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제언
시리즈의 마지막 편입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제가 경험한 회사 생활에 바탕을 둔 것이니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저라는 한 개인이 겪은 일에 기반한, 어찌 보면 특수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래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공유를 하고자 합니다.
노력의 정도에 따라서 어느 정도 편차는 있겠지만,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영어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들의 경우를 보면, 한국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3년 동안 다녔습니다. 처음에 학교 수업을 며칠 들은 후에 제가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수업 내용을 얼마나 알아듣겠냐고요. 그랬더니 대충 절반 정도 알아듣겠더랍니다. 다행히 그 고등학교가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수업이 잘 갖춰져 있는 곳이라서, 아마 선생님께서 어느 정도 배려를 해 준 것도 있겠지만,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정도까지 하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아들 녀석이 여기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면, 미국에서 고등학고 3년 더하기 대학교 4년을 공부하고 나서 미국 직장을 들어가게 되는 것이니 저보다는 훨씬 영어를 잘하겠죠. 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나중에도 분명히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에 비해서는 차이가 날 것입니다. 제가 이 녀석 고등학교에서 몇 번 주최한 ESL 학생들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 데이터로 보여주는 것이, 집에서 영어를 쓰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영어 능력이 분명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물론 집에서 한국어로만 말하니, 아들이 영어로 말을 하는 시간도 또래의 미국 아이들에 비해서 비교도 안되게 적을 거고요.
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 아들만큼의 영어 환경도 겪지 못한 제가 어떻게 미국 본사의 글로벌 개발팀 매니저로 뽑혀서 오게 된 것일까요? 여기에는 운이 크게 작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 필드 엔지니어로 서울 사무실에 뽑혔고, 그래서 아시아 고객들에게 영어로 강연을 하거나 발표를 할 때 울렁증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한국 담당 영업을 하게 되면서, 영어로 해외 영업 지원을 하는 일이 확 줄게 되었죠. 물론 외국인 회사에 다니니 각종 회의를 영어로 할 일은 많았지만, 하여튼 업무가 영업 쪽으로 되면서 이제 미국 본사 갈 일은 없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미국 본사가 한국의 조그만 벤처 기업을 합병하면서 제가 그 팀의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아마 제가 기술적인 배경도 있고 비즈니스도 이해하는데, 그나마 한국에서는 영어가 제일 나으니까 저에게 그 포지션을 맡긴 듯합니다. 근데 이렇게 되면서 제 업무가 비지니스 쪽 말고 50여 명 정도의 개발자들과 프로젝트 매니저들을 관리하는 업무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맡은 개발 센터가 한국 프로젝트만 하는 것이 아니고 글로벌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저도 해외 관련 업무를 관여하게 되었죠. 물론 제가 영업을 하는 것이 아니고 엔지니어링 서비스 측면에서 업무 지원을 하는 역할이었습니다만, 그래도 해외의 영업팀도 지원하고 출장도 자주 다니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 일하다가, 글로벌 개발팀을 관리할 사람이 퇴사하고 그 자리를 제가 맡으면서 3년 전에 본사에 오게 된 것이죠. 즉, 원래 제가 영업을 하는 담당자였다면 미국 본사에서 근무할 일이 없었을 텐데, 엔지니어링 팀 관리자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미국에 들어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글로벌 개발팀을 관리하는 관리자라도 영어를 잘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만, 아무래도 내부 직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비중이 더 높았고, 제가 한국에서 몇 년 동안 보여준 업무 역량과 적당한 영어 실력이 인정을 받아서 미국 사무실 근무가 가능해졌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비즈니스를 하는 포지션에 있는 사람 가운데 해외 유학파가 아니라면 미국 근무는 불가능할까요? 불가능하다고까지는 못하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정말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첫째, 정말 정말 영어를 잘해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저는 유학 경험이 없는 토종 한국 스타일로 영어를 배운 사람 치고는 정말 거의 최고 수준의 영어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미국 와서 3년 일하면서 고개를 푹 수그리게 되었습니다. 둘째, 영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미국에 살아봐야 체득이 되는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정말 간단하게는 식당이나 술집에서의 매너부터 시작해서, 스포츠나 정치 같은 상식, 사람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특히 비즈니스 하는 방식의 차이 등, 우리나라와 다른 부분이 너무 많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알기 쉽지 않고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직접 미국에 살면서요.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 인맥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어떤 종류의 비즈니스이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게 되는데, 미국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학교도 나오지 않았으며 직장 생활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갑자기 미국에 들어와서 비즈니스 관련 업무를 맡게 되면 정말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생각뿐이 아니고, 제가 미국에 원래 들어오기로는 엔지니어링 팀의 관리자로 들어왔지만, 중간에 조직 개편이 되면서 대략 일 년 반 정도는 비즈니스 개발 업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직접 현장 영업을 뛰는 포지션은 아니었지만, 영업 지원 포지션에서 제안서 작업이나 고객 프레젠테이션, 기술이나 비즈니스 관련 전략 수립 등의 업무였는데, 미국 고객들을 다루는 것이 가장 부담되고 힘들었습니다. 유럽이나 아시아 쪽 영업들과 일할 때는 크게 부담이 없었는데, 미국 고객들하고 미팅을 하거나, 식사를 하거나 혹은 아이스하키를 보러 가거나 뭐 일상적인 비즈니스 관련 업무들이 하나하나 만만한 것이 없었죠.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제가 해외 고객들, 특히 제가 가장 맘 편하게 생각하는 아시아 고객들 관련 업무에 더 보람을 느끼고 신경을 쓰게 되었고, 미국 고객들과는 필요한 상황에서 필요한 업무 위주로 일을 하게 되더군요.
그럼에도 제가,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제 케이스처럼 비즈니스가 아닌 분야로 일단 미국에 들어와서 문화에 대한 이해도 쌓고 인맥도 쌓고 하면서 시간을 두고 비즈니스 관련 직종으로 옮겨가는 것이 한 가지 있겠죠. 그다음에는, 국내 회사의 설루션을 미국에 들여와서 비즈니스를 하는 경우에, 물론 미국 현지 직원을 채용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한국에서 영업 담당자를 파견해서 미국에서의 업무를 맡기는 경우도 가능할 겁니다.
여러 편에 걸쳐서 장황하게 영어 실력과 미국 회사에서 일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어떤 경우든 기본기는 중요합니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으로서 본연의 업무에 대한 실력이 가장 기본이 될 겁니다. 저도 뭐 영어 실력이 제가 미국에 오게 되는데 큰 요소였습니다만 그전에 일단 저의 업무 능력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 거니까요. 그다음에는 미국에서 일을 할 때 필요한 영어 실력인데, 이게 그냥 한국에서 전화로 본사와 회의를 잘하는 수준에서 만족하면 안 되고, 영어로 프레젠테이션 능력도 키우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미국의 문화나 생활을 가능한 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라도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할 겁니다. 그리고 역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미국 사람들과 폭넓은 인맥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한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건 정말 간절한 의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기회가 주어지면 간다는 마음보다는, 나는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서 미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다면, 자연히 이런저런 노력과 인연으로 그 의지가 발현되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어떤 시점에선가 기회가 주어지고, 그때 그 기회를 잡을 준비가 되어있다면 꿈이 이루어지게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상황과 별개로 지난 3년간 미국에서 일했던 경험은,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아들 녀석도 뭐 나름 어려움은 있었겠지만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집사람도 영어 때문에 고생은 하지만, 미국에 와서 가족들끼리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아지고 평화롭고 여유롭게 하루하루 사는 것에 대해서 점차 적응해가고 있습니다. 물론 젊을 때 왔으면 우리 가족 모두 훨씬 더 잘 적응했겠지만, 48세에 와도 미국에서 일한다는 것은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미국 회사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분들 모두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