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를 목적하며 예술가의 사고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우리는 디자이너의 작품이 훌륭하면 '완전 예술가네' 라고 말하기도 하고, 대중 가수를 '아티스트'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디자이너가 스스로를 예술가라 칭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기가 하는 일이 디자인인지 예술인지를 고민하기도 합니다. 디자이너와 예술가는 모두 무언가 감각적 표현을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느낌이 있지만 사실 상당히 다른 사고 과정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적인 사고방식과 예술적인 사고방식, 무엇이 다른지 나름의 정리를 통해 디자인과 예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생각해보려 합니다. 물론 이 논의는 복잡하고 난해하여 대학 한 학기 강의가 모자를 수 있지만, 고민해 볼 단초의 한 방향이라 생각하고 접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정의를 위해 먼저 '디자인'과 '예술'을 두산백과에서 찾아보면, 간단히 디자인은 '주어진 목적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것', 예술은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인간의 창조 활동' 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정의해서는 두 의미를 비교하여 파악하기 어렵고, 정의 자체도 조금 난해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느끼고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의미를 조심스럽게 저의 단어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참고로 저는, 화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누나는 패션 디자인, 저는 건축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건축의장(意匠=design)연구실 석사를 마치고 건축 디자인, 기업 창의 컨설팅, 아프리카 부동산 개발, IT회사 전략기획 등 디자인 및 예술과 기업 및 사회의 경계에서 공부와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분들이 보시기엔 미진한 부분이 있고 저의 생각이 일반론적인 의미를 다 담지는 못하겠지만 이를 안팎에서 볼 수 있었던 특성을 바탕으로 생각을 한 번 정리해 보고자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사람이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표현의 주제(단초)가 있어야 하는데요, 그 주제는 크게 내 안을 바라볼 때 보이는 나의 감정과 생각들, 아니면 내 밖을 바라보면 보이는 세상의 생각이냐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을 텐데요,
저는 전자를 예술적 사고방식, 후자를 디자인적 방식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예술가가 전자의 사고만 하고 디자이너는 후자의 사고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두 개의 사고 과정이 융합되어 어떤 사람은 '예술가 기질의 디자이너' 이고, 또 어떤 사람은 '디자이너 방식의 예술가' 일 수 있습니다. 이 두 사고가 완벽히 융합되어 안팎이 없는 천재적 사고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요. 사고방식 면에서 전자를 예술가적 사고방식, 후자를 디자이너적 사고방식이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술가와 디자이너라는 사람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그 생각과 시선의 방향이 내 안을 향해 있느냐, 혹은 밖으로 향해있느냐로써 사고방식을 구분해 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생각하면, 시각적인 결과물뿐만 아니라 '사회 디자인' '정치 디자인' '공공 예술' 등 사회 전반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를 확장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허니버터칩 개발 일화를 보면, 기업에서 '온라인 SNS 등에서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맛의 형용사를 빅데이터로 추출해보니 단맛과 버터맛이 많이 나왔더라. 따라서 이를 같이 느낄 수 있는 맛의 스낵을 만들어야 겠다' 라고 생각해서 허니버터칩이라는 신제품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이는 다분히 '디자이너적 사고' 로써 기업 내부가 아니라 기업 바깥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철저하게 파악해서 이를 만들고 제공(표현)한 것이죠. 예술가적 사고를 했다면 '우리 기업 내부 역량과 생산성과 특징을 고려하여 이런 신제품을 만들자' 라는 결론이 나왔을 겁니다만, 접근 방식이 달랐던 겁니다.
반대의 면에서는, 요새 DIY 가 유행을 너머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나는 흰색 빈티지 스타일이 좋으니까 내 가구를 그렇게 바꾸겠어' 라고 생각해서 나의 기호와 취향을 가구에 표현하여 리모델링을 했다면 그건 다분히 예술가적 사고로써 나를 위한 '예술 작품' 이 될 수 있는 것이겠죠. 만약 '요새 미세 먼지가 많으니까 먼지가 끼지 않게 거친 원목 면의 가구를 매끈하게 바꿔야겠다' 라고 생각해서 리모델링을 했다면 이는 내가 아닌 밖의 상황을 고려하여 만든 것이기 때문에 디자이너적 사고로 표현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융합한다고 하면, '미세 먼지 때문에 먼지가 끼지 않게 면을 매끈하게 바꾸고 싶은데 흰색 빈티지 스타일을 좋아하니까 흰색으로 거칠게 칠한 후에 투명 바니쉬로 마감해야겠다.' 라고 하는 방식이 되겠죠. 우리는 대부분 융합적으로 사고하는데 이해와 설명을 위해 극단적으로 예술가적 사고와 디자이너적 사고를 나누어 묘사드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디자이너적 사고는, 세상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를 훌륭히 만들어 전달하는 것
예술가적 사고는,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
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해와 설명을 위해 '절대적으로 각각의 사고를 행하는 사람을 디자이너와 예술가라고 칭하고' 글을 써 보겠습니다.
그럼 하나하나 비교해 보겠습니다. 먼저, 디자인 사고는 '세상이 원하는 것' 을 만드는 것이고 예술적 사고는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 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각각의 사고를 극단적으로 행하는 사람을 디자이너와 예술가라 부르기로 하면, 사실 이것이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결정적인 차이라고 생각됩니다. 디자이너는 예술가처럼 자기가 원하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다른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거죠. 반면에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요구보다는 자기가 생각하는 것, 자기가 만들고 표현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매진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할 때 그 내용이 머리 속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에 대한 고찰이 중요합니다. 사회정치 예술이나 공공 예술 등의 경우도 그래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것을 예술가 본인만의 독창적인 생각 필터로 걸러서 자기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 중 하나라 볼 수 있겠습니다.
디자이너는 '세상, 즉, 다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 조사를 하고 피드백을 연구하며 끊임없이 사용자와 소통하는, 예술가와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디자이너의 정의에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어구를 넣은 것이죠. 만약 자기 자신을 위한 디자인을 한다고 했을 때도 나의 욕구(니즈)와 불편함 등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이를 파악하는 과정이 포함될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미세먼지를 위한 가구 DIY 처럼요.
다음으로 ‘자신만의 방법으로 만든다’ 라는 부분은 서로 유사합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든, 나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든 두 행위 모두 '생각'이라는 무형의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는 것으로 만들어 내는 구현 과정이 필요합니다. 컴퓨터 그래픽을 기가 막히게 잘 다루든, 컬러를 남들과 다르게 선택할 수 있는 눈이 있든, 패턴을 잘 활용하든, 비례감이 좋아 적절한 입체나 공간감을 잘 만들어 내든, 자기만의 표현 기술과 방법이 요구되고 그 표현 '무기'가 얼마나 다채롭고 훌륭한가에 따라서 결과물이 좌지우지되기도 합니다. 머리 속에만 있고 결국 표현되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가치를 알 수 없겠죠. 사실 이 표현이라는 부분에서 디자이너와 예술가가 유사하기 때문에 결과물만 보고 혼동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목적으로 했느냐를 생각한다면 위의 정의 내에서는 디자인인지 예술인지 큰 그림에서 구분할 수는 있을 겁니다.
확장해서 보면 시각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디자인, 사용 상에서의 디자인, 정치적 예술 등 어떠한 감각 혹은 이성적인 표현을 다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시각에 국한되지 않는 이러한 표현도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정치 예술을 한다고 해도 이를 어떻게 자기만의 방법으로 날카롭게 표현하느냐가 그 작품의 가치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겁니다. 내가 가진 표현의 무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확장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디자이너적 사고는 이러한 것을 '만들어 전달하는' 것이고 예술가적 사고는 '만들지만 전달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고 비교해 볼 수 있겠습니다. 설명드리자면, 디자이너는 ‘많은 사람들(세상)'이 원하는 것을 만듦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무언가를 많이 디자인하고 제작한다 해도 그것이 세상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스스로의 실력 향상 외에 디자인적으로 가치를 가지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디자이너적 사고를 하면 자신의 디자인 결과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디자인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많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수록 정확한 반응을 알 수 있고 자신의 디자인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같은 맥락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것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고 사랑하는 것보다 디자이너로서 더한 보람은 없을 겁니다.
반면에 예술가적 사고를 하면, 애초에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본인의 독창적인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대중)의 평가나 관심이 디자이너적 사고처럼 중요하지는 않아집니다. 예술가적 사고에서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생각을 얼마나 제대로 머리 밖으로 꺼내서 표현했느냐가 되고, 그것이 얼마나 훌륭한지 안 훌륭한지를 대중이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됩니다. 이렇다 보니 예술가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죽고 난 후 많은 작품들이 발견되는 예술가들이 심심찮게 있죠? 작품의 발표가 그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혹은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공개를 안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결국 가치 판단의 기준에서 예술가 본인이 가장 중요한 것이죠.
마지막으로 예술가와 디자이너적 사고의 차이점을 위 정의에서 또 하나 찾자면, 디자이너적 사고에서는 ‘훌륭히 만드는' 것의 객관적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 반면, 예술가적 사고에서는 객관적인 가치 판단의 기준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디자이너에게 이 기준은 바로 '사람들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명의 디자이너가 컵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원하는 컵을 더 훌륭히 만든 디자이너의 것은 많이 선택되어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디자이너의 컵은 외면받을 겁니다. 더 많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많은 사람의 니즈(Needs = 요구)를 더 잘 파악해서 훌륭히 구현했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은 그에 실패했다는 것이죠. 따라서 어느 것이 어느 것 보다 더 낫다 라고 하는 가치 판단 기준이 ‘사람들의 선택’으로 어느 정도 객관화가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디자이너의 결과물이 ‘전달’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요.
반대로 예술가의 작품은 대중의 선택보다는 예술가 본인 기준에 충족되고 본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표현해 냈으면 그것으로 '스스로 가치 인정' 인 경향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만든 작품들 사이에서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낫고 못하다고 판단할 수는 있겠지만 이 작가의 작품이 저 작가의 작품보다 낫다 라고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은 사실 애초에 존재 불가능합니다. 뭐 미술 시장 사이에선 가격이 그러한 것을 나타내고 있긴 하지만 예술가적 사고를 원론적으로 보자면 불가능한 거죠. A 라는 예술가가 A 를 표현했고 B 라는 예술가가 B 를 표현했는데 서로 다를지언정 어느 것이 어느 것 보다 우수하다고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예술가 본인들은 알 수도 있겠지만요.
이렇게 디자이너적 사고와 예술가적 사고가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떤 면이 비슷한지에 대해 나름의 정의를 통해 정리해 봤습니다. 이 모든 차이는 결국 디자인과 예술 각각의 행위가 목적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달려있습니다. '나를 위한, 나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것'인가 '세상을 위한, 사람들의 요구(니즈)를 바탕으로 한 것'인가로 크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럼 디자이너적 사고와 예술가적 사고를 혼동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예를 한 번 들어 보겠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대중을 위한 제품을 디자인하는데 자기의 미적 기준을 고집하여 '난 분홍색이 좋으니까 분홍색을 써야겠어' 라든지 '난 가는 글씨체가 좋으니까 가는 걸 쓰겠어' 라고 생각하면, 이는 디자인적 사고에서 멀어지는 꼴입니다. 본인을 위한 것이 되는 거죠. 나의 취향이 제품의 사용자 집단과 우연히 맞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을 수 있고, 그럼 바로 소비자들은 외면하게 될 겁니다. '이 제품을 쓸 주요 사용자가 20대 수도권 여성인데 그들 중 65%가 분홍색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으니 분홍색을 써야겠어.' 라든지 '요즘에는 가는 글씨체가 유행이지만 이 제품은 매대 위에서 경쟁이 심해 멀리서도 잘 보이게끔 매우 굵은 글씨를 쓰는 것이 맞겠어.' 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가 기준이 아닌 '사람들을 생각하는' 디자이너적 사고에 가까운 것이죠. 여기에 본인의 미적 취향이 아닌, 자기만의 표현 방법과 능력을 더할 수 있을 겁니다. '분홍색 중에서 채도가 낮은 분홍색이 더 고급 제품에서 사용되는 것을 많이 봐 왔고, 제품의 사이즈가 크니 다소 옅은 색으로 가는 것이 시각적으로 부담이 없을 거야' 라거나 '다양한 굵은 글씨체 중 남들이 아직 이 제품군에서 시도하지 않은 빈티지 스타일의 글씨체가 눈에 띌 것 같은데, 굵은 글씨체를 전부 출력해서 실제로 그러한지 봐야겠다' 라는 등 사람들을 고려하는 사고방식에 자신만이 가진 표현 무기를 더하는 것이 더 나은 디자인을 구현하는 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대로 예술을 목적한다면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나만의 생각이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현실에 구현할 것인가 하는 것 등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이렇게 그리면 사람들이 너무 기괴하다고 하려나'. '요새 이런 스타일 그림이 좀 잘 나가던데' 와 같이 세상 다른 이들의 생각을 신경 쓰는 과정에서 예술과 멀어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이도 저도 아니게 되거나 누군가의 아류로 불릴 수 있는 거죠. 아직 훈련 중인 과정이지만 미대생의 경우도 '이렇게 그리면 너무 올드한가', '교수님이 이런 스타일 안 좋아하시는데' 등의 생각을 가지면 점점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타날 수 있겠죠. 내 머리 속의 그 두리뭉실한 이미지와 느낌을 어떻게 확연하게 표현해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예술을 목적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투자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초중고 때도 마찬가지로 미술 수업 시간에 미술 도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끔 하는 표현 기법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기의 생각이 무엇이고 무엇을 왜 표현해보고 싶은지, 그것을 어떤 재료로 어떻게 표현해야 효과적인지 등을 고민하는 시간도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여담이지만, 미술 시장에서는 갤러리가 어느 정도 작품의 가이드를 작가와 같이 만들며 소위 프로듀싱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론적으로 작가의 생각이 독창적이고 표현이 훌륭하지 않으면 아무리 갤러리가 노력해도 작품엔 한계가 생길 겁니다.
내 생각을 표현하든, 세상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든 결국 생각이라는 무형의 것을 물질로써 표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표현의 결과물을 보고 디자인인지 예술인지 혼동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을 만든 사고방식과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면 그것이 디자인적 사고였는지 예술적 사고였는지 큰 그림에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대에는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 대한 도전과 재정의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어서 제가 언급한 이러한 구분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하면서 왜 작품이 내 마음대로 나오지 않을까, 혹은 디자이너인데 왜 내 결과물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까를 고민하는 지인들과 이야기를 여러 차례 목격하며 근본적으로 어떠한 사고 체계가 이러한 갈등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의견을 한 번 적어보고자 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올리고 다양한 관점의 비평이 있었는데요 그러한 의견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그분들의 피드백을 숙고하여 한 번 글을 수정하였습니다. 저는 이분법적 사고를 좋아하지 않으며 제 글들의 원론적인 목적은 화합입니다. 황희 정승의 일화처럼 말이죠. 저의 글이 전문가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는 온라인 상의 글이라, 길이나 한 번에 펼 수 있는 논리의 한계가 있다 보니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칫 부족함이 있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예술을 정의할 수 있는가,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과연 존재하는가, 사회 정치 예술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등 이 글의 주제를 제대로 논의하자면 서두에서 말씀드린 대로 대학 한 학기 강의가 모자랄 텐데 그러한 논의의 한 꼭지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만, 내가 지금 디자인 혹은 예술을 목적하고 있다면 위의 정의에 비춰 '내가 디자이너적 사고로 접근하고 있는가, 예술가적 사고로 접근하고 있는가' 는 고민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스스로를 디자이너로 생각하지만 예술가적 사고를 하며 왜 내 디자인이 인정받지 못할까, 혹은 스스로 예술가라 생각하면서 남의 생각을 신경 쓰며 왜 내 작품이 마음에 안 들지를 고민하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또, 스스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 다른 방식의 사고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으며 내가 고집하거나 간과하고 있었던 사고 체계가 무엇이었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