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세포의 시계

텔로미어, 생명의 카운트다운

by 타자


어린 시절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피가 나고 아팠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딱지가 앉고, 일주일쯤 후면 흔적도 없이 나았다. 그런데 같은 상처가 지금은 어떤가. 낫기까지 훨씬 오래 걸리고, 흉터가 남기도 한다.



왜 젊을 때 상처는 빨리 낫고, 나이 들면 느리게 나을까? 답의 일부는 세포 안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세포가 분열할 수 있는 횟수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세포는 몇 번이나 분열할 수 있을까



1961년, 미국의 해부학자 레너드 헤이플릭(Leonard Hayflick)과 폴 무어헤드(Paul Moorhead)는 당시 과학계의 상식을 뒤엎는 발견을 했다.



그때까지 과학자들은 배양 접시에서 세포를 무한히 증식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1912년 노벨상 수상자 알렉시스 카렐은 닭의 심장 세포를 34년간 배양했다고 주장했다(나중에 실험 오류로 밝혀졌지만). 세포는 영원히 분열할 수 있다는 것이 통념이었다.



그러나 헤이플릭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정상적인 인간 세포는 약 50회 분열한 후 더 이상 분열하지 않고 멈췄다. 아무리 영양분을 공급해도,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줘도, 세포는 마치 시계가 멈춘 것처럼 정지했다.



이것이 '헤이플릭 한계(Hayflick Limit)'다. 세포에는 분열 횟수를 세는 카운터가 있고, 정해진 횟수에 도달하면 분열을 멈춘다. 이 발견은 노화가 세포 수준에서 프로그램되어 있음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신발끈 끝의 플라스틱 캡



그렇다면 세포는 어떻게 분열 횟수를 '세는' 걸까? 답은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telomere)'에 있었다.



텔로미어는 신발끈 끝의 플라스틱 캡에 비유된다. 신발끈 끝에 플라스틱이 없으면 끈이 풀어지듯, 텔로미어가 없으면 염색체가 손상된다. 텔로미어는 유전 정보를 담고 있지 않지만, 유전 정보를 보호하는 완충 역할을 한다.



문제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조금씩 짧아진다는 것이다. DNA 복제 과정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염색체의 맨 끝부분은 완전히 복제되지 않는다. 매번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는 조금씩 닳는다.



텔로미어가 임계점 이하로 짧아지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는다. 이것이 헤이플릭 한계의 분자적 메커니즘이다. 텔로미어는 세포의 분열 횟수를 세는 시계이자, 노화의 분자적 서명이다.



노벨상을 안긴 발견



텔로미어 연구의 핵심 돌파구는 세 명의 과학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엘리자베스 블랙번(Elizabeth Blackburn), 캐롤 그라이더(Carol Greider), 잭 쇼스탁(Jack Szostak). 이들은 200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블랙번과 그라이더는 '텔로머레이스(telomerase)'라는 효소를 발견했다. 이 효소는 텔로미어를 다시 늘릴 수 있다. 말하자면, 닳아가는 신발끈 캡을 다시 코팅해주는 효소다.



여기서 흥미로운 역설이 등장한다. 텔로머레이스는 대부분의 성인 세포에서는 거의 활성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짧아지고, 결국 분열을 멈춘다. 그러나 두 종류의 세포에서는 텔로머레이스가 활발하게 작동한다.



첫째는 줄기세포다. 줄기세포는 지속적으로 분열하여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야 하므로, 텔로머레이스가 활성화되어 텔로미어를 유지한다.



둘째는 암세포다. 암세포가 무한히 증식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가 바로 텔로머레이스다. 대부분의 암세포는 텔로머레이스를 재활성화시켜 텔로미어 단축을 피한다. 영생을 얻은 셈이지만, 그 대가로 신체 전체를 파괴한다.



이 역설은 의미심장하다. 세포의 불멸은 가능하지만, 그것은 조직과 개체의 죽음과 맞바꿈으로만 얻어진다.



텔로미어 길이와 건강



연구들은 텔로미어 길이가 건강과 수명의 지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같은 나이라도 텔로미어가 긴 사람이 대체로 더 건강하고 오래 산다. 텔로미어 길이는 생물학적 나이의 한 가지 척도다.



흥미롭게도, 텔로미어 길이는 유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생활습관의 영향을 받는다. 만성 스트레스, 흡연, 비만, 수면 부족은 텔로미어 단축을 가속화한다. 반대로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단, 명상, 사회적 연결은 텔로미어 단축을 늦출 수 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엘리사 에펠(Elissa Epel)과 블랙번의 공동 연구는 만성 스트레스와 텔로미어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장기간 아픈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들은 같은 나이의 다른 여성들보다 텔로미어가 현저히 짧았다. 스트레스가 세포 수준에서 노화를 가속화한다는 분자적 증거였다.



필름에도 끝이 있다



영화를 촬영하던 시절, 카메라에는 필름이 들어 있었다. 필름의 길이는 유한했다. 촬영 중 필름이 다 떨어지면 새 필름을 장전해야 했다. 이 물리적 한계가 촬영의 리듬을 만들었고, 감독과 배우에게 긴장감을 주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이 한계는 사라졌다. 메모리 카드는 거의 무한히 촬영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감독들은 이것이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계가 없으면 집중이 흐려지고, 매 순간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진다.



텔로미어라는 세포의 필름도 비슷하다. 무한히 분열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은 암이라는 형태로만 실현된다. 한계가 있기에 각 분열이 소중하고, 세포는 그 한정된 횟수를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한계가 있기에 소중한 것들



텔로미어의 발견은 노화에 대한 이해를 혁명적으로 바꾸었다.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시계가 있고, 그 시계는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 이것은 우울한 사실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도 있다. 시계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 의미를 갖는다.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각 순간이 소중해진다. 세포가 무한히 분열할 수 있다면, 신체를 돌볼 이유가 있을까? 텔로미어가 닳지 않는다면, 오늘의 선택이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을까?



블랙번과 에펠은 《텔로미어 이펙트(The Telomere Effect)》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텔로미어는 당신의 선택이 세포 수준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우리가 어떻게 먹고, 움직이고,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관계를 맺는지가 세포의 시계에 영향을 미친다.



노화는 피할 수 없다. 텔로미어는 분열할 때마다 짧아진다. 그러나 그 속도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시계를 멈출 수는 없지만,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 동안 어떻게 살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다음 화에서는 노화의 또 다른 메커니즘인 '산화'에 대해 알아본다. 숨 쉬는 것,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어떻게 우리를 늙게 하는지 탐구한다.






참고문헌



Hayflick, L., & Moorhead, P. S. (1961). The serial cultivation of human diploid cell strains. *Experimental Cell Research, 25*(3), 585-621.



Blackburn, E. H., Greider, C. W., & Szostak, J. W. (2006). Telomeres and telomerase: the path from maize, Tetrahymena and yeast to human cancer and aging. *Nature Medicine, 12*(10), 1133-1138.



Blackburn, E. H., & Epel, E. (2017). *The Telomere Effect: A Revolutionary Approach to Living Younger, Healthier, Longer*. Grand Central Publishing.



Epel, E. S., Blackburn, E. H., Lin, J., Dhabhar, F. S., Adler, N. E., Morrow, J. D., & Cawthon, R. M. (2004). Accelerated telomere shortening in response to life stres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1*(49), 17312-17315.



Shay, J. W., & Wright, W. E. (2019). Telomeres and telomerase: three decades of progress. *Nature Reviews Genetics, 20*(5), 299-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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