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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이킴 Jan 24. 2020

영어 잘하면 미국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 (2)

도대체 얼마나 해야 영어를 잘하는 건지

영어 울렁증에 대해서 햄버거나 피자 말고 업무 관련된 에피소드도 많습니다. 제가 처음에는 한국 지사에 필드 엔지니어로 입사했는데, 워낙 그때 회사 규모가 크지 않아서, 몇 년 안돼서 어찌어찌하다 보니 대만이나 인도, 싱가포르 등 아시아지역 대리점 지원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출장을 가서 제품 시연을 보여주고, 뭐 고객과 기술 미팅하는 정도라면, 좀 부담스럽지만 크게 문제없이 했는데, 어느 정도 짬밥이 쌓이다 보니까 이제 발표를 시키기 시작하더군요.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게, 외국에서 영어로 발표를 하게 되면, 발표 당일날 아침 혹은 점심까지도 먹지 못할 정도로 긴장을 했었습니다. 출장 가기 전부터 A4 용지 몇 장에 발표 내용을 빼곡하게 적어놓고, 마음에 안 들면 계속 수정하면서 달달 외우고, 그러고도 불안해서 전날 잠도 설치고 그랬는데요. 그러고도 막상 무대에 올라가면 어떤 부분에서 머리가 새하얗게 백지가 되면서 외웠던 거 다 잊어먹고 버벅거리다 내려온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것도 경험이라고, 몇 년 계속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아주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 번도 편한 적은 없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난 것은, 뭐 대만이던 인도던 발표를 영어로 하는 것은 똑같은데, 희한하게 대만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이런 곳에서 하면 마음이 좀 편하고, 홍콩이나 싱가포르 혹은 인도에서 하면 마음이 더 불편했습니다. 아무래도 홍콩이나 싱가포르, 인도처럼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에서는 아무래도 그 사람들이 나보다도 영어를 잘할 거라고 생각해서 더 조심스럽고 더 긴장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영어 단어나, 발음 혹은 문법을 틀리면 더 우습게 보일 것 같아서 더 벌벌 떨고 그래서 더 못하고, 뭐 그랬었죠. 


사실 이런 기분은 20년 넘게 외국인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세계 각국의 직원이나 고객 또는 파트너들과 수많은 회의와 발표를 해 오면서도 여전히 쉽게 변하지 않더군요. 지금도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하고 회의를 하면 더 긴장하고 더 조심하고요, 아시아권 사람들하고 하면 왠지 말도 더 또박또박, 자신 있게 천천히 잘 되는 느낌입니다. 유럽 사람들이야 워낙 다들 영어를 잘하지만, 반면에 지나 내나 영어는 외국 어니까 크게 부담스럽거나 크게 편하거나 하지 않고, 그 중간 어디쯤이고요.


저는 3년 전까지 한국 지사에서 일을 하다가 3년 전에 글로벌 개발팀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으면서 샌디에이고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부담스럽네 힘드네 해도, 제 영어가 그래도 회사 업무를 하고 사람을 관리하는데 부족하지 않다는 판단을 회사에서 했다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처음 미국 들어올 때는 자신감 뿜 뿜 해서 왔고, 주변 사람들도 개천에서 용 났다고 축하들을 많이 해 줬습니다. 유학도 해 본 적이 없는 토종 한국인 매니저가 처음으로 본사 포지션으로 발탁되어서 가는 쾌거를 이루어냈다고요. 


근데 제가 미국 와서 한 가지 느낀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잘한다고 생각했던 업무 영어 실력이 사실은 좀 과장된 면이 있었다는 거죠. 제가 미국에 와서 곧 느낀 부분이, 사람들이 회의 때 말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것입니다. 그걸 제가 어떤 데이터를 근거로 만들 수는 없지만, 하여튼 느낌적으로 그렇다는 거고요, 따라서 그 이야기는 미국 사람들이, 어느 정도 아시아 쪽과 비즈니스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쪽과 회의를 할 때 말하는 속도를 조절한다는 의미입니다. 말하는 속도뿐 아니라, 미국에서 회의를 해 보니까, 한국에서 미팅할 때는 잘 쓰지 않던 속어라던가 표현을 더 많이 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들은 표현 가운데 'I am calling an audible'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미식축구를 전혀 보지 않는 사람은 이해를 할 수 없는 의미입니다. 미식축구는 원래 약속된 플레이를 하도록 되어있는데, 막상 게임 들어가서 플레이를 하려고 보니 상황이 달라져서 쿼터백이 마지막 순간에 플레이 형태를 바꾸는 것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이 쓰인 상황은, 원래 우리가 독일의 고객에 대해서 영업 전략을 짜고 그대로 진행 중이 있는데, 상황이 바뀌면서 급하게 작전을 변경하자는 의미였습니다. 당연히 저는 못 알아 들었고, 나중에서야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시아 쪽 고객이나 직원들과 회의를 할 때는 이런 표현을 쓰지 않겠죠. 그렇지만 미국에서 미국 직원들끼리 회의를 할 때는 편안하게 다양한 현지 표현들을 사용하는데, 그런 것들이 여기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알아듣기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음, 이야기가 또 길어지니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 번만 더 끊어야 하겠습니다. 마무리를 다음 글에서 짓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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