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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Apr 03. 2016

와인에서 느껴지는 생산자의 마음

생산자의 마음이 느껴졌던 1만 원 대 와인 - 코노수르(Cono Sur)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쓴다 하면 가장 먼저 쓰고 싶은 와인들이 있습니다. 맛이 좋은 와인, 향이 화려한 와인, 높은 평가를 받는 와인들도 좋지만 저는 와인 생산자의 좋은 마음이 느껴지는 와인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습니다. 



손주를 사랑하는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을 드셔 본 적이 있나요? 그 따뜻함과 포근함, 진실된 정성이 느껴지는 한 끼 식사 말입니다. 음식을 먹으면 그 음식에 들어간 마음과 손 맛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바쁘게 조미료를 넣고 빨리빨리 만든 음식은 먹어도 허전하고 날카로운 맛이 나를 때리죠.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은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이든,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이든 그것만이 가질 수 있는 푸근한 맛과 깊은 향이 있기 마련입니다.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맛에서 느껴집니다>



와인에서도 그런 마음이 느껴진다고 하면 너무 과한 표현일까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 것이 느껴지는 와인들이 있어 마시면서도 항상 신기하다고 느낍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요리사라면 와인을 만드는 사람은 와인 생산자 (와인 메이커) 입니다. 그 와인 생산자의 철학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한 병의 와인이 완성되는 것이죠. 방부제와 인위적으로 맛과 향을 내는 기법들을 사용하여 빠르게 출하하는 와인들은 마시면서도 가끔 와인의 자세가 흐트러져있다(=다양한 맛과 향이 통일성 없이 산만하게 흩어져있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신기하게 이러한 좋은 마음이 느껴지면서도 '모두를 위한 와인'의 컨셉에 맞는 아주 저렴한 와인이 있어 리뷰하려 합니다. 바로 칠레 와인, 코노수르 (Cono sur) 입니다.


<오늘 말씀드린 메인 와인, 코노 수르>




I  우리나라의 칠레 와인 사랑

우리나라는 칠레 와인의 인기가 매우 좋은 편에 속합니다. 생산량으로 따지자면 칠레는 세계 약 9위 정도를 차지하지만 (2015년에는 6위로 뛰어올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 면에서 프랑스 다음으로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복잡 미묘한 프랑스의 와인과 비교하여 맛과 향이 간결하고 강렬하며 직설적인 스타일 때문에 와인 입문자에게 추천되기도 하고, 한국인의 성격과도 맞는다고 생각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칠레 와인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데요, 마트에 가도 칠레 와인을 손쉽게 볼 수 있고 1만 원 대의 와인들은 상당 부분 칠레 와인이 차지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2010~2014의 세계 와인 생산량. 칠레는 9위 였네요>


1만 원 대, 특히 1만 원 초중반의 칠레 와인들은 엇비슷한 맛과 방향성, 언제나 마시기 좋은 쉽고 명료한 맛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좋게 말하면 물처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고, 반대로 말하면 뭔가 밀도가 덜한 부담 없는 맛이라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럼 먼저 살짝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1만 원 초중반 대 칠레 와인들을 리스트업 해볼까요? 마트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I  대중적인 1만 원 대 칠레 와인

그 유명한 1865를 만드는 산페드로(San pedro) 사의 대중 와인 - 고양이가 그려져 있어 라벨이 눈에 띄는 가토 네그로(Gato Negro - 검은 고양이라는 뜻입니다)와 본 와인이 생산되는 남위 35도를 의미한다는 35도 사우스(35º South).

<왼쪽이 35º South, 오른쪽이 Gato Negro>



칠레 최고의 와인 중 하나로 평가받는 알마비바(Almaviva)와 돈멜쵸(Don melchor)를 만드는 콘차이 토로(Concha y Toro)사의 대중 와인 - 프론테라(Frontera)와 선라이즈(Sunrise)


<왼쪽이 프론테라, 오른쪽이 선라이즈>


그리고 마트에 가면 항상 보이는 여성의 얼굴 그림이 그려진 (메두사 아니에요) 산타 헬레나(Santa helena) 사의 대중 와인 산타 헬레나 버라이어탈(Vairaltal - 주로 하나의 포도 품종으로 만들었다는 뜻), 부드러운 와인으로 유명한 산타 리타(Santa Rita) 의 120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둘 다 산타로 시작하네요.


<왼쪽이 산타 헬레나 버라이어탈, 오른쪽이 산타리타 120 시리즈>


이 외에도 많은 1만 원 대 칠레 와인들이 있습니다. 일단 그중에서 가능하면 1만 원 대 초중반이면서 경험 상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와인 위주로 리스트업 해 봤는데요, 모두 가격 대비 훌륭한 맛을 보여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에 소개된 와인들은 다들 칠레 Top 5 혹은 Top 10 와인 브랜드에서 생산하는 대중 라인의 와인들이거든요. 제가 지난 글에서, 1만 원 대 와인은 마치 맥도널드 같아서 대부분 맛을 보면 '음~ 가격치고 훌륭하네. 딱히 모난 맛도 없고 그렇다고 놀라운 맛도 아니고, 적절히 누구나 먹으면 다 맛있다고 하겠다'라고 느낀다고 했었는데요 딱 그런 맛과 향이 납니다. 어떤 것을 골라도 맛의 방향성이나 퀄리티가 크게 차이 나지 않고 무난하게 만족할 수 있어요. 할인 행사를 하면 자주 1만 원 이하로 내려가는 와인들입니다. 실제로 많이 팔리기도 하고요.




I  좋은 마음이 느껴지는 와인

이런 많은 칠레 대중 와인 사이에서 제가 코노수르(Cono sur)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이 글 처음에 언급했던 묘한 '좋은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마시는 분마다 다르게 느끼실 수 있지만 저는 이 와인을 마실 때마다 '아 맞다. 이런 느낌이 있었지' 하며 그 정감을 다시 되새기곤 합니다. 차를 마실 때 물을 급하게 끓이면 물이 '사나워져서' 차의 맛을 죽이고 자연스러운 불에 천천히 끓이면 물이 '달아져' 차 맛을 살린다고도 하는데요, 그런 사나운 맛이 느껴지지 않고 입 안에서 달큰하고 폭신한 과실 맛이 곱게 와 닿는 느낌입니다. 코노수르는 사실 저 위에 두 번째로 소개한 콘차이토로라는 회사가 지분을 100% 가지고 있는 와인 메이커인데요, 생산과 경영은 모두 독립적으로 하고 병입(병에 와인을 담는 과정), 선적, 고객 대응만 같이 한다고 하니 생산자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와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코노수르의 가장 대중적인 라인 - 코노수르 버라이어탈(varietal) 와인들>



이 생산자의 더 높은 급의 와인은 유명한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 21권에도 소개되었었는데요,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와인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1000엔대 초반인가 봅니다. 이 와인은 제가 소개하는 코노수르 보다 높은 급 위인 코노수르 리제르바(Reserva - 숙성을 더 했다는 의미) 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평소에 2만 원 후반에서 3만 원 정도, 할인하면 1만 원 대 후반으로까지도 판매하는 와인입니다. 만화의 대사 말마따나 가격 대비 높은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이 와인은 바로 따서부터 30분, 1시간이 흐르며 변해가는 맛을 느끼는 것도 한 재미입니다.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 21권에 나온 코노수르 리제르바>



제가 오늘 말씀드리려는 주된 와인은 이 생산자의 가장 대중적인 라인의 와인인 '코노수르' 입니다. 코노수르 버라이어탈(Varietal)이라고도 불리는데 버라이어탈은 이런저런 품종을 섞지 않고 하나의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급에 따라 코노 수르 뒤에 설명이 붙는데요, 비슷한 급이면서 바로 아래 급의 코노수르 토코르날(tocornal)부터, 바로 윗급의 코노수르 비시클레타(bicicleta 자전거라는 의미), 코노수르 리제르바(reserva), 코노수르 싱글빈야드(single vineyard 특정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만 썼다는 뜻), 코노수르 20배럴즈(20 barrels 소량 생산만 하는 최상급 와인 라인) 등등 상급 와인들이 라인업 되어 있습니다. 마치 가전 회사에서 생산하는 냉장고가 보급형, 일반형, 고급형, 최고급형 등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하지만 가장 보급(?) 라인인 코노수르 버라이어탈도 충분히 그 힘을 느낄 수 있는 와인입니다. 가격은 1만 원 대 초중반이고 바로 아랫급인 코노수르 토코르날은 1만 원 대 초반, 바로 윗급 비시클레타는 1만 원 대 후반에서 2만 원 대 초반이면 살 수 있습니다. 가능한 인공물 등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와인을 만드는 오가닉 와인도 생산하는 등 와인 제조에 정성을 담으려는 와인 생산자의 마음이 왠지 맛으로도 느껴지는 와인입니다. 이 오가닉 와인 중 하나는 와인 스펙테이터(spectator)라는 저명한 와인 평가지에서 2014년에 세계 최고의 와인 100 의 44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2014 와인 스펙테이터 Top 100 의 44위에 올랐던 Cono sur 오가닉 카베르네 쇼비뇽 - 카르미네르 2011. 이름은 다 모르셔도 됩니다. ^^>



다시 코노 수르 버라이어탈 와인으로 돌아와서, 이 와인은 할인 마트나 샵에서 볼 수 있지만, 제가 위에서 언급한 와인들에 비해 눈에 보이는 빈도 수가 약간 적습니다. 아무래도 생산량 자체의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처음에 언급한 다른 브랜드의 칠레 와인들이 조금 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와인들이라 인지도 측면에서 전면에 전시되어 있는 이유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제가 언급드린 와인도 모두 훌륭한 와인들입니다. 유니클로 같은 와인이라고 할까요. 가격이 저렴해도 제대로 된 원단과 꼼꼼한 바느질, 많은 사람들이 만족할 만한 모양으로 만들 듯, 열심히 작황 한 포도, 내공이 들어간 생산 과정,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맛의 표현 등 만족도는 결코 낮지 않을 겁니다. 


<저렴하지만 훌륭한 유니클로의 퀄리티>


하지만 만약 그 와인들 사이에 코노수르 와인이 있다면 품종 상관없이 한 번 사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일지 모르지만 포도와 와인을 정말 사랑하는 순수한 생산자가 웃음을 머금고 열심히 만든 느낌이 전해져 오거든요. 이 생산자는 정말 착한 성격을 가진 사람일까 궁금해집니다. 아,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전 이 와인과 아무 관계가 없는 한 명의 와인 애호가로서 느꼈던 점을 적은 것이랍니다. 앞으로 위에서 언급한 와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와인들을 리뷰할 예정이니 재밌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로 쓴 글, '와인 맛의 '비밀'을 살짝 밝혀드립니다.' 의 링크를 붙입니다. 와인에서 나는 다양하고 특징있는 맛들과 그 맛을 느껴볼 수 있는 1~2만 원 대의 저렴한 와인들의 소개 글이에요. 그럼 다음 글에서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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