게 지내야 할 것 같고 (게마인샤프트적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 이 사람이 같은 아파트 살지만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도 없고 하니 (도시화) 그냥 모르는  척하고 있어도 손해 볼 것 없고 어차피 사람이란 개인으로 사는 거니까 상관없다 (게젤샤프트적 인간관계에 대한 합리화) 같은 방식이 되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원래 그렇지 뭐' 라는 식으로 자기 비하를 하게 되고 자신이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다시 합리화를 하게 되는 인식적 오류를 범하기 쉽게 됩니다. 이 모든 상황의 기저에는 오히려 정서적 유대감과 측은지심의 마음을 기본으로 하는 인간관계가 있지만 이렇게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들이 얽혀 무심하고 무례해 보이는 전혀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매정하고 무관심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랍니다.



I  인간관계의 부담을 덜자

마지막으로, 제가 지금 이런 현상에 대한 솔루션을 턱 하니 내놓을 수는 없지만 항상 생각하던 것을 언급하며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먼저 우리 스스로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을 가볍게 하여 이 사람과 지금 인사를 한다고 해서 나중에 꼭 친하게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반갑게 대하면 되며, 항상 정으로 엮여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선 이리라 생각합니다.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래서 안돼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이 많아서 말을 걸기 어려워서 저렇게 행동하겠구나 라고 상대를 생각하고 오히려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처음 만난 사람과 인사를 하든 안 하든 그것은 본인의 자유이지만 이러한 인사 한 번이 많은 경우 어려운 상황을 쉽게 풀어가게 만들고 힘을 모을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무정하고 무관심해서 그런 것이 아니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0분만에 이해하는 아이폰 디자인 철학_액체에서 빛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