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의 캐릭터와 기획사의 전략이 시너지를 내는 방법
지난 '아이돌을 육성하는 제조업 전략' 이라는 글에서 아이돌 가수 육성에 얼마나 제조업의 Design Thinking 전략이 유효하게, 그리고 치밀하게 적용되어 있는지 적어 보았었는데요, 오늘은 이 전략에 따른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볼까 합니다. 아이돌은 사람이고 가수인데 '제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적용 가능한 새로운 전략 모델은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은 이전 포스트 '아이돌을 육성하는 제조업 전략' 글의 연장선입니다. 먼저 이전 글을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아이돌 육성은 최근 제조업에서 각광받는 비즈니스 전략인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Design Thinking 전략을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지금까지 제조업은 원가 절감, 생산성 증가, 효율적인 마케팅 등 내부 역량을 바탕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상품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소비자가 원하는 것(니즈, Needs)을 파악하여 신제품을 기획하여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전략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 Design Thinking 전략입니다. 그 과정은 크게 다음의 다섯 순서 정도로 정리할 수 있고 아이돌 육성은 이를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생각됩니다.
1) Empathize 공감
- 특정 사용자 타깃 군을 정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사하고 연구하여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
: EXO의 경우, 10대 소녀를 타겟으로 반항, 강함, 시크, 속은 따듯, 섹시한 오빠 등의 니즈 파악
2) Define 방향성 정의
- 타겟 소비자의 니즈를 바탕으로 통찰을 활용하여 신제품 및 서비스의 방향성을 정의
: EXO의 경우, 학교에 한 명 있을 법한 성숙하고 멋진 오빠 - '어른 오빠' 같은 방향성 정의
3) Ideate 아이디어 도출
- 개발 방향성을 바탕으로 아이디어 발산 방법 등을 활용하여 많은 아이디어 솔루션 도출
: 소녀시대의 경우 예쁨의 방향성을 얼굴, 몸매, 센스, 음성, 교양, 품위, 말투, 행동 등으로 다양화
4) Prototype 프로토타입(원형)
-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발전시켜 하나 또는 몇 가지의 프로토타입을 제작
: 소녀시대의 경우 여러 방면의 총체적 예쁨을 완성하기 위해 '그룹'이라는 프로토타입을 사용
5) Test 실험
- 이렇게 만들어진 프로토타입들을 처음 목적했던 사용자 군에 소개하고 테스트
: 티저 영상, 티저 음악, 데뷔 과정 TV 프로그램 등으로 정식 오픈 전 테스트 활성화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이돌 가수들은 대중이 원하는 니즈, 특히 아직 충족되지 못한 미충족 니즈를 파악하고 적용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엔터테이너로 육성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의 아이돌 문화를 만든 SM엔터테인먼트는 이러한 제조업의 전략을 직관적으로든 의도적으로든 치밀하고 훌륭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렇게 소비자를 중심에 놓은 전략 덕분에 아이돌들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죠. 대중을 대상으로 한 시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전략이 있을까요. 하지만 또 이것이 정답일까요.
문제는 바로 같은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상품 제조업이 아닌데 상품 제조업의 비즈니스 전략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 -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제품이 아니라 가수라는 사람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제조업의 Design Thinking 전략은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여 이것을 소비자에게 '제품으로 제공한다' 는 사실을 기본으로 합니다. 충족되지 않은 미충족 니즈를 가진 소비자가 이를 충족시켜주는 상품을 사서 사용하면 그 니즈가 충족되며 만족하고 니즈는 해소되죠. 상품을 생산하는 제조업이니 당연한 이야기일까요.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당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비즈니스 전략을 사용하여 창조하는 결과물이 가수 - 즉,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팔 수는 없는 일이죠. 미충족 니즈를 충족시키는 훌륭한 가수(상품)를 만들었지만, 이 가수 자체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가수의 노래와 영상, 이미지 등을 판매합니다. 거칠게 제품으로 비유하자면 제품을 만들어 놓고 제품 자체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의 영상, 제품의 사진 등 제품을 느낄 수 있는 이미지(감각)만을 판매하고 있는 겁니다. 이는 마치 마셔도 마셔도 가시지 않는 갈증 같아서 자칫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 이미지를 소비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원하게 만듭니다.
제가 방금 엔터테인먼트사가 만드는 것이 가수 - 사람이라고 말씀드린 것에 혹시 위화감을 느끼지는 않으셨나요. 당연하다 느끼셨다면 이미 아이돌을 키우는 엔터테인먼트사가 음악이 아니라 엔터테이너를 키운다는 사실에 익숙하신 분이실 것이고, '사람이 아니라 노래 만드는데 아냐?' 라고 생각하셨으면 어쩌면 위화감을 느끼셨을 수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엔터테인먼트사는 지금 음악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명백히 가수를, 더 넓은 범위에서는 엔터테이너를 만들고 있습니다. 음악 자체를 이러한 전략으로 만들었다면 음악을 판매해서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면 되었겠죠. 하지만 음악보다 우선하여 엔터테이너를 만들기 때문에 상품이 음악이 아니라 엔터테이너 - 사람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엔터테이너를 육성해야 가수든, 연기든, CF든, 화보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고 비즈니스 수익 모델이 다양화되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신중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엔터테이너들의 가장 좋은 이미지 메이킹 및 미디어 노출, 비즈니스 수익 모델이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아, 저는 이를 잘못되었다 가치 판단하려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전략은 엔터테이너를 대중문화 필드에 오랫동안 살아있을 수 있게 만들고 국제적인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기도 하니까요.
이는 음악을 만드는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는 아주 다른 방향의 전략입니다. 아주 대중적이면서도 음악을 위주로 만드는 기획사는 유희열의 안테나뮤직이나 윤종신의 미스틱엔터테인먼트 등이 있을 텐데요, 이런 기획사에서 기획하는 것은 가수 자체보다 음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테나뮤직에는 유희열, 정재형, 루시드폴, 샘김, 권진아, 이진아, 정승환 (K팝스타 출신들이 많죠. 앞으로 기대해 봅니다) 등이 있고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는 윤종신, 김연우, 조규찬, 하림, 조정치, 김예림, 박지윤 등이 있습니다. 대부분 솔로 가수로서 음악에 대해 진지하고 자기의 색깔이 꽤나 강한 가수들이죠. 물론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수 있지만, 이런 기획사에서 나오는 가수들은 대부분 자신의 음악적 캐릭터가 분명한 솔로 가수들이고 가창력이나 음악성 논란에 휩싸이거나, 자신의 이미지를 판매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가수들의 이미지도 음악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고, 행동이나 연기, CF 등 다른 요소를 통해 만든 후 음악을 거기에 맞춰서 하고 있지 않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아이돌의 엔터테이너 만들기 전략과는 그 방향성이 다르죠.
예를 들어, 소녀시대가 추구하는 '기대 이상의 예쁨', 한 명의 인간으로는 달성할 수 없어 그룹으로 완성하는 '여신'의 이미지 등 궁극적으로 실재할 수 없는 소비자의 미충족 니즈를 전략적으로 잘 충족시키는 결과물 - 엔터테이너 - 가 눈 앞에 있는데 그것을 구매해서 가질 수는 없고, 영상과 사운드, 이미지만 보고 있다면 어떨까요? 비유하자면, 단맛이 전혀 없는 이유식만 먹고 산 아기가 처음 초콜릿 맛을 본 후 초콜릿을 눈 앞에 둔 채 냄새만 맡고 생김새만 보고, 초콜릿과 똑같이 생긴 플라스틱 장난감만 가지고 놀게 한다면? 차라리 눈 앞에 없느니만 못하게 떼를 쓰고 난리가 날 겁니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이 니즈가 절실하고 강한 일부 소비자들은 이것을 어떻게든 가져야겠다 어떻게든 사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집착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상품은 가수이지만 판매하는 것은 가수가 아닌 상황 – 상품 제조업과는 다른 이 상황에서 잠재적으로 발생하는 첫 번째 문제가 그래서 ‘사생팬’ 입니다. 사생팬은 간단히 말해서 자신의 미충족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한 본래 상품인 가수를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직 전전두엽이 완전히 성숙하지 않아 자신에 대한 컨트롤이 부족한 10대나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의 경우 연예인에게 직접 달려든다든지 다른 팬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절실한 니즈의 미충족 상황이 지속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죠.
밥을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진짜 밥(가수)을 먹어야 하는데 밥 같은 것(가수의 이미지, 음악, 영상 등)만 먹고 있으니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이 심해지면 병적인 집착으로 진행되기도 합니다. 가끔 들리는 사생팬들의 기상천외한 일화들이 이러한 것을 보여주죠.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훌륭히 구현하는 성공하는 제조업의 비즈니스 전략을 차용하는 것은 좋았으나, 정작 그 상품(가수) 자체가 아니라 상품의 이미지만을 판매할 수밖에 없는 연예 비즈니스의 특성상 발생하는 필연적인 잠재 문제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생팬이 나이가 들거나 다른 경험을 통해 니즈가 없어지지 않는 한 지속될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새로운 인생의 국면을 맞이하거나 연애(?) 등을 통해 자신의 니즈가 충족되면 더 이상 사생팬이 아니게 되겠죠.
또 하나의 문제점 역시 상품이 가수라는 인간이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물질 상품은 모양을 어떻게 만들든 얼마나 무리하게 작동하게 만들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각자 타고난 태생적 캐릭터가 있기 때문에 가수로써의 역할 이미지와 본인의 기질이 상충할 경우 트러블이 발생하게 되거나 뒷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제갈량의 이미지를 좋아한다고 장비한테 제갈량의 역할을 시키는 격이지요. 예를 들어 성격이 털털하고 크게 웃고 떠드는 것을 좋아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이 유리상자 속의 보석처럼 고고하게 책 읽으며 미소 짓는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면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이 있겠습니까. 반대로 성격이 조용하고 세심한데 거친 반항아 이미지의 아이돌을 해야 한다면 그것도 고역일 겁니다. 무생물인 상품을 만드는 Design Thinking 전략으로 가수 기획을 접근하면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아이돌 가수가 자신의 롤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괴로운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적인 니즈는 말 그대로 ‘이상적’일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여신'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걸그룹 멤버는 이 이미지에 적합하기 위해 모든 면에서 예뻐져야 합니다. 외모부터 성격, 말투, 행동, 목소리까지 모두 예쁘게 보여야 합니다. 최소한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상황에서라도 말이죠. 대중을 위해 착한 아이 코스프레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연기한다고 해서 24시간을 그렇게 지낼 수는 없기 때문에 파파라치 등에 의한 연예인의 실제 모습 – 뒷이야기가 노출되게 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합니다. 평소에 완벽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예쁘고 착한, 또는 댄디하고 신사적인 이미지를 확고히 구축해놨을수록 반대의 사건이 터지면 걷잡을 수 없이 크게 구설수에 오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한 기획사 입장에서는 가수들을 이러한 이상적 이미지로 계속 노출시켜야 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통제 및 교육, 스케줄 등을 할 수밖에 없고 가수 역할과 본인 캐릭터가 서로 성격이 비슷하면 다행이지만 차이가 큰 경우 가수들이 큰 부담감을 느낄 가능성도 잠재합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지만 한 마디 첨언하자면 이러한 Design Thinking 상품 비즈니스 전략은 기본적으로 생산자와 상품을 상하관계로 구분하는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생산자'가'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생산자가 주체가 되어 그 권위가 객체인 상품보다 높고 상품은 생산자의 소속으로써 분석과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제조업에서는 상품이 무생물이기 때문에 분석하고 변형하고 개선하는 것이 아무 상관없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상품이 사람이기 때문에 문제가 달라지는 거죠. 사람과 제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는 전혀 다르게 이해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러한 철학을 가졌던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개념 이야기라 약간 어렵지만 편하게 읽어주세요.^^
혹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오리엔탈리즘은 서양 사람들이 '서양의 문화 기준'으로 본 특이한 동양(정확히는 중동) 문화를 기술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대로 기술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판단의 주체인 서양 사람과 서양 문화가 더 우수하고 우위인 상황이라는 것을 가정하는 관점입니다. 동양(중동)의 문화를 마치 실험실의 실험 대상처럼 관찰하고 분석하여 평가하는 것이죠. 이는 다분히 지배와 피지배라는 권력관계를 바탕으로, 애초에 자아와 타자를 동등하게 놓고 타자의 입장을 이해하려 하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타자를 분석과 관찰을 통한 계몽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이 대상이 사물일 때는 아무 관계가 없으나 이성을 가진 사람인 경우 반발이나 저항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죠.
한 편으로는, 소속 가수가 기획사의 전략대로 행동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같은 배를 탄 입장이니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기획사의 경우 아티스트로 인정하는 소속 가수들이 서로 자신의 음악적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기획사와 상의하고 종합하여 최고의 음악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기획이 진행됩니다. 자신의 캐릭터와 실력을 명확한 가수들이 각자 자기의 독자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소속사와 가수가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죠. 하지만 위의 전략대로 육성된 아이돌 가수들은 이러한 관계라기보다 기획사의 전략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끔 과도한 스케줄로 생방송 중 울음을 터뜨리거나 심지어 쓰러지고, 철저하게 제한된 식비나 숙소 생활, 1위 될 때까지 핸드폰 압수, 연애 금지 등의 일화들이 토크쇼나 버라이어티쇼 등에 은근히 자주 등장하죠. 극단적으로 노예 계약이니 불공정 계약이니 하는 이슈들이 뉴스에 나오기도 합니다. 결국 가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고려보다 대중의 니즈에 너무 초점을 맞춰서 엔터테이너(가수)를 기획하다 보면 이러한 갈등이 발생할 수 있고, 탈퇴나 독립에의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제조업 비즈니스 전략인 Design Thinking 을 활용하여 아이돌 가수들을 육성할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정리해 봤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고 더 발전된 기획을 하기 위한 방법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제조업이 아닌 분야에서 제조업의 전략을 사용하여 사람이 생산품이 되는 현상에서 발생하니 그 부분을 숙고해 보면 어떨까요.
먼저 기획하는 상품을 가수나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음악으로 하는 솔루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정확한 타겟과 그들의 니즈를 이해한 후 이를 가수가 아니라 음악에 적용하는 것이죠. 물론 지금도 열심히 그렇게 음악을 작사 작곡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도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EXO에서 느껴지는 10대 소녀들의 니즈인, '나보다 한 두 살 많지만 왠지 어른으로 느껴지는 믿음직하고 섹시한 오빠' 를 가수가 아닌 음악에 초점을 맞춰서 표현한다면?
물론 이렇게 나온 것이 '으르렁' 이나 '중독' 같은 음악이겠지만, 가수와 춤을 같이 보지 않고도 가요 3-4분 내에서 그러한 오빠가 나에게 웃음을 보이는 것 같은 이미지를 느낄 수 있도록 작사 작곡을 한다면 어떤 음악이 가능할까요. 기존의 '뜨는' 가요 작곡 패턴을 일단 차치하더라도 이런 감각을 느끼게 해주기 위한 것만 생각하면 어떤 음악이 탄생할 수 있을까요. 곡 전체가 오빠가 나에게 들려주는 내레이션으로만 되어 있는 노래? 풍성한 화음과 악기를 이용해서 나를 안아주는 것 같은 공간감이 느껴지게 만드는 편곡? 저는 작편곡가가 아니라서 아이디어가 부족하지만 전문가들이 이런 화두에 대해 생각하면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16. 3. 30) 현재 빌보드 1위인 리한나의 'Work' 라는 곡을 링크합니다. 이 곡은 리한나와 드레이크 등의 가수와 음악가가 모여 앉아 떠들고 놀다가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든 곡이라고 하는데요, 팝 음악의 성공 공식과는 다른 그냥 흩뿌리듯 부르는 노래와 극단적으로 단순한 멜로디와 편곡. 이 곡이 리한나를 다시 1위 가수로 만들었습니다.
정리하면, 음악을 엔터테이너의 육성을 위한 2차 생산물이 아닌 메인 상품으로써 대상 타겟의 니즈를 충족시키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사와 가수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만드는 것입니다. 적절한 예시인지는 모르겠지만, 트로트 가수 박현빈이 강심장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샤방샤방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공모했는데 한 고등학생의 가사가 뽑혔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냐 했더니 '실제 반에서 쓰는 잘 나가는 말만 모은 것이다' 라고 했다 합니다. 샤방샤방 아시죠? '아주 그냥 끝내줘요~' '얼굴도 샤방샤방 몸매도 샤방샤방' 같은 가사가 나오는 박현빈의 히트곡입니다. '반에서 잘 나가는 말' 이 곧 위의 Design Thinking 에서 말하는 Empathize 공감 과정의 정수였던 겁니다. 이를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었으니 이 음악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상품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쾌감을 주었죠. 박현빈이라는 가수보다 이 노래를 알고 계신 분이 더 많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물론 단편적인 예시이지만 이렇게 음악을 가수에 종속된, 혹은 가수라는 상품을 위한 2차 생산물이 아니라 독립적인 상품이면서 가수의 이미지와 같은 방향을 가지고 있는 식으로 의도하고 제작하면 음악 자체로도 팬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되면 가수만 바라보고 집착하는 열정이 음악에로 나눠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또 하나의 솔루션은 아티스트형 아이돌을 더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기획이 될 수 있겠습니다. 말하자면, 가수를 기획사 전략의 생산물로 생각하고 일방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가수 자체의 캐릭터와 기획사의 전략 컨셉의 방향성을 맞추며 시너지를 내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제조업 Design Thinking 방식의 아이돌 육성은 타겟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여 이를 기획사에서 만들어 주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기서 각 아이돌 가수들의 성격이나 특징 등 캐릭터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소비자 타겟 A 를 대상으로 A 아이돌 그룹으로 활동하는 가수가 사실 성격이 완전 F 쪽이라면 활동하면서 계속 트러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각 가수들의 캐릭터와 타겟, 니즈, 그룹 컨셉이 모두 한 방향을 보고 있어야 엄청난 시너지가 나며 다른 아이돌들이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갖추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이를 '아티스트형 아이돌'이라고 부르죠.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이나 퍼포먼스의 방향성을 명확히 가지고 있고 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실력도 있으면서, 그것을 기획사에서 대중적으로 어필시켜 많은 인기를 얻을 수 있는 방식입니다. 물론 어려움은 있습니다. 아티스트형 가수들은 자기주장이 확실하기 때문에 기획사의 전략 방향과 트러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같은 방향으로 시너지를 맞춘다면 가수도 대중도 기획사도 만족하는 놀라운 아티스트형 아이돌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아이돌 스스로에서 시작됐든 기획사에서 처음부터 이러한 기획으로 거기에 걸맞는 인재를 영입해서 구성했든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음은 확실하다 생각합니다.
아티스트형 아이돌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이름이 나오는 그룹은 역시 빅뱅일 겁니다. 가수들의 캐릭터를 그대로 살리면서 기획사가 이를 대중적으로 어필하게 만드는 시너지의 방향성은 이들을 아티스트형 아이돌이라는 칭호를 붙이게 해주었죠. 논란은 많았지만 지드래곤의 경우, 아예 미술 아티스트들과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아티스트 마케팅의 대표 아이돌이죠. 단, 빅뱅은 가수들의 창의성과 창작에 손을 더 많이 들어주고 이렇게 만들어진 독창적인 음악을 기획사의 기가 막힌 전략과 전술로 대중에게 '이게 핫한 음악이야' 라고 인식시키는 방식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끔 '이게 대체 무슨 음악이지, 대중가요 맞나' 싶은 음악들도 나온다고 보고요. 또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티스트형 아이돌로 느껴지는 차세대 가수들은 B1A4, B.A.P, 그리고 블락비, 특히 지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그룹들은 다 스스로 음악 프로듀싱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자기 색이 있는 보컬과 래퍼, 퍼포머가 있고 기획사의 전략과 발을 맞춰 독자적인 음악을 발표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네요. 사실 걸그룹은 아티스트형 아이돌을 찾기가 참 힘든데요, 요새 눈에 띄는 그룹으로는 마마무가 있습니다. 각 멤버가 자기의 캐릭터를 활발하고 즐겁게 드러내면서 놀라운 수준의 음악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서서히 이를 좋아하는 타겟층에 어필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렇게 예를 든 아이돌 그룹들은 하지만 아이돌 가수들의 캐릭터가 강하고 기획사가 이를 마케팅 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기본 형태라 대중 음악계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하나의 강력한 캐릭터를 가질 수는 있지만 아주 넓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국민 아이돌이 되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습니다. 소위 이 '국민 아이돌'은 제가 마지막에 언급한 방식대로 기획사가 소비자의 니즈를 철저하게 파악하고 이해한 후 그 방향성에 맞는 캐릭터를 가진 가수와 함께 그 가수 자체의 실력 및 캐릭터 파워와 기획사의 철저한 전략이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때에 가능한데요, 사실 그런 시너지를 냈던 가수가 근래에 딱 한 명 있습니다. 누굴까요.
바로 아이유 입니다. 2000년 전후만 해도 엄정화, 이정현, 박지윤, 장나라, 이수영, 보아 등 여성 솔로 가수가 가요계를 점령하다시피 했지만 이효리를 마지막으로 이렇다 할 여성 솔로 가수가 새로 등장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2011년 시작과 함께 '나는요 오빠가 좋은걸' 이라는 가사와 3단 고음으로 온 가요계를 뒤흔든 신예 아이유가 나타났습니다. 성인의 깊이와 실력을 가진 너무나 어리고 귀여운 아가씨라니. 모두가 놀랄만했습니다. 귀여움 넘치는 아이에서 오빠를 좋아하는 수줍은 여학생으로, 미래의 남자친구를 공상하는 소녀로, 세대를 아우르는 빈티지 스타일로, 옛 노래를 리메이크한 성숙함으로, 그리고 성인이 되어가는 딜레마를 가진 23살 여자로 아이유는 자신의 캐릭터를 숨기지 않고 나타내며 기획사는 이를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어필하게 도와주고 미디어에 노출시켰습니다. 물론 아이유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다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캐릭터와 실력, 음악적 성향과 함께 기획사에서는 그녀의 캐릭터를 원하는 타겟을 잘 잡고 이를 충실히 구현 해내 주고 있죠. 기획사와 가수가 시너지를 내며 이 밸런스를 기가 막히게 맞추고 있는지라 이 밸런스가 약간만 흔들려도 인기가 요동을 칠 수 있지만, (이제 '소녀'가 사라지고 '여성'이 되며 그 밸런스가 흔들렸던 캣셔 앨범의 경우 말이죠) 워낙 음악적인 탄탄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시 자리를 잡고 롱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획사의 Design Thinking 적 전략과 가수의 실력과 캐릭터가 서로 맞물려 같은 방향을 보고 시너지를 내는 순간 이렇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거죠. 이러한 방향성이 제조업의 Design Thinking 전략을 넘어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Entertainer-friendly Design Thinking 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Design Thinking 은 더 많은 대중의 선택과 사랑을 받기 위한 매우 훌륭한 전략으로 평가받기 때문에 대중문화 필드에서 이 보다 더 좋은 전략도 찾기 힘들다 생각됩니다. 그래서 많은 기획사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한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많은 성공을 거두고 있죠. 이제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지금까지의 문제를 보완하고 개선하는 엔터테인먼트계 만의 전략 방향을 고민하면 지금까지 없었던 수준의 새로운 가수와 성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한국은 그러한 전략에 매우 적합한 여러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돌 가수들이나 기획사, 그리고 대중이 모두 웃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산업만의 비즈니스 전략이 등장하길 기대해 봅니다.
원래 비즈니스 전략 면에서 본 아이돌 가수 육성의 내용으로 간단한 글을 작성하려 했는데 정말 이렇게나 길어질 줄 몰랐습니다. 심지어 아이유를 언급하면서는 내용이 너무 길어져 '아이유의 성공 공식과 비즈니스 전략 면에서 본 미래 방향성' 의 내용으로 글을 하나 따로 쓰려고 생각까지 해 놨네요. 아이돌 가수들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지금의 10대 학생들의 사고에 정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나이가 30대 중반임에도 항상 관심이 가고 어떤 트렌드와 감성이 현재의 10대를 지배하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엔터테인먼트 필드가 어떻게 흘러가느냐에 따라 그 문화의 영향을 받는 아이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혼자 그런 생각을 하며 많은 분들의, 특히 관련 분야에 계신 분들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