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주: 05
네바다 주는 워낙 캘리포니아 주의 옆에 딱 붙어있어서 매우 친숙한 곳입니다. 올해에는 온라인에서 가상 쇼로 진행을 하지만, 매년 1월에 CES라는 세계 최대의 가전 전시회가 열려서, 우리나라의 관련 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에게도 친숙한 도시인 라스베이거스가 있고요. 저도 주변 지인 분들과 가끔 놀러 가서 카지노에서 블랙잭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즐겁게 시간을 보낸 여행의 기억이 많은 곳입니다.
제가 97년도에 미국에 출장을 와서 한 달 반의 장기 교육을 받다가 중간에 추수감사절 휴일이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같이 교육받던 친구가, UC Berkeley에서 컴퓨터 공학 전공한 정말 똑똑한 녀석이었는데, 추수감사절에 특별히 할 일 없으면 자기랑 같이 본가에 가자고 해서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의 본가가 네바다의 핸더슨이라는 도시에 있었는데, 저는 네바다에 라스베이거스 말고 다른 도시가 있는지도 몰랐고, 거기에 멀쩡하게 고등학교도 있고 대학교도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을 정도로 촌놈이었습니다.
하여튼 그래서 그 친구네 집에 초대를 받아서, 추수감사절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낯선 칠면조 요리도 그렇지만, 특히 제 옆자리에 그 친구 할머님께서 앉으셨는데, 이 분이 남부 버지니아 주 출신이라서 뭐라고 뭐라고 말씀을 하시면 정말 잘해야 3분의 1 정도 알아듣고 겨우 겨우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집사람의 본가가 사과로 유명한 경북의 군위라는 곳인데, 처음 만났을 때 처 할머님께서 저한테 뭐라고 뭐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는 그래도 3분의 2는 알아들었거든요. 남부 지방의 할머님들 말씀하시는 것을 알아듣는 기준으로 따지면, 그 당시 제 영어 실력은 한국어 실력의 절반 정도였다는 셈이 되네요. ^^
제가 추수감사절을 보냈던 1997년의 네바다 주의 인구는 167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28만 6천 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갖고 있으니, 남북한을 합친 22만 제곱킬로미터보다 훨씬 큰 땅에, 대전광역시 정도의 인구 (150만 명)가 살고 있었다는 이야기죠. 그 후로 인구가 쭉쭉 늘어서 지금은 3백만 명 정도 살고 있다고 하는데, 뭐 그래도 우리나라의 인천광역시 (290만 명) 정도의 인구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차를 타고 달려보면 뭐 온 천지가 사막이라서, 사람이 살만한 곳이 잘 안보이기는 합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북서쪽으로 80마일 정도 달려서 캘리포니아 주로 넘어오면 그 유명한 데스밸리가 나오는데요 그쪽으로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보통 샌디에이고에서 라스베이거스를 갈 때, 15번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바스토(Barstow)라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가 계속 15번을 타고 쭉 가는데요, 한 번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냥 재미 삼아서 아래쪽 모하비 지역으로 돌아서 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거의 한 시간을 넘게 주변은 온통 황무지이고 근처에 달리는 차도 없는데, 휴대폰 신호도 안 잡혀서, 별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그 지역 빠져나올 때까지 차의 기름이 얼마나 남았는지 5분에 한 번씩 확인하면서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새롭네요. TV나 영화에서 보는 황무지 사막은 낭만적이지만, 실제로 가보면 뭐 처음 10분이나 신기하지, 그다음에는 심드렁해지고, 나중에 휴대폰도 안 터지는데 차에 기름마저 간당간당해지면 이제는 정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다음부터는 그렇게 무모하게 즉흥적으로 어디 잘 안 갑니다. ^^
남쪽은 그런 분지 형태의 사막이지만, 북쪽에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접하고 있어서 산악 지형입니다. 사실 네바다라는 주의 이름도 스페인어로 눈으로 덮여있다는 뜻이라고 하네요. 시에라가 산을 뜻한다고 하니, Sierra Nevada는 눈 덮인 산들이 되는 것이고요.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3시간 반 정도 북서쪽으로 달리면 레이크 타호라는 거대한 호수가 나오는데, 얘는 면적도 크고 수심도 500미터가 넘어서 미국에서 두 번째로 깊은 호수이지만,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있어서 해발 고도가 6천 피트가 넘습니다. 대략 1900미터 정도이니, 한라산의 높이와 비슷한 거죠. 이 호수 한가운데를 캘리포니아 주와 네바다 주의 경계선이 가르고 있습니다. 반씩 사이좋게 나눠서 쓰라는 의미로 만든 주 경계선이겠죠.
이 호수의 북쪽에 리노(Reno)라고, 네바다의 넘버 2 도시가 있습니다. 3백만 명의 네바다 주 인구 가운데, 2백만 명 가까이가 라스베이거스가 위치한 클라크 카운티에 살고 있고, 리노에 25만 명 살고 있다고 하니, 차이는 좀 크지만 넘버 2 맞는 거죠. 별명이 "The biggest little city in the world"라고, 세계에서 제일 큰 소도시라고 하네요. 가보면 정말 별거 없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또 휘황찬란한 것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 이해가 갑니다. 레이크 타호 지역에, 1960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던 스쿠아 밸리 (Awuaw Valley)를 비롯한 유명한 스키장이 많아서 스키 타러 갔다가, 리노에 가서 카지노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유명한 영화 쇼생크 탈출의 첫 대사를 기억하시는 분은 안 계시겠지만요, 영화 시작 후 첫 장면이 앤디가 차에서 술을 마시면서 리볼버 권총과 총알을 확인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배경 음악만 흐르지 대사가 없어요. 그다음 장면이 법정에서 앤디의 증언 모습인데, 첫 대사가 "She said that she wanted a divorce in Reno." 거든요. 이 대사가 나오게 된 배경이, 리노에서는 법적으로 이혼이 매우 자유롭다고 합니다. 영화 볼 때는 신경도 안 쓰고 지나갔던 장면인데 알고 보면 이렇게 깨알 같은 재미가 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