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가 선택한 불완전한 설계
만약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질문은 인류가 오랫동안 품어온 상상이다. 신화 속 신들은 불멸했고, 연금술사들은 현자의 돌을 찾아 헤맸으며, 현대의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은 노화를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기며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다.
그러나 자연은 불멸을 선택하지 않았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체는 늙고, 죽는다. 왜일까? 자연선택이 그토록 효율적인 메커니즘이라면, 왜 노화와 죽음이라는 '결함'을 제거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의외로 심오하다. 노화는 결함이 아니라 트레이드오프(trade-off)의 결과라는 것이다.
1952년, 영국의 생물학자 피터 메다워(Peter Medawar)는 노벨상 수상 강연에서 혁명적인 통찰을 제시했다. 그는 "자연선택의 힘은 번식 연령 이후에 급격히 약해진다"고 주장했다.
논리는 이렇다. 자연선택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특성을 퍼뜨린다. 그런데 어떤 유전자가 번식을 마친 후에야 해로운 효과를 나타낸다면, 그 유전자는 자연선택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다. 이미 자손을 남긴 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40세 이후에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다고 치자. 야생에서 대부분의 동물은 포식자, 기아, 질병, 사고로 인해 40세까지 살지 못한다. 따라서 이 유전자는 자연선택의 압력을 거의 받지 않는다. 반면, 20세에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번식 전에 개체를 죽이기 때문에 빠르게 도태된다.
결과적으로, 번식 연령 이후에 발현되는 해로운 돌연변이들이 세대를 거쳐 축적된다. 메다워는 이것을 '돌연변이 축적 이론(Mutation Accumulation Theory)'이라 불렀다.
1957년,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는 메다워의 아이디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그는 '길항적 다면발현(Antagonistic Pleiotropy)' 이론을 제안했다.
'다면발현'이란 하나의 유전자가 여러 가지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윌리엄스의 통찰은 이것이었다. 어떤 유전자가 젊을 때는 유리하지만 늙어서는 해로운 효과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면, 자연선택은 이 유전자를 선호할 것이다. 왜냐하면 젊을 때의 이점이 번식 성공에 직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이다.
실제 사례를 보자. 테스토스테론은 젊은 남성에게 근육량 증가, 경쟁력 강화, 번식 성공률 향상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노년에는 전립선암 위험 증가, 심혈관 질환 위험 상승과 연관된다. 젊음의 활력을 주는 바로 그 호르몬이 노년의 질병을 부추기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세포 성장과 관련된 유전자들이다. 젊을 때 왕성한 세포 분열은 성장, 치유, 면역력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같은 메커니즘이 노년에는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 성장을 촉진하는 것과 암을 억제하는 것은 같은 동전의 양면이다.
윌리엄스의 이론은 냉혹한 진실을 드러낸다. 우리가 젊을 때 누리는 많은 것들—에너지, 회복력, 성적 활력—은 노화라는 대가와 함께 온다. 자연은 '당장의 번식'과 '장기적 수명' 사이에서 전자를 선택했다.
1977년, 톰 커크우드(Tom Kirkwood)는 '일회용 체세포 이론(Disposable Soma Theory)'을 제안하며 또 다른 관점을 추가했다. 이 이론의 핵심은 자원 배분이다.
생명체는 한정된 에너지를 세 가지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 기본 대사(생존), 번식, 그리고 신체 유지/보수. 이 세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야 한다.
번식에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면 신체 유지에 쓸 에너지가 줄어든다. 반대로 신체를 완벽하게 유지하려면 번식에 쓸 에너지가 부족해진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번식 쪽으로 기울어진 선택을 한다. 왜냐하면 진화적 관점에서 '성공'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어를 보자. 연어는 산란을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몸을 극한까지 혹사시킨다. 산란 후 며칠 내에 급격히 늙어 죽는다. 모든 에너지를 번식에 쏟아부은 결과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이지만, 모든 생명체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트레이드오프가 일어난다.
그렇다면 노화하지 않는 생명체는 없을까? 있다. 그리고 그 존재는 역설적으로 노화 이론을 뒷받침한다.
바닷가재는 '노화의 무시(negligible senescence)'를 보이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나이가 들어도 생식력이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몸집이 커지면서 더 많은 알을 낳는다. 바닷가재의 세포는 텔로머레이스라는 효소를 지속적으로 생산하여 세포 분열의 한계를 극복한다.
그러나 바닷가재도 영원히 살지는 않는다. 껍데기를 벗는 '탈피'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몸집이 커질수록 탈피의 위험도 커진다. 결국 대부분의 바닷가재는 탈피 중 죽거나 포식자에게 잡힌다. 자연은 노화를 피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수명을 제한한다.
히드라라는 담수 생물은 이론적으로 생물학적 불멸이 가능하다. 줄기세포가 계속 재생되며, 노화의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히드라는 매우 단순한 생명체다. 복잡한 신체 구조, 특수화된 기관, 발달된 뇌를 가진 생명체에서 이러한 전략은 작동하지 않는다.
영화로 돌아와 생각해보자. 영화에 러닝타임이 없다면 어떨까? 이야기가 영원히 계속된다면?
처음에는 좋을 것 같다. 좋아하는 캐릭터와 계속 함께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문제가 보인다. 끝이 없는 이야기에는 긴장이 없다. 위기가 있어도 "어차피 계속되니까"라는 생각이 든다. 선택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언제든 번복할 수 있으니까. 결국 모든 것이 의미를 잃는다.
러닝타임이 있기 때문에 영화는 의미를 갖는다. 한정된 시간 안에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생략할지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이 이야기를 만든다. 긴장과 이완이 생기고, 클라이맥스가 의미를 갖고, 결말이 울림을 준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노화와 죽음이 없다면, 오늘이라는 날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중에 하면 되지"라는 생각 앞에서 어떤 일이 긴급성을 가질 수 있을까? 유한하기 때문에 선택이 의미를 갖고, 관계가 소중해지고, 순간이 빛난다.
진화는 우리에게 완벽한 몸을 주지 않았다. 대신 '지금 여기에서 번식하기에 충분한' 몸을 주었다. 노화는 그 설계의 부산물이자, 어쩌면 필연적인 조건이다.
이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개인으로서 영원히 살고 싶다. 그러나 종(種)으로서 우리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것은 이전 세대가 자원을 다음 세대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세대 교체가 없다면 진화도 없고, 적응도 없고, 우리도 없다.
노화는 삶이 유한하기에 소중해지는 역설의 시작점이다. 끝이 있음을 아는 것, 그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다음 화에서는 세포 수준으로 들어가, 우리 몸 안에서 노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살펴본다. 특히 '텔로미어'라는 세포의 시계에 대해 알아본다.
Medawar, P. B. (1952). *An unsolved problem of biology*. H.K. Lewis.
Williams, G. C. (1957). Pleiotropy, natural selection, and the evolution of senescence. *Evolution, 11*(4), 398-411.
Kirkwood, T. B. (1977). Evolution of ageing. *Nature, 270*(5635), 301-304.
Kirkwood, T. B., & Austad, S. N. (2000). Why do we age? *Nature, 408*(6809), 23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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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tad, S. N. (2009). Comparative biology of aging. *The Journals of Gerontology Series A: Biological Sciences and Medical Sciences, 64*(2), 199-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