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first then what
며칠 전에 LA 공항에서 있던 일입니다. 항공사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보안 검색을 통과한 후에 라운지에 들어가기 위해서 줄을 서 있었어요. 근데 앞에 있는, 나이 지긋하신 일본인 남자분께서 다짜고짜 저를 보더니 "Can you invite my wife as a guest?"라고 묻더군요. 아무 생각 없이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가 그런 질문을 받은 제가 덥석 그 부탁을 들어줄 이유가 없죠. 그래서 싫다고 했습니다.
제가 인식했던 상황은, 그 일본인 신사분을 포함해서 3명의 가족이 뭔가 라운지를 들어가려고 입장권이나 비용 같은 것을 물어보다가 안되니까, 저를 포함한 다른 라운지 입장객에게 요청해서 게스트 자격으로 들어가려고 한다고 생각했고, 그리 정당한 방법도 아니고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풀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서 별생각 없이 부탁을 거절한 거죠.
그런데 제가 거절하자, 세 식구가 뭐라고 뭐라고 의논을 하더니 남편과 딸만 라운지를 들어가고, 부인은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서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저는, 얼른 그 부녀를 불러서 게스트 초대를 해 주겠다고 제안했고, 이미 엘리베이터에 탑승해있던 부인을 딸이 부랴 부랴 뛰어가서 다시 모시고 와서 함께 입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그 남자분께서 저에게 상황 설명을 제대로 하고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저도 흔쾌히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즉, 본인들의 라운지 입장 가능한 카드로는 두 명밖에 안되는데 우리가 세 식구이니, 혹시 혼자서 라운지에 입장을 할 것이라면, 미안하지만 제 라운지 카드로 부인을 게스트로 입장을 해 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겠냐고요. 근데 그런 설명 없이 다짜고짜 제게 호의를 요청하니, 당연히 제 입장에서는 경계심을 품을 수밖에 없고, 특별히 도와줘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으니 단칼에 거절을 했던 거죠.
그 일본인 남자분의 영어가 그렇게 유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라운지 입구의 직원들과 영어로 이야기를 했던 부분이나, 뒤에 줄을 서 있던 저에게 자기 부인을 게스트로 입장시켜 달라고 한 말을 들어보면, 충분히 그런 정도 수준의 의사 표현은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영어가 짧아서라기보다는, 그냥 개인적인 혹은 문화적인 성향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예를 들어서, 그 남자분이 뒤돌아서서 저에게 부인분의 게스트 초청을 부탁하자마자 부인이랑 딸들이 일본어로 막 뭐라고 하는 것을 보면,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왜 남에게 폐를 끼치냐는 의미의 야단이었던 것 같고, 그걸 보면 부인과 따님은 전형적인 일본 사람의 성향인데, 막상 저에게 그 부탁을 한 남자분은, 그렇게 보면 아주 적극적인 스타일의 일본 사람이라는 거죠.
사실 저도 예전에 집사람하고 아들하고 셋이 여행할 때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저는 라운지 직원하고 협상을 시도해보고, 그쪽에서 게스트 포함 2명만 입장 가능하다고 했을 때 바로 포기하고, 그냥 우리끼리 다른 곳으로 갔었거든요. 근데 그 일본 분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생판 모르는 저에게 부인의 게스트 입장을 부탁한 것을 보면, 한국 사람인 저 보다도 더 들이대는 성격인 것으로 보여서, 이게 한국이나 일본의 문화 차이라고만 단정 지을 일은 아니고 개인 성향도 당연히 있는 거죠.
하여튼 저도 이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서, 남에게 어떤 부탁을 할 때, 그 사람이 들어줄 수 있도록 잘해야 하겠다는 것을 느꼈네요. 부탁이 크던 작던, 들어주는 사람이 그 부탁을 하게 된 내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배경 설명을 잘한 후에 부탁을 해야 제가 원하는 것을 얻을 확률이 크다는 거죠. "Why?"를 먼저 설명하고나서 "What"을 요청하는 매너 플리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